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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01. 2016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울을 달리다

서울 여자, 도쿄 여자 #16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얼마 전 강남 쪽에서 행사가 있어 지하철 2호선을 탔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간만에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갈 일이 생긴 거였어요. 매번 잊어버리지만 한강을 건너는 일은 정말 새로운 것 같아요. 창밖으로 지나치는 초록의 생생함과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 좋은 계절이구나!’하고 감탄하고 말았어요. 물론 휴대폰을 꺼내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이 덜컹거리는 바람에 초점이 맞지 않아 금세 그것도 관두었지만요. 네 그래요 작가님. 저도 나이가 든 모양입니다. 가슴 벅찬 감동은 잠시, 번잡스럽고 귀찮다는 생각에 모든 걸 멈칫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그래도 오랜만에 풀죽은 감성을 깨워준 지하철 2호선과 한강의 풍경, 이름 그대로 서울 여자인 저에게 서울의 한강은 어떤 의미일까요?

     

강 건너 북쪽에서 태어나 쭉 살아온 저는 사실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끔 일 때문에 가기는 하죠. 하지만 꼭 필요한 만남이나 중요한 미팅을 제외하고는 강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랄 것도 없어요. 그저 강남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에게 강남은 그다지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에요. 그저 낯선 곳, 복잡한 곳, 불편한 곳일 뿐이니까요.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강북이 낯선 곳, 촌스러운 곳, 불편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결국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것 아닐까요? 저의 존재의 뿌리는 애당초 강북이었고 지금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딱히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몇 년 전,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노래가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어요. 제가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에 다녀온 2014년에도 한류의 바람을 타고 그곳에서 강남 스타일노래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가이드 청년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저에게 강남스타일의 뜻을 물었습니다. 영어가 짧기도 하고 달리 설명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던 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조크가 담긴 노래라고 간단히 답해주었어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미 서울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강의 남쪽으로 점점 부가 집중되고 돈과 권력이 몰립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강남엄마들이 구매했다는 아기 유모차와 기저귀, 물티슈까지 불티나게 팔려 나갑니다. ‘강남엄마 패딩이라 불리는 겨울 용 점퍼도 있다고 하더군요. 최근 미국에서  건너온 쉑쉑버거 열풍으로 강남은 또 한 번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된 강남이라는 공간, 그리고 욕망의 유토피아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 대체 언제부터 서울은 피자 조각 자르듯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고 말았을까요?

     

사실 대규모 택지 개발과 아파트 지구 지정이 시작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강남은 그런 곳(욕망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3년 전, 모 방송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통해 바라본 서울의 30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대중교통의 심장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이잖아요. 그걸 타면 서울의 어디라도 갈 수 있어요. 강북도 가고 강남도 갑니다. 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봉천동과 구로공단역(지금은 구로 디지털단지역입니다^^)을 지나 이제는 망각 속으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역도 지나가게 되죠. 어디 그뿐인가요. 허허벌판에서 한국형 부르주아의 도시로 탈바꿈한 그곳, 강남역도 지나갑니다. 그때 인터뷰하면서 만난 한 분(강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은 한강변을 모래사장이 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더군요. 결국 이 모든 것들이 50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겁니다. 서울은 너무 빨리 변해버렸어요. 무엇을 놓치고 잃어버린 지도 모른 채 성급히 변해가는 서울이 저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애증일까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뼈 속까지 서울여자이니까요.

     

강남에서의 행사가 늦게 까지 이어지고 그날은 유독 뒤풀이도 길어졌습니다.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좋아 끝까지 남아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12시를 훌쩍 넘어가고 말았어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초록의 생생함과 반짝이는 강물을 볼 순 없지만 지하철에서 만나는 서울의 밤 풍경도 참 매혹적이에요. 하루의 피로에 절어 꾸벅꾸벅 조는 사람, 텅 빈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사람, 그리고 헤어지기 싫어서(^^;) 지하철을 타고 순환선을 한 바퀴 도는 연인들... 서울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저마다의 사연을 실어 나릅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면서 말이죠.

     

! 그렇다면 지하철을 놓친 저는 집에 어떻게 왔을까요? 바로 카카오 택시가 있다는 사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택시를 호출하면 기사 아저씨의 얼굴과 차번호 이동전화 번호까지 촤르르-나오는 이 멋진 세상! 하지만 감탄도 잠시뿐인걸요. 택시비를 계산해보곤 그만 기절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날 밤 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습니다. , 다시는 밤 12시까지 술 마시지 않을 테야!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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