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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r 05. 2024

<전세지옥>,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지 않는 법


 전세사기 피해자 최지수(1991년생)씨가 쓴 <전세지옥>을 읽었다. 이 책은 전세사기 피해를 겪은 최씨가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서술한 르포이기 때문에 다 읽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전세사기 문제에 대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책은 경험담이다. 2024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30대 청년이 전세사기라는 거대한 사회적 재난을 만나 어떤 심경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는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경제적 박탈 상황이 주는 '비참함'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것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 스스로의 힘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한때의 피해자 중 일부는 순식간에 가해자의 논리를 수용하고 그들보다도 더 잔인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적 박탈 상황이 주는 비참함을 더 이상 맛보지 않기 위해서 악마와도 손을 잡는다.


 작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난 청춘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이룰 날만 앞둔 그에게 어느 날 '경매 통지서'가 날아온다. 그의 전세집의 부실함이 터진 터였다. 그 종이 한 장은 작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지옥의 핵심은 결국 돈이었다. 5800만 원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매일 눈물을 흘리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결국 작가는 청년버팀목전세자금대출을 통해 빌렸을 뿐이었던,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잃고 경제적 박탈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해자들은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했다. 그들에게는 돈을 위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완벽히 외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작가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경매장에 등장한 사람들 역시 가해자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세금보다 70% 낮은 금액에 나와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집을 낙찰받은 이들과 나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진정한 차이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집은 사는(live) 곳이 아니라 사서(buy) 자산을 불리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작가에게 집은 평생의 꿈을 이루게 해줄 발판이자 30년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결과물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집에 대한 경매가 열렸던 수원지방법원을 찾아간다. 어떻게든 수익을 만들기 위해 부동산 거래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매 참여자들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당하게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작가의 전 건물주처럼 사기꾼이지도 않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집이 낙찰된 후 자신이 쫓겨났던 기억을 떠올리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할 당시 그 모습을 산 전망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폭격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폭격을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봤을까?


 오늘날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체제는 늘 위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위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부실한 물건들이 싼 값에 경매에 나오는 일은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행운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싸게 사고 차익을 남기고 원래 살던 사람은 쫓아내며 이 체제는 몸집을 불려왔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박탈이 주는 비참함이 어떤 것인지 뼈져리게 느낀 몇몇 이들 역시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되어 이 아귀다툼 지옥의 한 축이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자신만의 꿈(파일럿이 되고 싶다는)을 위해 원양상선에 탑승하는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이 괴물같은 체제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추구하고 싶은 꿈이 있어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작가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가 부디 어딘가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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