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현 전 광주시장과 '조주빈 사건'
씁쓸한 권력 현상의 말로
지난 2018년 말,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윤 전 시장이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 김모씨에게 4억 5천만 원을 건네고, 자녀들을 부정한 방식으로 채용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보이스피싱범은 "노무현의 숨겨둔 자식이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를 돌봐줄 것을 요청했다. 윤 전 시장은 보이스피싱범이 언급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말에 호흡이 정지되어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증언했다. 결국 윤장현 전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나는 이 사건을 접하고 1950년대를 풍미한 ‘가짜 이강석 사건’을 떠올렸다. 이강석은 1950년대 권력의 핵심이었던 이기붕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는 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킨 것이다. 자식이 없었던 이승만은 오랜 소원이었던 대를 잇는 일을 성취하게 되어 크게 기뻐했다. 이는 세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 이승만은 대를 잇게 되었고 이기붕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이강석은 국가의 일인자를 양아버지로, 이인자를 친아버지로 두어 막강한 위세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는 헌병대원의 뺨을 때리는 등의 일로 각종 구설에 올랐다.
▲권력 현상이 발현할 때 경계해야 할 것
1957년 8월 30일, 자신을 이강석이라고 주장하는 청년 한 명이 경주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버지의 밀명을 받고 경주에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경주경찰서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호흡의 정지되어 판단력이 흐려졌다. 대통령의 아들이 내려왔다는 소식에 경찰서장은 즉시 달려 나가 각하의 아들을 극진히 영접했다. 자칭 이강석은 특급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경찰서장은 자신의 차에 각하의 아들을 모시고 불국사 관광을 시켜주었다. 관광가이드로 변신하여 경주를 소개해준 것이다. 사실 자신을 이강석이라고 주장한 청년은 이강석이 아닌 대구의 청년 강성병이었다. 강성병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이강석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자 자신감이 붙어 이 같은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주경찰서장은 영천으로 이동하겠다는 강성병의 말을 듣고 영천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각하의 아드님이 오셨음을 알렸다. 강성병은 자신감이 붙어 이곳저곳을 시찰하며 돈을 받고 다녔다. 지역마다 유지들이 거금을 모아주어 총 47만 환에 이르는 돈을 얻었다. 그는 멈추지 않는 페이스 피싱을 통해 자신의 본래 고향인 대구에 소재한 경북도청까지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근직 경북도지사는 이강석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이강석의 동창인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강석이 가짜임을 재차 확인했다. 강성병은 결국 체포되었고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재판은 큰 화재가 되었고 강성병은 재판장에서 “자유당의 부패함을 시험한 것”이라는 당돌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유서 깊은 ‘아첨 문화’ 자화상
당시 민중들은 ‘가짜 이강석 사건’을 통해 권력을 가진 이들의 비루함에 주목했다. 이승만 정권은 뿌리부터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1959년 7월 31일, 이승만은 흔들리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력한 정적인 진보당 조봉암을 사법 살인했다. 이어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하였고 결국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이기붕은 강원도의 한 군부대로 피신했고 당시 육군 소위였던 이강석은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진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이강석을 사칭했던 강성병 역시 출소한 후 음독자살을 통해 삶을 마감했다.
곱씹어 봐도 참으로 씁쓸한 역사다. 강력한 권력은 실제로 부여된 권한을 넘어 그 이름만으로도 위력을 행사하는 일이 가능하다. ‘윤장현 사건‘과 ‘가짜 이강석 사건’은 권력자와 관련된 이의 부탁이라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사라져 버리는 유서 깊은 아첨 문화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이강석’과 ‘권양숙’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된 두 대통령의 권력은 그들의 이름이 사용된 사건과 관련된 이들에게 큰 불행을 안겨주었다.
▲'조주빈 사건'과의 연계성이 드러나다
2020년 3월 25일, '윤장현' 사건의 또 다른 이면이 드러났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항소심 재판을 받던 도중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연루된 성범죄자 조주빈에게 속아,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조주빈은 청와대에 근무하는 '최 실장' 명의로 윤장현 전 시장에게 접근했다. 그는 본인이 손석희 JTBC 대표이사와 막역한 사이라며, JTBC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해명'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최 실장은 윤장현을 서울로 불러, 본인이 손석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여주었다. 이를 본 윤장현 전 시장은 JTBC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최 실장' 측에 금품을 건넸다. 그는 최 실장이 광주로 보낸 '박 사장'이라는 인물에게 현금 3천만 원을 건넸다. 윤장현은 이 과정에서 조주빈에게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 사장 자리를 청탁하기도 했다.
2020년 3월 25일,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은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 주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발표했다. 그는 "윤장현 전 시장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낱 성범죄자에 불과한 자가 본인이 '거물'이라도 된 양 착각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웠다. 그는 사실상 윤장현 전 시장에 대한 본인의 범행을 자백한 셈인데, 본인을 더 큰 인물로 내세우고 싶다는 그릇된 자아실현의 욕망이 선명하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조주빈이 행사했던 각종 권력은 본래 권력화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개인정보, 약점, 인연, 이러한 것들이 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을 넘어서는 사회는 '거대한 n번방'과 다르지 않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느끼기에 이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은, 대통령과 혈연관계로 묶여 있는 인척들이나, 손석희와 같은 유명인들과 친분 관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인지, 그의 씁쓸한 말로에서 그의 권력에 대한 그릇된 신앙심을 확인한다. 나는 인간은 계급에 경례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계급은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렇다면 '시민시장'을 내세웠던 윤장현 전 광주시장, 그는 대체 어디에 경례하고 있었던 것일까? 적어도 시민이 부여한 권력은 아니었음이 확실히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