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그날 이후 나는 활동가로서 살아왔다.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의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의 시작은 언제나 '광주'였다. 처음에는 막연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오월을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5년의 시간이 오월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오월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픈 일이었지만, 그 도시에서 열흘간 있었던 일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위대한 이유는 아픔에 있지 않았다. 그날, 광주에는 아픔을 넘어서는 긍지와 주체성이 있었다. 1980년 5월 26일, 도청에 남은 윤상원 열사는 청소년분들께 집으로 돌아가서 살아남아 달라고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은 패배할 것입니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겁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겁니다. 여러분은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내일부터는 여러분이 싸워주십시오."
1980년 5월 27일,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의지를 이어 내일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 신뢰했다. 윤상원 열사가 부탁했던 그 내일, 내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방식 중 하나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여러 5·18 당사자를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5·18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추진단장을 맡았던 안종철 박사님과 함께 관련자분들을 모시고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해당 방송에는 5·18 관련자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도청항쟁지도부 박남선 상황실장, 5·18 당시 마지막 방송 진행자 박영순, 기독병원 간호감독으로 광주를 겪었던 안성례 전 광주시의원, 오월 어머니집 노영숙 관장,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 전용호, 녹두서점의 정현애, 김상집과 같은 광주의 당사자들이 출연했다.
이제 스스로의 관점으로 오월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광주에 대해 쓰고 그날의 사람들에 대해 쓸 생각이다. 상당히 객관적 사실 위주의 글을 쓰겠지만, 시작하기에 앞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유를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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