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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r 09. 2021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보여준 인간의 위대함과 한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리뷰

# 본 글은 <만화 귀멸의 칼날> 및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멸의 칼날>이 보여주는 구도는 선명하다. 미천한 인간들이 힘과 영생을 위해 인간을 살육하는 '오니'에 맞서 싸운다. 당연히 '오니'는 압도적으로 강하며 끝없는 생명력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이들의 팔과 다리는 신체에서 분리되어도 다시 자라난다.


 그러나 인간은 제 아무리 스스로를 단련해도 '오니'의 강함을 넘어설 수 없다. 작중 카마도 탄지로의 대사처럼 잘려나간 인간의 팔·다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은 한계가 명확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간들은 오니에 맞서기 위해 '조직'을 만든다. 귀살대(鬼殺)는 그렇게 푸른 달빛 아래 섰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꿈을 다루는 오니인 하현1 엔무에게 점령당한 무한열차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일행과 귀살대 염주(炎柱) 렌고쿠 쿄쥬로는 엔무의 혈귀술에 의해 잠에 빠진다. 엔무는 인간의 원동력이 정신과 마음에서 비롯됨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탄지로는 강인한 정신력을 통해 혈귀술을 깨뜨린 후 엔무에 맞선다. 잠에서 깨어난 쿄쥬로와 주인공 일행은 열차에 탄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지켜낸다. 탄지로는 일륜도로 엔무의 목을 다. 결국 엔무의 소멸과 함께 무한열차는 그 고동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염주 렌고쿠 쿄쥬로와 부상을 입은 탄지로의 눈앞에 상현3 아카자가 등장한다. 상현은 십이귀월 중 가장 강한 여섯 오니를 지칭한다. 상현의 오니들은 지난 100년간 교체되지 않고 자리를 지켜왔다. 쿄쥬로와 몇 차례 공격을 주고받은 아카자는 쿄쥬로에게 이 싸움의 결과를 예언하듯, "너는 지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카자는 쿄쥬로에게 오니가 될 것을 제안한다.


네가 왜 지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는지 알려주지. 인간이기 때문이다. 늙어가기 때문이다. 죽기 때문이다. 쿄쥬로 너도 오니가 되어라. 나와 함께 언제까지나 대련하며 강해지자.


 그러나 염주 렌고쿠 쿄쥬로는 아카자의 제안에 응하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물의 아름다움이다. 늙기 때문에, 죽기 때문에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거다. 강함이라는 말은 육체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둘은 검과 주먹을 부딪혀가며 대결을 이어간다. 어느새 쿄쥬로의 왼쪽 눈은 아카자의 주먹에 뭉개졌다. 갈비뼈는 부서졌고 내장에도 큰 상처가 났다. 그러나 아카자는 첫 등장 시점과 같은 모습이다. 아카자는 다시금 쿄쥬로에게 오니가 되어 살아남을 것을 제안한다. 이에 쿄쥬로는 답한다.


나는 내 책무를 다할 뿐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죽게 하지 않아!


 그의 등 뒤에는 부상당한 탄지로와 수백 명의 승객이 있다. 쿄쥬로는 그들을 지키고자 한다. 귀살대의 탄지로, 이노스케, 젠이츠 그리고 오니에 맞서 싸우던 오니 네즈코를 지킨다. 비록 그 자신은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할지 모르나, 쿄쥬로는 언젠가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내일의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쿄쥬로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화염의 호흡 제9형 연옥'을 사용한다.


마음을 불태워라. 한계를 뛰어넘어! 나는 염주 렌고쿠 쿄쥬로.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죽게 하지 않아! 화염의 호흡 제9형 연옥!


 아카자가 '환상적인 투기'라고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쿄쥬로의 연옥은 아카자의 몸을 여러 차례 꿰뚫지만 끝내 그를 파괴하지 못한다. 이내 아카자의 팔이 쿄쥬로의 복부를 관통한다. 이제 쿄쥬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때 쿄쥬로에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힘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해 그 재능을 사용해야 할 사명이 있다"던 어머니의 유언. 쿄쥬로는 마지막으로 아카자의 목으로 검을 휘두른다. 저 멀리,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카자는 쿄쥬로가 놓아주지 않는 팔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태양을 피해 도망간다. 태양을 마주한 오니는 소멸하기 때문이다. 부상을 딛고 일어선 탄지로는 아카자를 향해 검을 던지며 소리친다.


도망치지 마! 이 비겁한 놈아. 우리 귀살대는 언제나 너희에게 유리한 밤의 어둠 속에서 싸우고 있어. 살아있는 인간이 상처도 쉽게 아물지 않는데 잃어버린 팔다리가 돌아오는 일도 없는데 도망치지 마 비겁자야! 너 같은 놈보다 렌고쿠씨가 훨씬 더 대단해 강해 렌고쿠씨는 지지 않았어 아무도 죽게 놔두지 않았어 끝까지 싸웠어 끝까지 지켜냈어 이 싸움은 렌고쿠씨의 승리야 너의 패배야!


 염주 렌고쿠 쿄쥬로는 마지막으로 "언젠가는 너희들이 귀살대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인간을 죽이는 오니를 멸(滅)하여 내일의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은 이제 다음 세대에게 남겨졌다. 쿄쥬로는 인간으로 남았기 때문에 죽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 명예이고 무엇이 긍지인지 알았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끝까지 지켰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쿄쥬로와 같은 인간을 통해 문명은 지금껏 진보해왔다.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 평등하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작중 최초의 호흡을 통해 그 어떤 오니라도 일격에 쓰러뜨리던 츠기쿠니 요리이치 역시 오니가 된 본인의 츠기쿠니 미치카츠를 강함으로 압도했으나 베어 넘기지 못하고 수명을 다해 눈을 감았다.


 요리이치의 형 미치카츠(상현1 코쿠시보)는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스스로 오니가 될 것을 선택한 인물이다. 오니 됨을 통해 그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요리이치는 50년 만에 조우한 본인의 친형 미치카츠에게 이렇게 말한다.


딱하구려, 형님···


 인간은 위대함과 한계를 제 한 몸으로 온통 떠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최대 한계인 늙음과 죽음이라는 필멸의 운명을 극복한 오니는 한계가 없으되 위대함도 없다. 그래서 탄지로는 소멸해가는 오니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염주 렌고쿠 쿄쥬로는 끝내 오니가 되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요리이치는 마치 마지막 순간의 쿄쥬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언젠가 후대에 등장할 사람들이 자신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미래를 낙관했다.  


 그러나 상현1 코쿠시보는 스스로의 존재에 환멸을 느끼고 자멸을 택한다.


이 추한 모습이 정녕 내가 바라던 모습인가···


 극장을 나오며 화려한 작화, 빛나는 영상과 어울리지 않는 낡은 소설을 떠올렸다.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그렇다. "인간은 파멸당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한계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더 아름답고 비감한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렌고쿠 쿄쥬로의 분투를 통해 인간의 위대함과 한계를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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