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반응하며 그 반응에 대한 통증을 알아내고 해소하는데 무진장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비로소 책을 통해 마주한다. 딱 내 본능대로 내 자의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아주 쓸모없지만은 않다. 끊임없이 파고들며 그것에 대해 파헤치는 성격답게 결국엔 깨달음이라는 것이 주어지지만 그 과정이 과하게 돌고도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나에 대한 사실이다.
얼마전 누군가 불로그에서 본 글귀가 '삶은 농담이다'라는 책속 구절이다. 신경숙님의 소설 속 혹은 산문집 글귀였던걸로 기억한다. 농담일뿐인 삶을 매 순간순간 다큐로 받아드리며 사는 나에게 뼈때리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으드리지 못하는 편이다. 진실에 매몰되고 심오가 내면 깊이 장착된 1인으로서 농담도 진실로 받아드리며 속 끓이며 지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여전히 그렇고 말이다. 그런 나에게 삶은 농담일 뿐이며 그렇게 애 쓰며 사는건 불필요한 것을 짊어지고 사는 꼴이라 자꾸만 귀에서 웅성인다. 그 웅성임에 나는 반응을 한 것이고 말이다.
그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여야지만 그 웅성임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웅성임에 그저 귀 닫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 웅성임은 내 것이 되지 못한채 나를 떠나 버리고 만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웅성임에 대해 끊임없이 반응하며 살아내고 있다.
삶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 온다. 그 말에 반응을 하고말고는 순전히 그 소리를 듣는 자아의 몫이다. 그 소리를 듣고 들어야지만 진짜 삶에 다가갈수 있다. 그저 살아지는 삶과 살아내는 삶은 확연한 차이다.
삶이 진짜 농담이라는 걸 받아드리려면 무사한 삶의 진실 앞에서 무너짐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걸 알까? 삶을 그저 농담처럼 여기며 가볍게 살아가는 이에게는 결코 삶은 삶이 가진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삶의 진실을 무수하게 마주하고 거기서 꺽이고 꺽이는 과정을 건너야지만 삶의 농담에 다닿을 수 있다.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삶을 만만하지 않게 건너는 사람에게는 삶이 농담처럼 건내는 순간을 허락한다. 그런면에서 마흔 초반을 지나서야 삶이 농담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다. 삶이 드디어 나에게 진짜 자신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까?
애도 쓰고 써봐야지 애를 쓰지 않아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제서야 무겁게 짓누르는 삶의 진실을 농담처럼 가벼이 여기게 될 수 있다고 할까? 그 원천이 바로 삶에 대한 애씀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한결 가볍다. 덜어질 것에 대한 순간을 삶이 나에게 자꾸만 알려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