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라이프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아이들의 부활절 방학 중 8일간 한국에 다녀왔어요. 그 와중에 예전에도 좋아하던 목욕탕을 친정어머니와 딸들과 다녀왔어요. 십 년 묵은 때를 밀고 온 느낌이에요.
오랜만에 간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갔는데요. 늘 그렇듯이 시작은 온탕이에요. 그리고 30분쯤 지나 냉탕에 처음 들어가는 순간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얼어 죽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이 추위에도 익숙해지네요. 무릎까지만 담그던 몸을 허리까지 그리고 온몸을 넣고 한참을 냉탕을 즐겼어요. 그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목욕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죠.
그 느낌은 마치 스위스에 적응하는 제 모습 같았어요. 처음 도착해서 온몸이 얼어붙듯이 새로운 환경과 음식, 언어가 낯설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힘들었어요.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네요. 가족끼리 지내는 소박한 주말도 영어로 보내는 이메일과 의사소통도 집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도 이젠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자극적이지 않고 돈 아까워 끝까지 먹게 되는 외식과 다르게 적당히 먹게 되어 몸무게가 줄었고요. 영어도 쓰다 보니 늘고 있어요. 사람들도 하나둘씩 알아 가게 되어 아이들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이집저집 다니기 시작해요.
아직 한국과 같이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익숙한 음식과 언어, 친구들이 있는 한국과 같은 온탕은 아니지만요.
어제 스위스에 돌아왔는데 집에 오니 편안하네요.
얼어버릴 것 같던 마음이 녹고 있나 봐요.
이제는 냉탕을 즐겨 보려고 해요!
냉탕에 앉아 목욕하는 사람 지켜보듯이
스위스에 살며 외국인들의 삶을 지켜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