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기-
아이들과 에어 차이나에 몸을 실었다. 한번 경유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른 한 명에 70만 원 정도에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값이 해결되었다. 그래서 남편이 "에어차이나 괜찮겠어?(아이들 데리고 힘들 텐데) "라는 질문에 오케이 했다. (돈을 아껴서 여행경비로 더 사용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처음 타는 에어차이나도 아니고 베이징 공항도 처음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인파에 놀라고 공항의 사이즈에 다시 놀랐다. 전전긍긍하며 아이 넷을 데리고 짐까지 바리바리 들고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찾을 뻔했다. 묻고 물어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안에 내가 갈아타야 할 비행기 게이트를 찾아갔다. 네 아이는 군말 없이 따라왔다. 국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고 묻고 또 뛰고 반복하며 간 게이트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이 넷이라고 하면 비행기 탈 때 먼저 타라고 배려해 주는데 여기는 중국! 그런 서비스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공항도 무지 넓어서 비행기까지 가는데 버스도 타야 했다. 한국 공항처럼 단순할 것이라 여겼던 나의 착각이었다. 1시간 30분이라는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고생 끝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영국!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과 여행에 앞서 서로 한 가지씩 버킷리스트를 정해서 실천해 가는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었다. 예전에 스위스에 살면서 유럽 여행을 많이 했었고 명승지만 사진 찍으면서 버스나 비행기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의미 없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각자에게 한 가지 좋은 기억은 하나씩 남기자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여행 중에 꼭 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것을 통해 정리한 버킷리스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엄마)- 스위스 옛날 집 가보기 /
스위스 지인들 만나 보기
2. (첫째)- 공룡 박물관에 가보기 / 아빠랑 캐치볼 하기
3. (둘째, 셋째, 넷째) - 사파리 가보기/
놀이터에서 놀기
4. (아빠) - 영국 뮤지컬 관람
5. (공통)- 아빠가 다니는 어학원, 교회 가보기 /
아빠가 머무는 집 가보기
공항에는 아빠가 나와있었다. 아빠와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묶을 호텔로 이동했다.
참고로 나는 남편이랑 하는 여행에는 별로 로망이 없다. 남편은 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간단한 아침과 저녁을 만들어 먹는 것을 선호했다. 게다가 여행하고 피곤한 데 요리해서 먹고 자려면 엄마로서는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호텔이나 리조트는 너무 비싸고 우리처럼 오랜 기간 자유여행하기 위해서 서로 합의를 본 것은 우리 가족만 사용하는 화장실이 딸린 깨끗한 숙소였다. (예전에는 공용 화장실을 쓰는 게스트 하우스 숙소에 묵었었다. 아이들이 생기고 최소한의 기준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매끼 사 먹을 수 없으니 주방이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고생은 고생인데 편하게 갔던 여행은 잘 기억이 안 나고 고생한 기억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 번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난방이 고장 나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9월 쌀쌀한 가을 날씨에 찬물로 샤워를 했다. 따뜻한 여름날도 아니고 걸어 다니느라 고단한데 뜨거운 물이 아닌 찬물로 씻으라고 하니 온갖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남편이 고장 낸 것도 아닌데 모든 화살을 남편에게 돌리고 있을 무렵 아이들이 하나씩 들어가 씻고 나오는 것이었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셋째, 넷째는 유치원생이었다.) 엄마인 나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씻고 나왔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어른인 그리고 엄마인 나보다 나을 때가 있다.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씻고 나오는 아이들 앞에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다음 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대안으로 근처 체인으로 운영 중인 자매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씻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여섯 식구는 수건 한 장씩 척척 걸치고 동네 목욕탕 가듯이 영국 런던 한복판을 모델이 런웨이를 걷듯이 당당히 걸어서 갔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씻고 나왔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클로즈업되듯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고생했던 추억도 즐거웠던 기억 속에 섞여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