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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ug 18. 2016

3킬로의 절망과 희망

서울여자 도쿄여자 #32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큰일 났어요. 대학교 동창한테서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결혼 피로연이 11월이라며 꼭 참석해달란 연락이었어요. 정말 큰일입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과 비교해 체중이 15킬로 정도는 늘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경희 작가님은 모르시죠? 저도 잊어버렸을 정도입니다. 결혼 피로연에 가려면 일본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어야 합니다. 서른살 무렵, 친구들 결혼식이 많아서 샀던 드레스들은 이제 지퍼가 잠기질 않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든가 옷을 새로 사야겠지요? 대학교 동창들도 올테니까요. 결혼식피로연이 진행되는 약 3시간 동안, 친구들과 내내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눠야할 텐데, 제 뚱뚱한 팔뚝과 뱃살을 보이는 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합니다. 저는 그러니까 20년전엔 47-50킬로의 몸무게였고, 팔다리가 굵은데다 가슴이 커서 날씬해 보이진 않았지만, 옷 사이즈는 늘 가장 작은 사이즈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사람들은 저에게 "3킬로만 빼면 좋겠다"는 소리를 서슴없이 했습니다.


체중이 삶을 지탱해준다고 하셨죠? 저도 공감합니다. 감기와 구내염을 달고 살았는데, 50킬로 중반대가 되면서 감기와 구내염이 깔끔하게 사라졌습니다. 다만, 체중이 어느 선을 넘으니 몸에 필요없는게 잔뜩 쌓여서인지, 가끔 두드러기가 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애 셋을 키우는데 근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제 몸은, 지방이라도 있어야 아이를 들고, 뛰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나마 지방이 있어서, 아이 셋을 볼 힘이 나는 건 분명합니다. 허리 선이 무너지고, 목 주위에도 살이 붙어 쇄골이 사라지고, 허벅지까지 튼튼해지면서 거울 보기가 무서워졌지만, 그래도 이런 살들이 저의 가는 뼈와 없는 근육을 대신해 매일매일 열심히 일해주고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11월 결혼식 전에는 살들을 좀 정리하고 싶어요. 네 저는 "이쁘고 똑똑한"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의 한국에서 온 재밌는 여자아이로 되돌아 가고 싶어요. 아니 20년의 세월을 돌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최소한 20년 전을 연상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다이어트를 하면 좋을까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식초 다이어트? 1일 1식?


식초 다이어트는 제가 식초를 싫어해서 못할 것 같고, 1일 1식으로는 아이 셋을 보다가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저 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잘 나가다가 탄수화물이 너무나 먹고 싶어, 탄수화물 폭탄에 손을 대게 되는 건 아닐지. 운동을 하라구요? 제가 운동할 동안 애 셋은 어디에 맡겨야 할까요? 집에서 요가는 어떻겠냐구요? 그게 또 쉽지만은 않겠죠. 하하. 변명에는 끝이 없습니다. 왜 다이어트를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까요? 왜 다이어트를 하기도 전에 이런 변명만 늘어놓게 되는 걸까요? 얼마나 다이어트를 하기 싫으면 변명부터 생각이 나는지. 그리고 왜 다이어트는 자신의 몸무게가 과체중일 때뿐만 아니라 정상체중이거나 저체중일 때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는 걸까요?


53킬로였던 고교시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50킬로가 되고 싶었고, 대학생이 되어 여유가 생겨 50킬로가 되가 47킬로를 꿈꿨고 47킬로가 되자 45킬로만 되면 인생이 다섯배쯤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결국 45킬로가 되어보지 못해서 인생이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지의 결과는 얻지 못햇지만, 그 시절과 비교해 15킬로쯤 증량한 지금이 딱히 불행한 건 아닙니다. 20대의 저는 55킬로가 넘으면 큰일이 나고, 60킬로가 넘으면 숨도 쉬면 안되는 줄 알았어요. 몸무게에 대한 강박관념은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날씬했어요. 어디를 가도 "예쁘다, 날씬하다, 모델같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시골마을에서 자랐고, 시골에서는 유일하게 무슨무슨 아동복의 옷을 차려입었으며, 엄마의 손재주로 머리는 언제나 깔끔하게 땋아져있었습니다. 저는 동네에서 가장 예쁜 아이였고, 서울로 전학을 한 이후에도, 엄마의 손으로 꾸며진 역시나 학교에서 가장 예쁜 아이였습니다. 키도 일찍 자라서, 초5때 이미 160센티가 넘었습니다. 초6학년 때 처음으로 몸무게가 45킬로를 넘었을 때, 저는 생리가 시작되었을 때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하고, 제 자신의 몸에 대해 실망스러웠습니다. 초6의 저는, 초5와 달라진 게 없는데 왜 몸무게만 느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누가 제 몸무게를 알게 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겨우 45킬로를 넘었을 뿐인데 말이죠. 성인이 되어서는 제가 47킬로였을 때도, 50킬로였을 때도, 53킬로였을 때도 누누히 "3킬로만 빼면 더 이쁠텐데."를 수십번 들었습니다. 한국무용선생님이 그러셨고, 제 친구가 그랬고, 제 남자친구도 그랬습니다. 저의 엄마만 저에게 "몸무게? 민정아, 지금이 가장 예쁠 때야."라시며 미니스커트를 입고, 노브라에 티셔츠를 입고 자유롭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면서. 덕분에 대학 시절의 저는 미니스커트는 물론이고, 가슴골이 파지거나, 배가 드러나는 옷들을 신나게 입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배를 다 드러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제 체형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몸무게에 대한 엄격한 자대는 태어나면서부터 결부됩니다. 저는 두 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다르지 않으며 똑같은 꿈을 꾸고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기를 원하며 그렇게 키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두 딸이 비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날씬하게 커서 모델이 되거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중적인 삶의 태도를 버릴 수가 없어요. 뚱뚱하면 어때? 건강하면 그만이지.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하지만, 제 딸들은 뚱뚱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늘 사춘기가 되기 전에 운동이나 무용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면 뚱뚱해지지 않겠지만요.


저도 어서 50킬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대학 동창 결혼식에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애가 셋이야?" "애 엄마가 이래도 돼?"란 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허황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네요. "학창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라는 말에 "요즘 엄마들은 다 이래(날씬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대응하고 싶네요.


내 몸을 사랑하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3킬로만 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 같고, 3킬로가 찌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질 것 같은 불안감은, 은연중에 보아온 티비나 사회적 배경들에 의한 것일까요? 몇 킬로가 되든, 어떤 체형이 되든 저는 저를 사랑하고 싶고, 실제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앞에 저를 드러내는 건 쉽지 않네요. 어서 뱃살과 팔뚝살을 정리해서, 날씬한 몸으로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피로연장을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오가고 싶습니다. 어때? 나 아직 이쁘지?의 소망을 버리지 않고서. 네 저는 속물입니다. '이쁘고 똑똑한'으로 끝끝내 불리고픈 욕망을 버릴 수 없는 속물입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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