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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함을 닮았어!

베른라이프

by 키다리쌤

1월과 2월 금요일마다 학교 수업은 스키장에서 스키 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금요일마다 스키장에서하루종일 스키를 탄다. 지난주 금요일 아이들은 스위스에서 처음 스키장에 가게 되었다. 스키 타기 앞서 12월에 학교에서 보내준 양식 스키 허가서에 스키 초보자라고 기록했어야 했는데 한국에서 한두 번 타서 초보자는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한 이 엄마는 중급이라 기록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지난 금요일 꽤나 고생한 모양이었다. 중급에서 기겁을 해서 다시 기초로 내려간 쌍둥이 둘도 있고 중간 코스에 남은 첫째와 둘째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둘째가 스키장에서 너무 겁을 먹고 왔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스키를 더 이상 타기 싫다는 둘째를 달래고 달래 토요일에 한번 더 스키장에 갔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죽을 뻔 했다는 아이를 위해 선생님과 수업을 신청했다. 원래 학교에서 시작하는 스키스쿨 이전에 많은 학교의 아이들이 스키 수업을 미리 듣고 준비한다는데 엄마인 내가 잘 모른다는 핑계로 혹은 알아서 잘하겠지 그냥 믿고 있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단단히 겁을 먹은 둘째와 셋째, 넷째를 데리고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잘 알고 있지만 엄마인 나는 길치로 아주 유명하다. 길을 잘 못 찾아서 헤매고 고생시키는 일이 다반사여서 아이들은 엄마가 과연 스키장을 찾아갈 수 있을지 의문인 듯했다. 기차역에서 기계로 표를 사고 '밑져야 본전이지? 다른 곳에 가면 돌아오면 되는 거 아니야?' 하며 헐레벌떡 내려가서 기차를 탔다. 12시 강습 시간에 맞게 타려면 이 기차(10시 30분 출발 -1시간 30분 걸림)를 타야 했다. 떡하니 아는 얼굴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학교 친구 가족을 만난 것이었다. 한참 수다를 떨었더니 벌써 스키장이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구글 지도 경로에 지금 탄 기차 정보가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고 하자 친구 엄마가 이 기차는 중간에서 갈라져서 앞의 구역과 뒤구역이 갈라져 다른 곳에 간다고 했다. '아마 조금만 앞에 타서 이 엄마를 안 만났더라면 나는 아이들과 어디에 가 있었을까? 아마 기차표 검사하는 사람이 알려줘서 어딘가 내려 다시 돌아오며 허무하게 지나버린 하루를 후회하며 돌아왔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스키장에 갔더니 둘째가 벌써 어려운 곳에 가면 하지 않겠다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쌍둥이 둘과 같이 셋을 어렵지 않은 기초반 수업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만난 선생님! 자세히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같은 학교 졸업생에 학부모 모임 때 반대표 아빠가 아들이 스키장에서 일한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 아들이 아닌가? 우연치고는 참 대단했다.


또한 아이들 스키 선생님 H는 영어로 내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자 그냥 아이들을 기다려서 수업에 데리고 갔다. 늘 나에게 학교 행사나 수업에 관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던 반대표 아빠도 그렇고 H도 그렇고 '친절함이 참 닮았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스키 수업이 끝날 때 반대표 아빠도 아들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만난 김에 인사를 나누었다. 스키 강습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독립한 아들을 챙겨주러 왔다는 것이다. 반찬도 챙기고 잘 지내는지 보러 왔다는 말에 유럽이나 한국이나 자식 걱정하고 돌보는 것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자신의 아이인지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닮아서 단번에 알아보았냐는 질문에 그때는 아무 말 못 했지만 다음번에 할 대답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니, 네 아들이 참 잘생겨서 너를 떠올리지는 못했어. 너도 알다시피 20대 파릇파릇한 나이잖아. 그리고 유럽인들 누가 누구인지 다 비슷해 보이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렇지만 학부모 모임 때 아들이 스키장에서 일한다고 했던 말과 영어 못하는 나를 기다려주는 친절함에서 너를 떠올렸지. 너의 친절함을 닮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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