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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y 25. 2022

제42주년 5.18 전야제는 처참한 실패였다

 지난 2022년 5월 17일,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가 금남로에서 엄수됐다. 그러나 이번 5.18 전야제 행사는 차별과 혐오가 난무한, 부끄러운 행사로 진행됐다. 이번 5.18 전야제는 5.18 정신을 연장할 수 없는 행사였다.


 이날 행사 진행에 앞서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광주 금남로 거리를 점거했다. 해당 활동을 주도한 광주 장차연 배영준 상임활동가는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5.18 42주년 기념일에도 장애인의 현실은 여전하기 때문"이라며 "5.18민주화운동 기념일과 장애인의날이 똑같이 42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장애인에게는 민주가 없다. 42주년 5.18 광주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광주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는 현재 5.18을 기념하기 위해 5.18 사적지들을 연결한 518번 시내버스를 운영한다. 그러나 518번 버스는 저상버스가 아닌 계단버스다. 518 버스에는 비장애인만이 탑승할 수 있다. 42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첫 사망자는 청각장애를 가진 김경철씨였다는 점에서, 일부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518 버스는 광주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날 금남로 거리를 점거한 전장연 박경석 대표는 "오늘 밤 민주평화대행진이 더 편하게 올 수 있도록 미리 금남로 거리에 왔다"며 "여기 앉아서 편하게 행진 대열을 기다리자"고 말했다. 민주평화대행진이란 5.18 전야제 행사 시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이 수창초등학교에서 금남로 전야제 무대까지 이동하는 행진을 뜻한다. 그러나 이번 민주평화대행진에는 결정적으로 휠체어 탑승자를 위한 구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차연 박경석 대표가 전야제 무대에서 발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주최 측은 휠체어 탑승자들을 위한 별도의 행진 구간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광주 장차연 배영준 상임활동가는 "전야제 본무대 행사에 앞서 진행된 민주평화대행진 당시에도 휠체어 탑승자를 위한 구간은 없었다. 본 행사장에도 휠체어 탑승자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결국 5.18 전야제에 참석한 휠체어 탑승자들은 행사장 제일 뒤에 있어야 했고, 행사 무대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장차연 박경석 대표님 발언이 끝난 후 대부분 귀가했다"고 밝혔다.


"5.18 첫 사망자는 장애인이었지만, 5.18 전야제에는 장애인권 없었다"



 이날 열린 제42주년 5.18 전야제 본 행사 무대에서는 수어통역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무대에 큰 화면이 설치되었음에도 수어통역은커녕 자막 한 줄 찾아볼 수 없었다. 휠체어 참가자들은 행사장 뒤에 자리해 행사 진행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어통역은 제공되지 않는 행사가 '5.18 전야제'였다는 사실이 실로 경악스럽다.


 행사 진행 과정에서 사회자들이 쏟아낸 발언들은 더 심각했다. 이날 전야제 사회는 백금렬, 지정남 사회자가 맡았다. 이 과정에서 광주 금남로 촛불집회 사회자로 유명한 백금렬 사회자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1부 행사 시작을 앞두고 백 사회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근태 문제를 언급하며 "날마다 지각하는 공무원이 있단디 누군지 아쇼? 뭐시, 사람이 아니요? 서울 도심에서 활보하는 멧돼지가 있다고요?"라고 발언했다. 윤 대통령을 멧돼지에 빗댄 것이다.


 그동안 소위 민주당계 정당 인사들은 보수정당이 배출한 전·현직 대통령들을 동물에 빗대곤 했다. 그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쥐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닭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언사는 상대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되려, 발화자의 저열한 수준만을 분명히 했다. 발화자들은 해당 발언을 풍자와 해학으로 여겼을지 모르나, 조금도 재미있지 않았다. 그저 불쾌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 수준의 비하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이번에 백금렬 사회자가 내놓은 발화들은 상대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했다. 굳이 동물에 빗댄 건 동물을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김에서 비롯됐다. 상대가 전두환이든 히틀러든, 나는 외모 평가를 바탕으로 한 비하와 동물에 대한 폭력적 표현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러 행사 참여자들이 분명한 불쾌감을 느꼈음에도 행사는 강행됐다. 행사 진행 중 사회자의 발언을 제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사회자의 발언에 동조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5.18 전야제 2부 행사는 '오월 어머니'들의 노래와 함께 시작됐다. 5.18 당시 자식을 잃은 오월 어머니 15명이 '5.18어매'를 합창했다. 그런데 해당 공연을 앞두고 사회자들이 또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지정남 사회자가 이날 행사에 참여한 무소속 민형배 의원을 언급하며 "검찰 정상화, 광주의 민형배 의원께서 몸을 던져서 초석을 놓았다"고 추켜 세웠다. 이에 백금렬 사회자는 "(민형배 의원은) 진짜 광주정신으로 살고 계신 국회의원"이라고 화답한 후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유도했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민주당 탈당은 국회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으로 대한민국 국민 과반수가 민주당에게 깊이 실망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방선거 패배가 확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5.18 전야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민형배 의원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문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차별과 혐오로 범벅된 5.18 전야제... 내년부터는 안 보고 싶다"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 보고 손을 잡자. 새 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5.18 전야제 3부 행사는 극락초등학교 어린이합창단의 '평화가 무엇이냐' 공연으로 시작됐다. 해당 공연이 끝난 후 백금렬 사회자는 "가사를 좀 더 추가하고 싶다"며 "검찰독재 없는 세상, 조중동이 없는 세상, 갈라치기 없는 세상, 멧돼지가 없는 세상"으로 '평화가 무엇이냐'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또다시 '멧돼지'를 소환한 것이다.


 백금렬, 지정남 사회자에게 당부하고 싶다. 5.18 전야제 행사장에서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부디 내년부터는 그들이 어떤 점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제대로 지적해 주시면 좋겠다. 상대에 대한 외모 평가를 바탕으로, '동물'을 언급하지 않아도 전·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한 비판이 더 뼈아픈 법이다. 이번 전야제 행사장에서 나온 사회자들의 발언은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을 올려줄 수 있는 발화였다.


 5.18 행사위원회 측에도 당부하고 싶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초청했음에도 휠체어 탑승자들을 위한 행진 구간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실책이다. 내년부터는 박 대표 참석 여부와 별개로 휠체어 탑승자를 위한 행진 구간을 마련하고, '수어통역'을 반드시 제공했으면 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첫 사망자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부디, 5.18 전야제 행사를 5.18 정신을 연장할 수 있는 행사로 준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저, 김동규는 현재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보도한 기사 링크를 언급해 둡니다.


1. "장애인 현실 여전"... 전장연, 행진중 광주 금남로 점거


2. "멧돼지" 운운에 수어통역 실종... 5.18 전야제, 이건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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