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게 본 20km 걷기

by 키다리쌤

맨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평소에도 하이킹을 많이 하니까 20km 정도는 쉽게 걸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20km 걷기 대회’에 가족 모두 참여하자는 남편의 말에 흔쾌히 승낙을 했어요.


출발할 때 보니 군복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어요. 노인들도 아이들도 보이고요. 10km, 20km, 30km 걷는 거리도 각자 달랐어요.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은 더 일찍 출발한 것 같고요. 청아하고 맑은 오전 8시 30분 입구에서는 일단 기분은 좋았어요. 왠지 잘 될 것만 같은 기분, 완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일행과 함께 출발했어요.


그러나 5km 지점부터는 힘이 들기 시작했어요. 화장실 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고 빵집 옆에서 잠시 쉬며 일행과 오이를 나눠 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걸었어요. 같이 걷는 사람들과 너무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아 딸들과 손잡고 열심히 따라갔죠. 정확히 5km 정도 걷고 10분 정도 쉬는 것 같았어요.


10km쯤 지난 중간 도착지는 다리였어요. 베른 어딘가에 있는 나무다리에서 싸 온 빵과 오이, 물을 꺼내 먹었죠. 어디서 나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니 소시지 굽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냉큼 사서 아이들에게 두 명이 하나씩 주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이렇게 음식으로 배를 조금 채우고 다시 일행을 따라갔어요.


이제부터는 몸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오른쪽 다리에 약간의 마비가 오는 것 같았어요. 마치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라 컴퍼스처럼 왼다리를 활용해 오른 다리를 이동한다는 느낌이었어요. 또 다시 걷다 보니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와중에 들판에 핀 빨간 꽃은 왜 이렇게 예쁜 것일까요? 나중에 다시 꼭 오자며 막내 아이와 손잡고 갔지요. (표지 그림)


마지막 쉬는 지점은 야외수영장 근처였어요. 앉아 쉬는데 유럽 군인들이 군가를 부르며 행진하며 걷네요. 아하~군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더 이상 못 걸을 것 같은데 노래라니~ 줄 맞춰 걷는다니~ 대단해 보였어요. 이 지점에서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고 막내가 제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어요. 느낌이 신기했어요. 늘 엄마인 제가 늘 보호해 주고 대신 가방 들어주었는데 막내가 가방을 들어주고 등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또다시 출발! 6km가 남았다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정신력과의 싸움 같았어요. 언제 포기해도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끝까지 해보자고 하네요.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면 아깝다고요. 무거워진 다리를 질질 끌고 뒤에서 아이들이 밀어요. 뭐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까지~ 그런데 엄마인 저도 오기가 생겨 다시 힘을 내서 걷기 시작했어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데 너무 지친 것을 눈치챘는지 베른연방정부 앞에서 일행은 다시 휴식을 취했어요. 예쁜 군인 언니가 쌍둥이와 둘째에게 긴 줄젤리를 주자 냉큼 받아먹고 아이들이 히죽히죽 웃어요.


마지막 800m가 남은 지점 죽을힘을 다해 횡단보도에서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뛰자 일행을 인도하던 군인이 “10km 더 걸어도 되겠는데요? “ 힘내라고 응원했어요. “Noooooo~“ 절대 더 걷진 않겠지만 이것만은 끝내기로 했어요.


드디어 다섯 시간을 걸어 대망의 결승 지점에 도착했어요. 나눠준 물 한잔과 비타민이 정말 맛있네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엄마가 사준 소시지가 일등 공신이었어. 그거 먹고 힘이 났고 두 번째는 이모가 준 젤리야. 입에 착착 감기는 단 맛이 가장 힘든 시기에 걸을 수 있는 에너지를 실어 준 이등 공신이었지.” 아하하~ 소시지, 젤리의 도움으로 가족이 함께 걸은 이 날은 완주의 기쁨과 함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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