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려도 괜찮아!

베른 라이프

by 키다리쌤

스키를 배우러 다녀왔다. 그것도 안더마트에…..


한 20년 전인가? 20대에는 스키를 탔었다. 그것도 겨울 방학 때 스키 교사 연수를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지나 신발 신는 법부터 초급을 다시 배웠다. 사실 지난겨울에 허리도 아팠고 허리나 무릎을 다치면 안 될 것 같고 핑계 댈 것도 수백만 가지였지만 아이들이 같이 알프스에서 스키 탈 날들을 기대하고 있고 그래도 가장 젊은 지금의 나이에 배우는 것이 나은 것 같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쉬워졌다. 아침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스키 신발을 신고 신발끈을 조이고 스키를 들었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 비해 걸음도 느리고 스키 속도도 느리고 겁도 많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떠한가? 나는 이런 사람인 걸!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첫날은 내내 초보 슬로프에서 스키를 피자 모양으로 만들어 내려오며 멈추는 것을 연습하고 다음날부터 산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쉬운 블루 코스를 탔다. (블루-레드-블랙순으로 어렵다.) 스키 슬로프 옆이 바로 낭떠러지 같은 곳인 데다가 펜스 하나도 없어 겁은 나지만 천천히 내 속도에 맞게 내려갔다. 먼 타국에서 스키 타다 죽을 순 없으니 조절할 수 있는 속도로 내려가다 보니 같이 배우는 사람들보다 느리다. 결국 같이 배우는 사람들을 보내고 맨 마지막으로 내려가는데 강사님이 뒤에서 따라오신다.


그러나 너무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걸어서 내려왔다. 천천히 스키를 타서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또다시 이리저리 생각해도 다치고 사고 나는 것보다는 조절할 수 있는 속도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비록 초보이고 스키도 느리게 타지만 스키 타면서 보이는 안더마트의 산들은 예술이었다. ‘이 맛에 안더마트에서 스키를 타는구나! ’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새 날씨가 따뜻해져서 마지막 날인 세 번째 날에는 오전에만 스키를 타고 오후에는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Gemsstock에 스키 없이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꼭대기까지 가려면 곤돌라를 두 번 타야 하는데 무려 높이가 2961m 되는 데다가 올라가 보니 안더마트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표지 사진)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숨 막히게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스키 타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돌고 돌아서 만나는 웅장한 산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자연 속의 먼지처럼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사람임을 꼭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이 모두 내려갔고 빨리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멈춰서 산을 보는데 침묵 속에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스위스인들은 안더마트를 스위스의 심장이라고 부르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안더마트에서 느낀 강렬한 경이로움은 또다시 나를 이곳으로 이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자석이 당기는 대로 가는 철처럼 자연의 부름 앞에서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