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기-
남편이 40살이 되던 해!
남편은 영어가 부족해서 많은 기회를 놓쳤던 것 같다며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와야겠다며 통보를 했다. '설마 가겠어?' 하던 마음들이 돈을 차곡차곡 모아가는 남편을 지켜보며 '결국 가겠군'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쿨하게 보내 주고 싶었다. 어차피 싸워봤자 남편을 못 이길 봐에 모양새라도 예쁘게 보내주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보내주기로 마음 먹었어도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젊어서 아이들 없을 때 가지! 젊어서는 뭐하고 이제 와서 간다고?'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래! 20년 동안 소처럼 일했으니 보내주자!' 이 두 마음 사이에서 출국하기 전날까지 왔다 갔다 했다. 남편은 그렇게 열심히 모은 어학연수비를 들고 영국으로 6개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노래를 부르며 떠났다. 아이 넷을 남겨두고...그러나 이미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나라도 정신 차리고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지내는 월화수 목금금 금이 시작되었다. 원래 남편은 설거지 담당이라 설거지만 도와주었었다. 집안일을 잘 안 도와주어 그런지 힘든 일은 많지 않았지만 주말마다 혹은 여름 피서철에 다들 놀러 가는데 아이들을 집에만 데리고 있기 미안했다.
그래서 지인의 도움을 참 많이도 받았다. 여름 내내 그리고 휴가철에도 놀이터에만 나가기 아이들에게 미안할 무렵 같이 놀이터에서 만나 친구가 된 K의 어머니는 가족 캠핑여행에 우리를 자주 초대하셨다. 초대받아도 가족들이 자유롭게 즐길 휴가에 끼어드는 것 같아 쭈빗쭈빗 망설이고 있으면 쌍둥이 손을 잡아 끌고 냉큼 따라오라고 하셨다. 성큼성큼 계곡으로 캠핑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K의 아버지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계곡에서 수영도 하고(유치원생 셋이라 안전상의 이유로 혼자서 계곡에 가지 못했다.) 캠핑장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같이 모여 이야기 나눌 때면 아이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아이는 아이들끼리 뛰어놀고 어른은 어른들끼리 아이들 지켜보며 수다 떨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빠 없는 시간조차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준 K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는 나의 귀인 중에 귀인이다. 집안일을 잘 안 도와준다고 늘 구박했는데 그래도 아빠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있었다. 나란 사람이 평상시에는 남편을 의지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멀리 여행을 간다거나 수영장에 갈 때 남편이 없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아이들 넷 중 남자아이들만 수영장 샤워실에 씻으러 보내기에 둘째가 너무 어려 안심이 안되고 어쩔 수 없이 수영장, 목욕탕 그리고 장거리 여행은 할 수 없었다.
남편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어학연수를 외쳐대더니 한국 사람 거의 없는 한적한 영국 시골 해변 마을로 갔다. 영어 공부하다가 지치면 수영하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놀러 다닐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편이 떠나기 전에 영국으로 여행을 오라면서 미리 비행기 티켓을 사 두었었다. 여행에 진심이고 가족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여행은 실컷 했다. 남들은 모아 놓은 돈이 많아서 다니는 여행이라고 여겼지만 우리는 빚지면서 여행을 먼저 하기로 했다. 돈은 아이들 좀 커서 벌자고 약속했다. 아이들 크면 나도 선생님으로 일하면 될 것이란 생각으로 우리는 여행을 가고 남편 어학연수를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