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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r 19. 2020

전남대학교 '얼차려'의 추억

2013년, 군대문화는 여전히 공고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도, 대한민국에 위치한 다수의 대학에는 '얼차려'가 잔존했다. 광주도 마찬가지였다. 위 사진은 청년들이 얼차려를 받고 있는 사진이다. 마치 논산훈련소에 막 입영한 느낌이 난다. 그러나 이 사진은 무려 2013년도 광주지역 5개 대학 신입생들이 얼차려를 받고 있는 사진이다. 전남대학교 학생사회 역시 마치 군대처럼 학생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서열정리를 확고히 해왔다. 2013년, 전남대학교 104개 학과 중 77개 학과에 얼차려가 잔존했다. 전대신문이 전체 학과를 조사한 후 보도한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 기사를 접한 전남대학교 중앙운영위원회는 "해당 기사의 관점이 편향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해 총학생회장 김민규는 전대신문 기자를 찾아와 "대체 누구에게 취재했냐. 학교 이미지에 안 좋다. 간단한 PT체조 정도는 문제 될 게 없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개개인에 따라 기합을 달리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말에는 "전대신문이 기합을 심각하게 느끼는 학생에게만 취재한 것 아니냐"는 말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도를 떠나, 타자에게 강제로 PT체조, 복명복창, 뒤로 취침 등을 강요하는 것,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전대신문은 "총학생회 측이 항의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했다.


 전남대학교의 단과대학 중에서는 공과대학의 폭력성이 특히 심각했다. 이들에게 선착순 달리기, 오리걸음은 얼차려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들은 MT 때 새벽에 계곡에 입수할 것을 강요하고 흙탕물을 구르게 했다. 최소 10년간 이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존재했기 때문에 12학번 모임에 02학번이 참석했다. 이들은 MT에서 순종적인 신입생을 뽑아 '과대'를 맡겼다. 과대들은 선배들로부터 '족보'가 담긴 USB를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기본적인 수치만 바꿔서 엑셀에 입력하면 그대로 결괏값이 나오는, 아주 유용한 자료들이 담겨있었다. 전남대 공대생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공부할 필요가 줄어든 과대들은 여러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억압에 순종적인 사람들이 학생회 의결권을 부여받고 체제 유지의 첨병이 되었다. 과대가 된 신입생들은 곧 예비역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고, 그 자리에서 선배가 신던 양말에 통과시킨 후 변기 물을 섞은 술을 마시는 등의 일을 강요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소문이 되어 퍼지면, 일반 재학생들은 그들이 그런 일들을 겪기 때문에 직책을 맡고 일부 특혜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공과대학 일부 학과에는 MT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장학금 선정 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쓰레기 같은 제도도 존재했다. MT 참석자에게 '포인트'를 부여하여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는 한 재학생이 문제제기를 진행하자 2015년에야 폐지되었다.


2013 대학문화운동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대자보


 이러한 현실에 당당하게 맞섰던 사람도 있었다. 2013년, 전남대 인문대학 백선경씨는 "MT=나치", "MT=일본제국주의"라는 내용이 담긴 풍자 그림을 대자보로 제작해 학생회관에 게시했다. 그는 대학문화운동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을 발견한 인문대학 학생회는 풍자 대자보를 강제로 철거해버렸다. 근대화된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미개한 일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었다. 항의가 이어지자 학생회 측은 "학우들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제거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감히, '우리들의 MT'를 나치와 일제에 비유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학생사회의 억압은 공고했다. 그랬기에 더욱 MT가 나치와 일제에 비유되는 것이 진심으로 불쾌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사회의 압제는 전두환과 군부독재가 사회에 이식해두었던 군대문화라는 이름의 세포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해방된 조선에 남겨진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에서 기인한 것들이었다. DNA 검사의 결과는 명백할 것이다. 군부독재가 형성한 군대문화를 내면화하여, '나이'를 '계급' 삼아 억압을 행사하던 당대의 전남대학교는, '민족전대'일지언정, '민주전대'는 아니었다. 어느 MT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정신 안 차립니까?"를 외쳤을 어리석은 사람을 떠올리며 '백선경'이라는 사람의 용기를 쉽게 잊어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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