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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ug 18. 2016

제3시민

서울여자 도쿄여자 #33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제가 일본의 시댁 얘기를 해드렸죠? 거리감이 멀어서, 일년에 두번 정도 밖에 시부모님과 만날 기회가 없고, 시댁에 가도 요리를 하거나 빨래 등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저희 시어머니를 포함해 많은 시어머니가 부엌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거기엔 지저분한 곳도 있어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부엌에 며느니가 오가는 걸 원하지 않으시는 거죠. 물론 제가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는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 물 좀 마실게요." "우유 좀 꺼낼게요."하고 늘 한 마디 건넨 후에야 냉장고를 엽니다. 시부모님 역시 저희집 냉장고를 맘대로 여시는 일이 없으시며, 저희집에 오시기 전에는 최소 한 달 전에 통보나 약속을 하고 찾아오십니다. 시부모님은 저희집 열쇠를 가지고 계시지만, 어디까지나 긴급 상황을 위해서고, 평소에는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사는 관계에서도, 며느리는 며느리입니다. 

얼마전 일본의 오봉(우리식 추석)에 시댁에 내려갔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과 수영장에 가거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혹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어머니는 취업으로 고민 중인 저에게 "애 보면서 집에서 일하면 되지."라고 하십니다. 경희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집에는 초1, 만3세, 만0세 세 아이가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면서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도 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효율성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 많은 일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벽 4시부터 새벽 6시까지가 온전한 제 시간입니다. 만일 막내가 깨서 보채기라도 하면 그 2시간조차 포기하고, 수유에 할애합니다. 애를 보면서 일을 하면 된다는 건, 제 실상을 너무나 모르시는 발언입니다. 이번 시댁행에선 큰애 둘을 데리고 수영장에 데려오는 동안, 어머니에게 막내를 맡겼습니다. 어머니는 "애를 봐야 하니까 점심으로 빵을 좀 사오거라."라고 하십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를 보면, 식사 준비도 하기 어렵다는 걸, 아신다는 거죠. 그런데 왜 저에게는 애 보면서 일하면 된다고 쉽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가 출산 후 병원에 있을 때, 저희집에 오셔서 두 아이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때 얘기를 하시며 "빨래는 세탁기를 좀 닦고 해야지." "청소기에 쓰레기가 꽉 차 있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저에게만 그런 말씀을 하실까요? 저희 남편도 있는데 말이죠. 그 때는 애 둘을 보면서 임신한 몸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세탁만 하루 3번은 해야했고, 방 4개에 거실, 계단까지 청소기를 밀면 배가 뭉쳤습니다. "힘들어서 청소기 안의 쓰레기를 버리지 못했구나."라거나 "세탁기가 더러워진 것도 몰랐구나."란 생각은 일체 없으십니다. 더불어, 저희집에는 남편이란 성인이 한 명 더 있어서, 그 사람도 쓰레기를 치울 수 있다는 사실은 아예 망각하고 계십니다. 왜 저를 콕 찍어서, 저에게만 집안일에 대한 지적을 하시는 걸까요? 저는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시댁에 간 둘째날 아침엔, 식탁에 자리가 모자라 저만 마지막에 먹게 되었습니다. 제가 의자에 앉으려고 하자 어머니는 "거기는 너희 남편 자리인데."를 두 번이나 반복하셨고, 처음엔 못 들은 척 하다가 불편해서 소파로 자리를 피해가, 막내를 안고 달랬습니다. 그리고 저희 시부모님과 남편과 아이들, 아주버니네 가족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저는 거실 소파에서 막내를 보고 있었고, 그 후에야 간신히 남은 음식들로 밥을 먹었습니다. 저희 엄마였다면, 적어도 제가 먹을 반찬을 따로 덜어놓았다가 주셨겠죠? 시어머니는 당연히 먹고 남은 걸 저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시댁에 갈 때마다 작은 일로 제가 삼류 시민이 된 느낌이 들어요. 특히나 식사 시간에 말입니다. 지난 번엔 밥이 모자라 저는 아예 밥을 먹지 못했고, 고기는 늘 부족해서 저에게는 딱 한 점 밖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모두 최고급 재료를 쓰시는데, 그래서 양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남편과 저는 대학 동창입니다. 저는 남편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저도 남부럽지 않게 회사에 다니며 경제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적이며 성격 같은 건 시어머니를 포함해 어느 어머니에게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입니다. 언제건 시댁에 가면, 늘상 삼류 시민이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어머님은 저에게 딱히 뭘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용돈도 챙겨주시고, 집안일은 하나도 시키지 않으세요. 하지만, 식사 때 아들들과 형님은 챙기면서도 저는 모른척 하거나, 아주버니 댁 아이만 챙기고 저희 아이들은 뒷전일 때, 왜 이리 서럽고 피곤한지 모르겠어요. 


한국과 달리 제사도 없고, 요리며 집안일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다 용돈을 요구하는 적도 없는데 그래도 시댁은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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