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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Dec 03. 2019

1980년 5월, 나의 이야기

시작하며.

 5·18에 대해 쓰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의무. 1980년 5월 그날, 나의 아버지는 시민군 버스에 올라 시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돌을 옮겼다. 그날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는 87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91년 조선대학교 총동아리연합회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집회 현장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았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시작된 붉은 선혈은 발목까지 이어졌고 아버지는 병원에서 6개월 동안 사경을 헤맸다. 그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1996년 10월, 내가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역사를 처음 인지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5·18의 사진들을 처음 보게 된 날의 기억이다. 사진을 본 장소가 전남대학교였는지, 망월동 묘역이었는지는 흐릿하지만, 나는 우연히 그날의 사진들을 보았다. 군인들이 곤봉으로 시민을 때리고 있는 장면, 대검을 장착한 군인이 시민을 쫓아가는 장면, 군인이 M-16 소총을 시민을 향해 겨누고 있는 장면, 그리고 도저히 말과 글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잔인한 모습으로 살해당한 시민들의 모습. 나는 그날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것처럼 깊은 마음의 상흔을 입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광주는 아픔이었고 소외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광주의 붉은 빛깔을 돌아본 건 2014년의 일이다. 그해 나는 다시금 광주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을 끝내 은폐하려는 모욕과 비방의 칼날이 광주를 겨누고 있었다.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아들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통곡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홍어 택배'로 희화화되었다. 나는 깊이 분노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2014년 5월 9일, 나는 페이스북에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활동가로서 살아왔다.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의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의 시작은 언제나 '광주'였다. 처음에는 막연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오월을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5년의 시간이 오월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오월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픈 일이었지만, 그 도시에서 열흘간 있었던 일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위대한 이유는 아픔에 있지 않았다. 그날, 광주에는 아픔을 넘어서는 긍지와 주체성이 있었다. 1980년 5월 26일, 도청에 남은 윤상원 열사는 청소년분들께 집으로 돌아가서 살아남아 달라고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은 패배할 것입니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겁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겁니다. 여러분은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내일부터는 여러분이 싸워주십시오."


 1980년 5월 27일,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의지를 이어 내일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 신뢰했다. 윤상원 열사가 부탁했던 그 내일, 내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방식 중 하나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여러 5·18 당사자를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5·18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추진단장을 맡았던 안종철 박사님과 함께 관련자분들을 모시고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해당 방송에는 5·18 관련자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도청항쟁지도부 박남선 상황실장, 5·18 당시 마지막 방송 진행자 박영순, 기독병원 간호감독으로 광주를 겪었던 안성례 전 광주시의원, 오월 어머니집 노영숙 관장,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 전용호, 녹두서점의 정현애, 김상집과 같은 광주의 당사자들이 출연했다.


 이제 스스로의 관점으로 오월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광주에 대해 쓰고 그날의 사람들에 대해 쓸 생각이다. 상당히 객관적 사실 위주의 글을 쓰겠지만, 시작하기에 앞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유를 밝혀둔다.


-- 다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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