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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r 23. 2024

개혁신당 비례대표 4번 곽대중 후보에 대해 생각해 봤다

김승남, 송갑석, 곽대중 그리고 '운동권 청산론'


개혁신당 비례대표(4번) 후보로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한 곽대중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의 당선 여부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현 국회인 제21대 국회에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 국회의원이 '두 사람' 있었다. 1987년도 총학생회장이었던 김승남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군)과 1990년도 총학생회장이었던 송갑석 의원(광주 서구갑)이다. 김승남 의원은 전대협 초대 부의장을 지냈고, 송갑석 의원은 전대협 4기 의장을 지냈다. 두 사람은 한국 학생운동의 전성기 시절 호남을 대표해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제22대 총선 공천은 받지 못했다.


곽대중 후보는 김승남, 송갑석 이후에도 10여 년간 멈추지 않고 달려온 전대협-한총련계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후 학생운동 혁신을 내걸고 '청년공동체'라는 대안세력을 조직해 1998년 11월 전남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사실상의 세력교체였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10여 년간 전대협-한총련계 운동에 몸담았다. 그러다가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하게 되면서 인생의 변곡점을 마주한다. 1996년 8월 연세대 사태에 전투경찰로서 투입된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휘두르는 각목과 쇠파이프에 전경들이 맞는 것을 보면서 연대사태는 분명한 실패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한총련은 이를 영웅적 투쟁으로 평가했다.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하지 않는 건 학생운동의 자세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96년 연대사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99년 민중 대격돌'을 운운하고 있다"고 했다.

1997년 3월 곽대중과 비슷한 결을 가진 이들이 남총련 대의원대회에 참여했다. 이날 대대에 참여한 대의원 100여 명 중 30여 명이 총궐기 투쟁 노선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자 남총련 측은 징계위를 열어 반대표를 던진 간부들을 '해임'했다. 반대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건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해임된 대의원들은 남총련을 집단 탈퇴한 후 '학생운동 강화·혁신을 위한 전남대 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1997년 7월 단체명을 '청년공동체'로 변경하고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총련 측은 '배신자'들에게 가혹한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이들은 역적, 안기부의 끄나풀이라는 폭언을 듣고 돌세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굴하지 않고 '학생회와 정치활동의 분리', '비폭력 평화선언', '전남대 오월대 해체' 등의 안을 마련하여 전남대 재학생 2천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5월, 전남대에서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전남대 총학생회 및 남총련의 간부들이 무고한 청년을 프락치로 오인해, 납치한 후 고문 끝에 살해했다. 이로 인해 전남대 일반 재학생 사이에서도 기성 학생회 세력에 대한 분노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금 언급한 살인사건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이 이번 제22대 총선 출마를 시도한 일이 있다. 당시 사건에 가담했던 정의찬 전 남총련 의장(조선대)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측근으로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 사건 관련 보도가 있자 민주당은 정씨를 컷오프 처리했고 정씨는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1997년 사건 당시 정씨를 수사했던 건 현재 이재명 대표의 법률 방패로써 광주 서구을 선거에 출마하는 전남대 법대 출신의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이었다.


이 사건 직후 청년공동체 측은 노영권 후보를 전남대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시켰고, 그는 전대협-한총련계가 내세운 후보를 434표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정확히 1년 후인 1998년 11월에는 곽대중 후보가 청년공동체 후보로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청년공동체는 "(우리는) 학우들과 함께 새로운 학생운동을 모색하는 운동권 총학생회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한총련 탈퇴 여부에 대한 재학생 총 투표를 진행했다. 당시의 전남대 전대협-한총련계 활동가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1998년 5월에 있었던 선거 결과 당시 전남대 재학생 17,422명 중 7,691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중 86%에 달하는 6,565명이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투표율이 전체 과반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투표는 무산됐다.

곽대중 회장의 임기가 끝난 후 전대협-한총련계 활동가들은 다시금 총학생회실로 복귀했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이들에 맞선 비권 혹은 반권 후보자들이 등장했고 이들 중 몇 사람은 당선되기도 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그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총학생회실을 떠나게 됐고 그들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옛일이 됐다.

그리고 그들 중 학생운동의 전성기를 대표했던 김승남, 송갑석 전 총학생회장은 제21대 국회의원으로서의 임기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학생운동의 암흑기에 '새로운 학생운동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던 곽대중 전 총학생회장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김승남, 송갑석이 의회에서 나오고, 곽대중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일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질까?

나는 이것이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자연스러운 교체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운동의 전성기 시절 등장했던 이들을, 그 마지막 시기에 등장했던 이들이 대체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곽대중 이후의 전남대 총학생회장 중 정치 일선에 있는 건 광산구의원으로 활동 중인 2003년도 총학생회장 윤영일과 2021년도 총학생회장 이명노 광주시의원뿐이다. 이명노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라 분류하기 어렵고, 되레 학생회 선거 당시 "한대련 가입 여부를 학우들에게 묻겠다"고 했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 중 상당한 이들이 젊은 시절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이들이 의회에 들어간 건 운동권이 카르텔을 가지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지난 시대가 그런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의 수많은 개인들 중에서도 나름의 대표성과 실력을 지닌 이들이 겨우 버텨낸 곳이 우리 의회였다. 거기 들어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나. 그리고 거기서 오래 버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운 좋게 잠시 거쳐간 이들도 있었지만 오래 버틴 이들에게는 그가 누구든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치란 그런 세계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도 갔다. 실력 있는 몇몇 이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버티겠지만 그건 그들의 실력을 비롯한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교체돼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시기 한국 의회의 일익을 담당했던 이들의 역사는 늘 그랬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운동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한국 의회에 사회운동 출신 인물이 소멸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름의 분야에서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싸워온 많은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의회에서 투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대한민국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한동훈 대표가 이 나라 국정운영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이어가기는커녕 운동권 청산이 '시대정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세우는 모습을 보면 "그래가 되겠나" 싶다. 시민들이 그 '대의'에 진정으로 공감했다면 제 아무리 마포을이 민주당 텃밭이라고 한들 함운경 국민의힘 후보가 지금처럼 밀렸겠는가. 저출생과 경제위기로 미래를 위협받고 있는 이 나라의 미래 비전을 제대로 고민하고 섬세히 제시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한동훈 대표가 생각하는 '운동권 카르텔론'은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할 흐름에 불과함을 개혁신당 곽대중 후보를 보며 실감한다.

제22대 국회에, 한때 한국 학생운동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국회의원이 단 1명이라도 남는다면 그 사람은 주류세력과 다른 뜻을 품었던 곽대중 후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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