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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Sep 26. 2019

전남대 총학, 4년간의 찬반 선거(2012~2015)

무기력에 빠진 학생사회

 2012년, NL 세력은 1년 만에 전남대 총학생회를 수복했다. 이전 1년간 총학생회를 운영한 대안 세력 '전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설'은 첫해 선거에서 59.9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를 득표한 우리 학생회에게 압승을 거뒀으나, 이듬해 선거에서는 46.6%를 득표하여 48.1%를 득표한 액션 선본에게 간발의 차로 패했다. 이 시점까지도 전설 선본은 여전히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전설 측은 끝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고 1년 전과 같은 선거 파행을 통해 학생들을 실망시켰다. 이후 전설 세력은 더 이상 전남대 학생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다. 대안세력이 사라지자, 전남대 총학생회는 다시 4년간 단일 세력에 의해 운영되었다. 2012년부터 2015년 11월까지 있었던 4차례의 선거는 모두 단선, 찬반 투표로 치러졌다. 김민규, 양군재 (2013) 장민규, 김한성 (2014) 김한성, 정상엽 (2015) 정상엽, 유창민 (2016)이 차례로 총학생회를 이어받았다.



 청년들이 얼차려를 받고 있는 사진이다. 얼핏 보면 빨간 모자를 눌러쓴 논산훈련소 조교가 떠오르지만, 군대 사진은 아니다. 이 사진은 무려 2013년도 신입생들이 얼차려를 받고 있는 사진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군대처럼 학생들에게 기합을 주고 서열정리를 확고히 하던 문화가 공고했다. 2013년 4월 전대신문이 취재를 통해 여전히 전남대학교 신입생들이 참여하는 MT에서 기합 등의 얼차려가 행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취재 결과 전남대학교 104개 학과 중 77개 학과에 얼차려가 잔존했다. 해당 기사를 접한 전남대 중앙운영위원회는 "해당 기사의 관점이 편향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해 총학생회장 김민규는 전대신문 기자를 찾아와 "대체 누구에게 취재했냐. 학교 이미지에 안 좋다. 간단한 PT체조 정도는 문제 될 게 없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개개인에 따라 기합을 달리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말에는 "전대신문이 기합을 심각하게 느끼는 학생에게만 취재한 것 아니냐"는 말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도를 떠나, 타자에게 강제로 PT체조, 복명복창, 뒤로 취침 등을 강요하는 것,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전남대학교 단과대학 중에서는 공과대학의 폭력성이 특히 심각했다. 이들에게 선착순 달리기, 오리걸음은 얼차려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들은 MT 때 새벽에 계곡 입수를 시키고 흙탕물을 구르게 했다. 최소 10년간 이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존재했기 때문에 12학번 모임에 02학번이 참석했다. 이들은 MT에서 말을 잘 듣는 신입생을 뽑아 '과대'를 맡겼다. 과대들은 선배들로부터 '족보'가 담긴 USB를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기본적인 수치만 바꿔서 엑셀에 입력하면 그대로 결과값이 나오는, 아주 유용한 자료들이 담겨있었다. 공부할 필요가 사라진 과대들은 여러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억압에 순종적인 사람들이 학생회 의결권을 부여받고 체제 유지의 첨병이 되었다. 이들은 선배들의 명령에 따라 M-16을 손에 쥔 계엄군으로 행세했다. 과대가 된 신입생들은 예비역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임무가 부여되었고 그 자리에서 선배가 신던 양말을 통과시킨 후 변기 물을 섞은 술을 마시는 등의 일을 강요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소문이 되어 퍼지면 일반 재학생들은 그들이 그러한 수모를 겪기 때문에 직책을 맡고 일부 특혜를 받는 것이 합당한 처우라고 느끼게 되었다. OT와 MT를 비롯한 학과 행사들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의 강력한 권력기반이었다.


 공과대학 일부 학과에는 MT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장학금 선정 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쓰레기 같은 제도도 존재했다. MT 참석자에게 '포인트'를 부여하여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는 한 재학생이 문제제기를 진행하자 2015년에야 폐지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당당히 맞섰던 사람도 있었다. 전남대 인문대학의 백선경씨는 그해 'MT=나치', 'MT=일본 제국주의'라는 내용이 담긴 풍자 그림을 대자보로 제작해 학생회관에 게시했다. 그는 대학문화운동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을 발견한 인문대학 학생회는 해당 대자보를 강제로 철거했다. 항의가 이어지자 학생회 측은 "학우들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상은 감히, 우리들의 MT를 나치와 일제에 비유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학생사회의 억압은 공고했다. 그랬기에 더욱 이것들이 나치와 일제에 비유되는 것이 진심으로 불쾌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사회의 압제는 전두환과 군부독재가 사회에 이식해두었던 세포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해방된 조선에 남겨진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에서 비롯되었다. DNA 검사의 결과는 명백할 것이다. 군부독재가 형성한 군대문화를 내면화하여, '나이'를 '계급' 삼아 억압을 행사하던 당대의 전남대학교는, '민족전대'일지언정, '민주전대'는 아니었다. 어느 MT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정신 안 차립니까?"를 외쳤을 어리석은 사람을 떠올리며 '백선경'이라는 사람의 용기를 쉽게 잊어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위 사건은 당대의 전남대학교 학생사회가 전근대적 악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과대학, 농과대학 등은 특히 선후배 간의 부당한 위계관계가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기존 학생회 세력은 이러한 위계질서 형성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2011년 11월 선거 당시 공대, 농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단과대학에서 '전설' 측이 승리했지만 기존 학생회 세력인 '액션' 측이 위계질서가 강하던 공대, 농대에서 200~300표의 큰 표차로 승리함에 따라 선거의 향방이 갈리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얼차려, 기합,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 등으로 유지되는 억압적인 학생사회의 상황은 기존 학생회 세력의 공고한 권력기반이었다.


김한성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2015년도 전남대 총학생회장 김한성은 정의당 윤소하 의원에 대한 테러 혐의로 논란이 된 류선민 (2007년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한국대학생진보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 김한성을 비롯한 대진연 간부들의 주도로 '김정은 위원장 연구모임'이 발족했다. 이들은 김정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벌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북한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북한 사회와 그 지도자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으로 정확한 이해에 기여하는 연구가 있다면 당연히 권장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이 결성한 '김정은 위원장 연구모임'은 '연구'를 빙자하여 김정은을 7가지 관점으로 분석했다. 후대 사랑, 헌신성, 민족애, 음악 정치, 대담함, 세심함, 겸손함이 그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인 관점이 아닌,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합리화에 불과하다. 이들의 주장에는 '비판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간부들은 '감옥행'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전 주 영국 북한 대사관 태영호를 체포하자는 결사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어기지 않은 정치 망명자를 무슨 근거로 체포하자는 것인지, 무식함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 사상의 자유와 더불어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부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영장주의의 원칙을 그 불가결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실로 타인의 기본권을 짓밟아버리자는 파시즘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세력의 핵심이 바로 전남대학교에서 총학생회를 운영하던 세력이었다.


 2012년 이래 4년간, 이들은 선거 철이 되면 '청춘바람', '대안' 등의 낭만적인 구호와 일상적인 학내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막상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학생회 수권에 성공하면 서울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른 활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4년간 이러한 상황들이 반복되자 점차 학생들의 분노가 결집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노는 2016년 11월 총학생회 선거를 기점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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