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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23. 2016

뫼비우스의 허리띠

서울 여자 도쿄 여자 #19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제가 작가님에게 조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요? 제 여자 조카는 18살입니다. 흔히들 이팔청춘이라고 하잖아요. 16세 전후의 꽃다운 나이, 네 그래요 작가님.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빛나는 순간이 왜 그때라고 말하는지 그 친구를 보면 알 것 같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참 예쁜 나이, 싸구려 청바지에 오천 원짜리 티셔츠 하나만 걸쳐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잘 모르더라고요. 항상 자기의 다리가 두껍다느니 얼굴이 큰 것 같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너, 그렇게 통통한 볼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서 그래. 엄마나 이모를 봐. 우리처럼 볼 살이 푹 꺼진 아줌마들은 너희들이 얼마나 부러운데, 그래, 네가 지금 그걸 어떻게 알겠니?     

한 동네에 사는 고등학생인 조카를 만날 때마다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제가 그 친구나이였던 때가 떠오르곤 해요. 특히 며칠 전 허리띠를 길게 늘어뜨린 조카의 옷차림을 보곤 더욱 그랬어요. 너 허리띠가 왜 그래? 길이가 남으면 잘라야지! 이모, 이게 요즘 유행이야! 더 길게 늘어뜨리는 애들도 있어. 아, 그건 마치 시간을 이어붙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연결되는 찰나였습니다. 1994년 여름, 저도 딱 그런 차림을 하고 친구들과 혜화동이나 명동, 혹은 이대 앞을 헤매곤 했거든요. 제 조카처럼 허리띠를 한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채 말입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오네요. 우린 왜 그런 이상한 패션에 열광했던 걸까요?     

1994년 여름, 그때도 올해처럼 무척이나 더웠어요. 당시 고3이었던 저는 무덥고 습한 교실의 분위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모의를 해서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밤의 도시를 활보하기도 했어요. 핑계야 만들기 나름이죠. 눈을 가늘게 뜨고 배를 움켜쥔 후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어요. 연기력이 없는 친구는 괜히 손바닥만 몇 대 맞고 교실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연기력이 형편없는 쪽에 속하진 않았어요. 남들은 어색한 연기로 인해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로 되돌아갈 때, 저는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뛰어난 연기자이던 제 친구 S양. 그래요. S양과 저는 야간 자율학습을 밥 먹듯 빼먹으며 지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어요. 우리는 숨 막히는 단체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걸까요?     


당시 우리가 전면에 내세우던 가치는 남들과 다르게 살자, 그러니까 적극적인 개인주의였습니다. X세대의 특징이 바로 그거잖아요. 기성세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개인주의가 시작된 세대, 우리는 어른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고 듀스나 삐삐밴드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파격을 즐겼습니다. 물론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마음에 쏙 들게 공부에만 매진한 친구들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던 겁니다. 제 생각에 작가님은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말해서 공부보다 노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친구였어요. 그래도 인생 살아지더군요. 너무 뻔뻔한 말이지만 저는 공부가 전부는 아님을 증명하며 산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호호.   


아, S양!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밤의 도시를 함께 활보하던 제 친구 S양 이야기를 하다 말았군요. 당시 그 친구는 배꼽을 드러낸 티셔츠를 즐겨 입곤 했어요. 저는 차마 그것은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배꼽만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배를 내놓고 자면 배탈이 난다고 말해준 엄마 때문이었을까요? 아무려나 배꼽티를 자신 입게 입은 그 친구의 패션에 뒤지지 않기 위해 저는 나름대로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대학생이던 언니의  GV2나 게스 청바지를 훔쳐 입는다거나 SYSTEM 가방을 몰래 매고 나오는 거죠. 그리곤 친구와 함께 이대 앞에 위치한 락카페에 가곤 했습니다. 작가님은 락카페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그곳은 콜라 따위의 음료를 시켜 놓고 테이블 사이에서 가벼운 춤을 추는 곳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좁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다니며 몸을 흔들어야 한다니!     


네 그래요 작가님. 그곳에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힙합 정도는 출 수 있어야 합니다. 작가님도 힙합을 아시나요? 중학교 때 일본으로 건너간 작가님은 어쩌면 90년대 힙합이 유행하던 한국의 분위기를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힙합은 이렇습니다. 저는 그 배꼽티를 즐겨 입는 친구네 집에서 며칠간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어요. 힙합은 동작이 자주 끊어지고 온몸을 흔든 다기 보다는 근육과 관절을 이용해 절묘하게 동작을 꺾어야 하는데 저는 몸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친구가 포기한 듯 이렇게 말하더군요. 됐다 그냥 가자. 너는 춤추지 말고 앉아서 분위기나 잡아.     

락카페는 보통 대학생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솔직히 고등학생들이 더 많았답니다. 가끔 맥주를 마시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술은 먹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배꼽티를 즐겨 입던 S양은 정말 춤이 좋아서 그곳을 자주 찾았을 뿐이고, 저는 춤보다 그곳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해가 질 무렵, 석양을 머플러처럼 걸치고, 그 보다 더 길게 허리띠를 늘어뜨린 채 배회하던 밤거리와 대학가의 락카페들!     


그때 제가 춤을 추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어둠이 내린 이대 앞의 거리와 반짝이는 도시의 네온사인, 그리고 폭이 넓은 청바지를 입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S양의 모습이나 듀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콜라 따위를 홀짝이던 제 모습 정도에요. 그때 우리는 지겨운 청춘아 빨리 지나가라! 속으로 외쳤던 것 같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가만히 두어도 그냥 지나가는 것이 시간인데 말이죠. 벌써 20여 년도 더된 이야기입니다. 배꼽이 훤히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따라 상표 Tag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던 그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유행이란 것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지금의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는 것이 저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과거와 연결된 현재, 현재와 연결될 미래. 뫼비우스의 띠, 아니 뫼비우스의 허리띠가 오늘 하루 제 머릿속을 휘감는 날이네요. X세대가 활보하던 1994년의 서울과 비교해 그때의 도쿄는 어땠는지! 작가님도 도쿄의 밤거리를 활보하던 소녀였나요? 아! 허리띠를 길게 늘어뜨린 작가님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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