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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ug 05. 2016

늙음에 대해

서울여자 도쿄여자 #31

미국에 살고 계신 작은 할아버지를 뵙고 왔습니다. 작은 할아버지는 30세에 로스앤젤리스에 이주하신 후, 86세가 된 지금까지 미국에 살고 계십니다. 


80대지만, 60대처럼 보입니다. 아마 머리가 벗겨지지 않았다면, 50대나 40대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피부가 아기같고 잘 가꾸어서 주름도 거의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건강 비결은, 그 인생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첫번째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 두번째는 좋은 옷을 입을 것.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과일을 챙겨드십니다. 수박, 체리, 복숭아 등 다양한 과일을 조금씩 드십니다. 그것도 오가닉으로 신선한 과일로. 점심은 가볍게 드시고, 저녁은 꼭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합니다. 미국인데도 불구하고 햄버거를 드시는 일은 없습니다. 가공육이나 인스턴트는 되도록 피합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음식은 많다." 할아버지의 지론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굳이 가공육을 먹을 필요는 없다 하십니다. 할아버지 냉장고는 과일과 채소와 한국식 반찬으로 가득합니다. 고기는 스테이크나 불고기를 주로 드십니다. 갈아놓은 고기는 지방질이 많아 거의 드시지 않습니다.


한때 한국의 외무부에 근무했던 할아버지는, 당시에도 패셔니스타였습니다. 버버리를 즐겨 입고 신사모를 쓴 젊은 시절의 사진을 지금도 걸어두고 사십니다. 180이 넘는 큰 키에 매끈한 외모가 모델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키가 크고 옷이 잘 받는단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늘 멋진 옷을 입고 뽐내고 싶어 하시고, 좋은 옷집에 가서 맘에 쏙 드는 옷을 삽니다. "할아버지 가격표는 안 보세요?" "가격표? 어 그런 건 상관없어."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다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낙천적이십니다. 카드값이 많이 나오면 그 다음달엔 쇼핑을 적게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옷이 나를 부르는데 어떡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반지, 형형색색의 넥타이도 컬렉션도 할아버지의 자랑입니다. 안방과 건너방의 벽면은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매일 거울을 보고 몸매를 확인합니다. 살이 쪄도 괜찮지만, 평생 원하는 옷을 입고 살려면, 살이 안 찌는 쪽이 더 좋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매일 요가를 하고 산책도 하십니다.


결국은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입기 위한 노력이 할아버지의 건강 비결이고,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매일 미국 신문, 한국 신문, 일본 신문을 읽으시고, 이메일로 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매주 월요일엔 오페라 클래스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하시고, 두 주에 한 번은 친구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정정하실 때와 비하면, 말씀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지적 의욕이 넘치십니다. "나는 아직도 먹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철이 없지?"하십니다.


86세 할어버지의 부엌에, 얼마전부터 개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침침해지셔서 개미가 잘 안보여 걱정이 많으십니다. 개미약을 설치하고, 개미가 사라지길 기다려봅니다. 설거지에도 간혹 빨간 고춧가루가 하나쯤 묻어있기도 합니다. 저는 모른척 하고 살짝 제가 다시 닦습니다. 평생을 혼자 살며, 가사를 해오신 양반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자존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자들은 설거지를 대충해서 큰일이야."라시던 할아버지가 눈이 안 좋아지시고, 허리며 다리 통증으로 오래 서계시지 못하게 되면서, 주방에 조금씩 더러움이 생기고 그걸 눈치챈 개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개미와의 동침이 나쁘지는 않지만, 개미가 사라지길 바래봅니다.


늙는다는 게 뭘까요? 엄마는 "늙는 게 서럽다."고 하셨습니다. "니가 몰라서 그래."라고 덧붙이시면서. 엄마가 암투병을 했을 때, 엄마는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라고 하셨습니다. 네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에게 비타민 씨가 잘 듣는다거나,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아주 쉽게 했습니다. 앉아 있기도 힘든 엄마에게 다른 병원까지 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비타민 씨 용법이라고요? 일본에선 그 용법이 환자의 암에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고 보고 있으며, 그 용법을 쓰는 병원은 도쿄가 아닌 가나가와에만 있습니다. 유전자 치료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그 병원에서도 극적인 치료효과는 바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도 얼마나 서러운지도, 그저 간접적으로만 알았지 직접적으론 알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요. 


마흔이 되면서, 아니 엄마가 돌아가신 후, 거의 매일처럼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저 두렵다는 마음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늙는 게 서럽다."라는 엄마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엄마는 겨우 61세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아빠는 겨우 36세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빠의 동생인 삼촌은 겨우 20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는 죽음들이 너무 가까워서, 마음이 늘 무겁고 우울합니다. 저는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죽는데, 죽기 전에 과연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과연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요? 유한한 인생을 아이 셋에게 물려준 그 책임을 어떻게 지고 죽을 수 있을까요?


개미가 꼬인 부엌이 주는 처량함과 애석함.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100세까지 아니 그 이상 사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고, "늙는 게 서럽다."고 말할 순간이 조금 있으면 찾아온다는 사실도 너무나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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