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라이프
-H가 집에 올 때 선물했던 꽃을 표지에 올려요-
첫째의 친구 H는 키가 훤칠한 유럽아이입니다. 하얀 피부에 꼬불꼬불한 갈색 머리, 거기에 선한 미소까지 장착한 친구죠. 이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기에 H와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어요. H는 이사 가기 앞서 집을 이리 처분하고 임시로 마련된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평소 첫째 아이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했던) 친구들과 한국 라면과 만두 그리고 과자 파티를 하기로 했어요. 스포츠센터에서 아이들끼리 볼링을 치고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들어왔는데 H를 비롯하여 5명의 남자아이들이 몰려왔어요.
라면 물을 미리 올려놓았고 첫째 아이에게 만두를 구우라고 하고 미리 준비한 계란말이, 김, 김치와 샐러드, 음료수 등등을 꺼내 놓았어요. 동양 아이와 유럽 아이들이 섞여 있음에도 라면을 참 잘 먹네요. 요새 비비고의 냉동 만두를 '알디' 스위스 체인 마켓에서 팔아요. 그리고 신라면은 '미그로'라는 한국으로 치면 이마트와 비슷한 체인 마켓에서도 살 수 있고요. 한국처럼 신라면은 쉽게 구할 수 있죠. 그래서 그런지 맵다는 소리 없이 잘 먹어요. 밥이랑 김치, 김, 계란말이도 젓가락을 이리저리 사용해서 꺼내 놓은 음식을 내놓자마자 다 먹었어요.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꺼내 놓았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논쟁을 시작해요. 분명 저는 오렌지를 꺼내놓았는데 이게 오렌지인지 만다린(귤)인지 토론을 하는 거예요. 한참 오렌지의 특징, 만다린의 특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더라고요. 네이버에는 귤과 오렌지의 다른 점은 귤이 껍질이 얇고 벗기기 쉽다는 점이라고 나와 있는데 하필이면 그날 나온 오렌지도 껍질이 얇고 벗기기 쉬운 것이었어요. 아이들의 논쟁에 저는 오렌지라고 써져 있는 마트 영수증을 보여주었는데도 오렌지편 아이들은 '스위스인은 오렌지를 몰라.' 하며 마무리를 짓는 거예요. '나라마다 오렌지종이 다른가?' 혼자 생각했지요.
음식을 정리하고 과자랑 달콤한 초콜릿 후식을 꺼내 놓는데 H가 한국말로 "어떻게 지내요?" 말을 거네요. 핸드폰 듀오링고 앱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모양이에요. 아마 "How are you?"가 "어떻게 지내요?"로 나오는 모양이에요. 잠시 쌍둥이들이 나와 오빠들을 반기니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지내요?" 한국어 대화를 시도하네요. 한국어는 어른들에게 쓰는 말과 아이에게 쓰는 말이 조금 다르다고 대체로 '요'를 빼서 나이가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지내?"라고 말하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여태까지 쌍둥이들이 일본어 배운다고 하면 영어와 독일어에 집중하라고 하고는 했는데 이때 생각이 바뀌었어요. H가 나에게 한국말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 있죠! 아마 쌍둥이도 같은 반 친한 일본인 친구랑 일본어로 대화하려고 배우는 것 같아 이제는 막지 않으려고 해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되어 그 사람이 친근해 보이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이어서 한국 노래,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들이 다 '오징어 게임 2'를 봤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나온 한국 게임 중 공기가 있다고 공기를 가르쳐 주었더니 180cm가 넘는 H와 친구들이 마룻바닥에 앉아 공기놀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공기놀이를 해왔던 저는 차례로 공기 하나 던져 하나 잡기, 두 개씩 잡기, 세 개 잡기, 네 개 잡기, 꺾기까지 보여주었더니 H가 제법 따라 하네요.
다음날은 H의 엄마랑 H를 저녁에 초대했는데 그때 선물이라며 '공기' 6개를 선물로 주었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한국에 놀러 오면 같이 하자고요. 꼭 한국의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와야 한다고 말하며 헤어졌어요. 언제나 이별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