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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05. 2016

피로한 나라, 피로한 도시,
피로한 사람들

서울 여자, 도쿄 여자 #17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오늘도 정말 덥네요.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휴대폰에 긴급 재난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야외 활동을 주의하라는 폭염주의보 문자였어요. 친절한 문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에서 저를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작가님도 잘 아시겠지만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저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접었으니까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성수대교가 무너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딱 한가지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냥 이렇게 생존하다 어느 순간 나에게도 엄청난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험 사회, 그리고 불안사회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너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적어도 우리는 한 가지 정도는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 국가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못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네 그래요 작가님. 한국은 지금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일본 사람들과는 또 다른 고민이 지금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에요. 진실로 아이들을 걱정하는 어른이 없다는 것, 모두가 자기 것만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것, 외로울 때 기댈 이웃이 없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나를 돌봐주지 않을 거라는 의심 같은 것들이 도처에 팽배해 있습니다. 홀로 외롭게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 3평짜리 쪽방에서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가난한 노인들, 창문하나 없는 고시원에 누워 손바닥만 한 천장을 바라보며 젊음을 증오하는 청년들, 살인적인 학원스케줄로 친구와 뛰어 놀 시간 없이 바쁜 아이들까지...마치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 내기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에서 출퇴근 지옥을 보내는 가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 정치가가 부르짖었던 저녁이 있는 삶은 그저 공허하고 슬픈 공약에 불과한 한국인의 삶. 우리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맞바꾼 경쟁사회 속에서 모두 남을 누르고 억압하고 험담하기에 바쁩니다. 이러니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거겠죠. 오죽하면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소설이 불티나게 팔렸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떠날 수나 있을까요? 떠난다고 한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네 그래요 작가님. 지금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탈출을 꿈꾸지만 대부분은 꿈을 꾸는 것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끝내 이곳을 떠나지 못할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천천히 함께, 시계추가 돌아가듯 평화롭게 사는 삶이란 환상일 뿐일까요? 날이 더워서인지,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긴급재난문자 때문인지, 피로함만 더해가는 오후입니다. 서울은 아스팔트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어요. 도쿄의 오후는 지금 어떤지!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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