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기-
스위스 살 때 알게 된 L부부가 있었다. 아기들 나이가 비슷해 그 당시 우리 집에 와서 놀기도 하고 그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돌아가면서 놀았었다. 하루는 그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 집 공기가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다. (나는 딸 셋의 둘째로 커서 특유의 눈치 레이더가 있다.) 그 당시 남편 L이 전 세계 교수 구직 리스트를 열어 직장을 구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영국 교수 자리를 얻게 되어 면접을 보러 준비한다고 했다. 그 묘한 시기에 아이들과 놀러 갔으니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돌아왔었다. 정장을 구해 면접을 보고 온 남편 L은 결국 영국 교수로 가게 되었다.
이번 영국 여행에서도 잠시 그 집에 머물기로 했는데 가서 보니 두 딸은 우리 아이들만큼 훌쩍 커 있었다. 영국에서도 학교 잘 다니고 방과 후에 구몬도 하고 온다고 했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구몬이 아이들 잡아 놓는 것은 똑같았다.
풋풋한 젊은 날 L부부는 (직업이나 사는 것이 어느 정도 정해진 우리 부부와 다르게) 어떤 직장을 갖게 되어 어떻게 살게 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었는데 영국에서 교수를 10년째 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중년이 되어 만난 우리는 서로 나이가 비슷하고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해서 그런지 하는 고민도 비슷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후반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모아졌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사람이 평생에 하는 고민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영국에 살아서 그런지 치열한 한국 교육과는 한 발짝 떨어져 여유롭게 아이들의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아이들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골라 찾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란 말과 성적이란 스트레스 대신 다양한 독서와 스포츠, 산책으로 채워진 일과들을 바라보며 나와는 노는 물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거대한 물고기라고 한다면 말이다.)
아이들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던 사파리에 (L부부가 집근처 사파리를 추천해 주었다) 갔다. 결제를 하고 차로 들어설 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각각의 동물들이 균형 있게 나누어져 있었는데 원숭이가 우르르 둘러싸인 사파리에 들어가자 원숭이들이 우리를 구경하러 우르르 몰려들었다. 차 위에도 몇 마리, 차 유리창 앞에도 몇 마리 우리들이 사파리를 온 건지 원숭이들이 우리를 구경하러 나온 건지 헷갈렸다. 게다가 원숭이들이 다칠까 꼼짝없이 기다리며 원숭이들이 떠날 때를 기다렸다. 이어서 간 사자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으나 남편이 좀 더 사진 잘 찍어 보겠다고 창문을 내리자 창문을 올리라는 다소 경직된 안내원들의 경고 방송이 크게 들려왔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보지 않는 줄 알았더니 cctv와 근처 여기저기 관리하시는 안내원들이 있었다. 사자 우리는 사고가 날 수 있다 보니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는 듯했다. 다양한 사슴과 코뿔소 등등 한국의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사는 것과 다르게 넓은 장소에서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좀 더 친환경적이고 동물들이 살기 편할 것 같아 좋아 보였다.
며칠 머물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영국 여행으로 인해 중간에 한번 봤다고 가끔씩 L부부 페이스북에서 보는 딸 사진이 더욱 반갑다. 아이들 커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L부부의 넉넉한 미소를 닮아가는 것 같다. 어디에 살던지 아이들 모습에서 그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