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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ug 05. 2016

동일본 대지진과 미니멀리즘/소비라는 죄책감

서울여자 도쿄여자 #30

남편과 살면서 놀라운 점 중 하나가 남편의 속옷과 양말 셀렉션을 볼 때입니다. 남편의 속옷은 같은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만 같은 것이 아니라, 속옷 색도 모양도 같습니다. 즉 남편은 똑같은 속옷만 입습니다. 계절마다 속옷을 바꿀 때도 남편은 똑같은 속옷을 서너개씩 마련합니다. 양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양말 한 짝쯤 없어져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같은 속옷을 사거나 같은 양말을 사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수건도 모두 같은 브랜드 같은 색으로 통일하고 싶어합니다. 저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는데, 다시 보니 수건이 모두 같으면 호텔같이 분위기가 있어집니다. 겨우 수건이 똑같을 뿐인데, 어쩜 그렇게 깔끔하게 보일까요? 혼자 오래 산 남편의 지혜인 것 같습니다. 아니, 제가 볼 때 일본 남성들은 깔끔함을 무척 좋아합니다. 혼자 사는 일본 남성들의 대부분은 무지루시(무인양품)의 팬입니다. 그들은 무인양품에서 옷을 사고 인테리어를 맞춥니다. 단지 인테리어가 모두 무인양품인 것만으로 방이 모델룸처럼 깔끔해집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모델룸처럼 꾸미는 방법은, 어렵게 고르는 게 아니라, 같은 가게에서 같은 브랜드로 통일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같은 속옷 같은 양말을 사지 않았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꼭 다른 걸 사야하는 줄 알았습니다. 노란색 팬티는 하나 있으니까, 다음번엔 초록색을 사야지. 그런 심리죠. 아니, 그것뿐만은 아니예요. 노란색이 하나 있는데 똑같은 걸 하나 더 산다니 너무 아깝잖아. 네, 그게 가장 가까운 제 심정입니다. 까만 양말은 한 켤레면 족합니다. 그러다가 짝을 잃으면 그 때 다시 사면 되고요. 같은 걸 또 하나 장만할 때 드는 죄책감. 저는 물건을 사고 나면, 우울해집니다.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누가 애써 만든 걸 너무 손쉽게 구입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있는 걸 또 사서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데 또 사서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이 종합된 기분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고 근본적으로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낍니다. 대체 왜일까요?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로 저축을 했습니다. 저는 학교 저축은 하지 않았지만, 저만의 통장과 돼지 저금통이 있었습니다. 받는 족족 모았습니다. 대부분은 제 학용품이나 장난감 등으로 소비되었고, 급할 때 엄마의 비자금이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모으는데 주력했습니다. 어떻게 써야할지는 생각해보지도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학교에선 열심히 저축한 학생을 격려했습니다. 안 쓰고 모으고 절약하는 것은 미덕이었고, 쓰고 꾸미고 치장하는 것은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물건을 사고 난 후 자책감이 들곤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져서, 돈은 모으는 게 최고가 아니라 잘 쓰는 게 더 중요하단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잘 쓰는 법에 대해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단 입장입니다.


일본은 80년대 후반에 거품 경제로 경제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당시부터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명품에 열광했고 명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선물받거나 물려받거나, 자신의 손으로 획득한. 제가 90년대에 일본에 왔을 때는 프라다의 까만 가방이 유행을 해서, 여고생들이 들고 다녔고, 대학생이 되자 뷔통이 유행을 했고, 그후엔 미우미우의 시대가 왔으며, 다시 샤넬로 회귀했습니다. 일본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명품이라 불리우는 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된장녀나 김치녀의 증표가 아니라, 그저 누구나가 들 수 있는 가방이었습니다. 일본의 거품 경제는 일본의 생활 수준을, 일하면 누구나가 명품백을 들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누가 무슨 가방을 들고 있든, 90년대에도 지금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경제 사정에 대해서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밥값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면, 더이상을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엄청난 명품붐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크게 바뀌게 됩니다. 동일본 대지진 후 유행처럼 번진 것은 이혼입니다. 방사능에 관심이 없는 남편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 아내, 아내가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은데 대해 화가 난 남편, 남편이 자신을 찾기보다 일에 몰두한 데에 대해 헤어짐을 결심한 아내. 지진은 사랑을 가를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하나의 변화는 소비 변화입니다. 값싼 것을 많이 소비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필요한만큼만 소비하는 사회로 변모해갑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법>이란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서점에는 버리기와 정리에 관한 서고가 생겼고, 최근에는 되도록이면 소유하지 않는 <미니멀리스트> 붐이 불고 있습니다. 실제로 집 안에 물건이 많을 수록 지진 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진으로 인해 집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전제품이나 가구에 인한 압사였습니다. 책 한 권, 벽에 걸린 시계 하나가 지진 때는 무기가 됩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해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후, 어쩐지 명품백을 들고 거리를 걷기가 불편해졌습니다. 그 가방이 비싸서가 아닙니다. 100만엔짜리 가방이건 1000엔짜리 가방이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목숨이 붙어있단 사실은, 기적처럼 반갑고도, 허무한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여성들은 단화를 신거나, 단화 한 켤레쯤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갈아 신기 위해서요. 누군가가 물건에 매긴 가치가 의미를 잃게 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 그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단 사실에 눈뜹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버리고, 정리하고, 버리고 또 정리합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 또는 소유하지 않는 삶이, 왜인지 더 풍요롭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산 후 느끼는 저의 죄책감은 죽음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되면, 죽음이 더 가까이 오지는 않을까 싶은 그런 불안감. 고교시절 일본의 국어책에, 한 여자의 인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는 여자 집에 남자가 와서 살던 시절이었는데, 한 여자의 남편이 된 남자는 그 여자를 매일밤 찾아오다가 어느날 사라집니다. 전쟁에 갔단 소문도 있습니다. 여자는 매일매일 남자를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 남자가 드디어 여자를 찾아옵니다. 여자는 남자를 맞이하고, 그날 밤 저 세상으로 뜨게 됩니다. 남자를 다시 보는 소원을 이룬 그녀는 더 이상 이승에 바랄 게 없었던 것이죠. 아름답고 허무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녀처럼 원하는 것을 가지면, 그건 더이상 이승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는 증표가 아닐까 싶어요. 저의 죄책감의 근원은 아무래도 이런 죽음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앞으로는 같은 속옷을 사고 같은 양말을 사서 신어볼까 합니다. 소비라는 죄책감을 뛰어넘기 위한 첫번째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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