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0일, '홍콩활동가 초청 강연회'가 전남대 이을호 강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강연 주최로는 광주인권회의, 5.18기념재단, 정의당 광주광역시당, 광주시민단체협의회가 손을 잡았다. 홍콩 시위가 거세게 진행되던 2019년 10월부터 준비된 강연이었다. 이들은 '억압에 맞선 시민들'을 주제로, 홍콩활동가와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을 초청하여 '홍콩항쟁 현황', '국제연대', '5.18과의 연계성' 등을 진솔하게 공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강연 진행을 불과 5일 앞둔 12월 5일 전남대 철학과 학장이 강연 실무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돌연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이미 대관이 확정되어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강연 실무자와 전남대 철학과 학장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통화 녹취)
<전남대 철학과 학장과 강연 실무자 통화 내용>
전남대 철학과 학장 : 총영사가 와서 강력하게 항의를 했데. 총영사 그쪽에서 항의가 들어와서 자기들도 이게 책임 못 진다. 그런데 (전남대) 총장이 어떻게 책임을 지겠어.
강연 실무자 : 혹시 공문으로 내려온 게 있나요?
전남대 철학과 학장 : 그런 건 없는데 (전남대) 총장이 직접 인문대 학장한테 얘기를 해서 학장이 지금 나한테 큰일 났다고 찾아와서.
강연 실무자 : 당연한 얘기지만 아마 바로 광주 인권단체 시민단체 명의로 전남대 총장 규탄 기자회견이 열릴 것 같아요.
전남대 철학과 학장 : 그러니까. 나도 그런 부분이 걱정이 돼서. 며칠 전에 이런 상황이 되니까 그쪽에선 당혹스럽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전남대학교 측은 12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던 '홍콩활동가 초청 강연회'를 사실상 금지했다. 이 과정에서 전남대학교 정병석 총장이 인문대학 학장에게 "총영사 측 항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대관 취소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용납할 수 없는 민주주의 파괴행위였다. 나는 이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관련 내용을 공개할 창구가 없었기 때문에, 담당자들과 합의해 진행했다.
'광주인권회의' 측은 빠르게 차선책을 수립했다. 우선 강연 장소를 구 전남도청 별관으로 변경하고,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러한 사실들을 포함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강연을 하루 앞두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측에서 구 전남도청 별관 사용 허가를 취소했다. 구 전남도청을 관할하는 국가기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측은 대관을 진행한 5.18 기념재단 측에 "외교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윗선에서 불가 방침을 내렸다"고 통보했다. 이 사실은 즉시 언론에 보도되었다. ACC는 빠르게 입장을 바꿨다. 그들은 "공식적인 대관 요청이 들어온 바 없어, 그 어떤 행정처분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그동안 5.18 기념재단이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 행사들은 모두 대관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결국 '홍콩'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올 파급력을 우려한 겁쟁이 같은 국가기관들이 헌법상의 책무를 헌신짝처럼 버렸음이 선명했다.
당시 주최 측 대표 중 한 사람이었던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위원장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전남대학교는 국립대학이면서 동시에 지방 거점 국립대학에 속한다. 이 학교의 총장은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다. 중국 영사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 행사를 위한 대관을 취소해 줄 것을 요청하더라도, 국립대학교와 그 총장이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라도 모이고 토론해서 행동할 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대학은 시민의 것이므로 우리는 대학에서 예정된 시민의 회합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전남대학교의 조치에 크게 실망했다. 더군다나 5.18 항쟁이 시작된 곳 아닌가!"
같은 날, 전남대 측이 강연 취소에 대한 해명을 내놓았다. 그들은 "총영사 측 항의는 없었다"고 했다. 철학과 학장은 "총장이 총영사 측 압력을 받고 직접 강연 취소를 지시했다"는 본인의 발언을 수습하며,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 보니까 말을 지어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광주 MBC 취재 과정에서 전남대 관계자에 의해 "중국 영사관 직원들이 전남대에 찾아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결국 중국 총영사 측이 압력을 행사했음은 사실로 드러났다.
2019년 12월 10일, 홍콩활동가 초청 강연회 '억압에 맞선 시민들'이 광주 YMCA에서 진행되었다. 주최 측은 행사 진행에 앞서 주광주 중국 총영사관과 전남대학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광주를 방문한 홍콩활동가는 "대관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전남대에서의 강연을 기대했었다고 말했을 때에는 눈물이 고였다.이날 강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2019년 12월, 전남대학교는 '민주 길' 조성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길'을 만드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는 깊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72년 12월, 전남대 재학생 이강과 김남주가 전국 최초의 반유신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유인물 '함성지'를 배포했다. 다음날, 전남대 학생처장은 정보과 형사를 대동, 전남대 활동가 박석무를 불러 주동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했다.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났다. 전남대 활동가들은 박정희가 자수 기간을 제시했음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그다음 날 반유신 시위를 감행했다. 전남대 활동가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버스가 정차하자 그들은 즉시 여러 단과대로 달려갔다. 박형선은 농과대학으로 달려가 유인물을 뿌렸다. 경찰에 체포된 박형선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76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살이를 하고 출소한 윤한봉이 전남대에 왔다. 그가 봉지광장에 앉자, 교수들이 그에게 다가와 학교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그가 학교 축제 때 옥바라지를 위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자 학생처장이 달려와 학교에서 나가라고 했다. 1980년 5월, 송기숙, 명노근 등 일부 교수를 제외한 전남대 교수들은 버스를 타고 서울로 피신했다.1980년 5월 27일 새벽,윤상원과 이양현과 김영철은 구 전남도청 별관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윤상원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남대 '민주길'은 민주화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박관현, 윤상원, 김남주, 윤한봉의 공간을 관통한다. 그러나 2019년 12월, 전남대학교 총장은 중국 총영사 측의 압력에 굴복하여 홍콩 민주화 지지 강연을 취소시켰다. 민주길은 금지와 통제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기리지만, 그 길을 조성한 사람들은 여전히 금지와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서글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