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기
꿈에서 가끔 보았었다. 내가 살던 동네 Urdorf(취리히 안에 있다. Urdorf 동 정도 되겠다)! 사람과 개와 말이 같이 산책하던 그 길, 둘째 아기를 낳았던 병원, 아이들과 여름에는 거의 죽치고 앉아 동네 아이들과 놀았던 야외수영장, 독일어 동화책을 뒤져 보았던 도서관, 그리고 첫째가 가던 유치원,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갈 곳 없을 때마다 가던 동네 사랑방(Familien Zentrum)까지 눈에 선하게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나의 버킷리스트에 스위스에서 살던 동네 가기를 넣었다. 직접 가서 보니 10년 전 그대로였다. 급격한 변화를 하지 않는 유럽의 동네답게 내가 살던 빌라, 산책로, 마트, 도서관 등등 모두 그대로였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걷던 그 산책로를 걸었다. 야구 글러브를 챙겨가서 살던 빌라 앞 놀이터에서 캐치볼도 하고 유치원에도 가보았다. 가기 전에는 그렇게 그립고 가고 싶더니 직접 보고 오니 아련한 마음은 사라졌다. 꿈에도 나타나던 그립고 아련한 가고 싶은 마음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달래지는 듯했다.
그리운 것은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들! 같은 교회 다녔던 친구 같던 언니 같던 집사님들 집에도 방문했다. 장소들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10년 전 그대로였다.
스위스에서 아이 낳고 아이 둘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던 나는 스위스 한국인 마트에서 파는 김치는 너무 비싸서 샐러드를 김치 삼아 먹고 있었는데 음식 솜씨 좋은 N집사님이 깍두기를 담가 건네주셨다. 한국에서 먹는 흔한 김치가 스위스에서는 왜 그리 맛있었는지 아끼고 아껴서 김치 국물 한 방울까지 먹었었다. 이번에 가족이 스위스 간다는 연락에 흔쾌히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다니던 딸들도 이젠 대학교, 고등학생이고 N집사님 댁도 두분도 10년전과 똑같았다.
그리고 교회에서 오고 가는 나그네를 잘 섬겨주셨던 P집사님 댁에서는 하룻밤 신세를 지고 왔다. 영국에서 스위스로 넘어가서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왔는데 깨끗해 보이던 침대에서 벌레가 있었는지 막내 얼굴이 빨갛게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스위스에서 병원에 가자니 번거롭고 일단 약국에서 물어보니 배드 버그가 문제였다는 것 같다는 말을 하신다. 여행 중에 아이가 아프면 걱정이 앞서고 두려움이 몰려온다. 더 아프면 어쩌지? 여행이 악몽이 되려는 순간에 P집사님네 갔다. 우리가 온다고 여러 가지 요리에 침구까지 싹 정리하시고 우리들을 맞이해 주셨다.( 노고에 글을 쓰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 막내의 얼굴을 보시더니 상비약을 발라주셨다. 평소 둘째 딸이 입던 작아진 옷들을 꺼내 쌍둥이들에게 입혀 주셨다. ( 보수적으로 옷을 입히는 엄마 덕에 끈나시 원피스는 입어보지 못했던 아이들은 하얀 끈나시 원피스, 언니 옷을 얻어 입고 뛸 듯이 기뻐했다. 센스쟁이 집사님은 새 옷 못지않게 물려주는 옷을 좋아하는 내 취향도 잘 알고 계셨다. ) 우리 부부도 여행 다니느라 노곤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녹이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커피 한잔 하며 수다 떨고 금세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공놀이하러 밖으로 놀러 나갔다. 저녁에는 최근에 아이를 낳은 이웃 사는 젊은 부부 집사님(옛날 스위스에서 만났을 때는 같은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었다.)도 놀러 와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룻밤만 놀았는데도 아이들은 친해져서 다음날 헤어지기 아쉬워 우리들을 두고 학교에 가는 것을 어려워했다.
잠시 들른 L집사님 댁에서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신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는데 아이들에게 여행하며 용돈 하라고 쥐어주신 유럽 돈 유로를 받아 들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다시 스위스에 올 수 있을까? 또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앞섰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