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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l 25. 2016

조금도 행복하지 않거나 미치도록 행복한

서울여자 도쿄여자 #28

아침부터 딸 둘이 다툽니다. 기저귀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둘이 하나씩 가져와서 자기가 가져온 걸 쓰라고 저를 협박합니다. 저는 둘째 딸이 가져온 걸 쓰기로 합니다. 첫째는 금세 눈물을 흘리며, 어디론가 도망쳤습니다. 오늘따라 날도 더운데, 이런 아침이면 정말 끓기 직전의 주전자가 된 느낌입니다. 펄펄 끓어올라 넘쳐야만 성에 차는. 아이가 둘이 싸울 때, 지금처럼 화가 끓어올라 한 소리 해줘야만 속이 시원한 아침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아이 둘이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서, 싸울만큼 컸다는 게 기특해서 미치도록 고맙고 행복한 날도 있습니다. 같은 티격태격인데도, 그때 그때 제가 느끼는 느낌은 다릅니다. 


불행의 반대어는 행복이겠죠.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또 행복했다가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빨대로 마셨을 때의 그 놀라움. 불행도 행복도 그 느낌과 비슷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6배쯤 뜨거워 입안 껍질이 벗겨졌을 때의 그 느낌. 어떤 날은, 그 뜨거움에 놀람과 동시에 재미를 느끼기고 하고, 어떤 날은 짜증만 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도 있고, 반대의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요. 결국은 태도의 문제,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입니다.


아이가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은 날도 있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한편 거추장스럽고 귀찮고 때론 마음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날도 있지요. 그런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특별한 조건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한 감정의 강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정도지요.


저는 불행의 반대어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많은 것을 행복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살아있어서 (엄청난 행복은 느끼지 못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아이가 있어서 (때론 지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남편이 (조인성도 아니고 억만장자도 아니지만) 저를 사랑해주고 저도 사랑해서 다행이라고, (주택론에 허덕이지만) 집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쌀이 떨어진 날엔 배달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지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커피가 없는 날엔 우유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사랑하는 이도 없고, 날씨고 궂고, 일자리도 마땅치 않지만, 숨쉬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적어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날도 숨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행복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 외모가 빼어난 사람, 운이 좋은 사람, 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등 제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현실에도 있고 티비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행복은 심플하게 '돈이 있고 잘생긴'으로 표현됩니다. 드라마 속에선 돈이 있고 잘생긴 남자들이 아주 쉽게 여자를 홀립니다. 성격이 까탈스럽거나,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요. 우리는 늘 그런 드라마를 보며 자랍니다. 그래서, 돈이 없고 외모도 빼어나지 않은 자신을 행복과 별개라고 자각하며 살아갑니다. '행복'의 가치가 너무나 높아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행복'이 그렇게 멀게만 보인다면 행복 대신 '다행'을 넣어보는 삶은 어떨지 고민 중입니다. 겨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치인 인생에서 다행을 행복으로 여긴다면, 그건 너무나 가학적인 일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은 행복을 위한 찬스가 될 것이라고 아직 믿고 살고 있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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