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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28. 2022

오히려 최첨단 가족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고구마에 속하는 한권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은 모나리자 회원인 스키님이 참여하는 북클럽 선정도서라며 스키님이 쓰신 서평을 보여주시길래 읽어보고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되었답니다. 결론적으로 스키님의 서평이 책보다 훨씬 좋았다는 것!


스키님 서평


스키님 서평


이 책이 저에게 고구마에 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이해보다는 불이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에 개개인의 육아관은 분명 다를 수 있지만 저에게 있어 작가님의 육아관이나 양육관 내지 방식이 읽는 이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히기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남다른 양육관과 곤조있는 작가님이심은 분명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작가님의 양육관을 이해하기에 책에 있는 사례만으로는 개연성이 부족했습니다. 사실 읽는 중간중간 책을 덮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완독한 이유는  그 개연성의 확신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고구마는 고구마였다 입니다. 하지만 엄마로서가 아닌 작가님 개인으로서 문장은 남달랐기에 그 부분 위주로 서평이야기 하겠습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우리 대부분은
최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도 아닌
적당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그 적당함이라는 게 대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는 모든 가족이 동일한 것이 원칙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라서 위이고 자녀라서 아래,혹은 자녀라서 위이고 부모라서 아래일 순 없습니다. 다만 개개인에 따라 위아래를 구분하고 싶어할 뿐이라 여깁니다. 저희 친정같은 경우는 위 아래 경계없이 '너는 너 나는 나'가  강했기에 '우리'로서 다소 약한 감은 있지만 사십대를 지나고 보니 오히려 한 개인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고는 있습니다. 역시나 독립적이 강하다 보니 '우리'라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친밀함이나 소속감의 요소는 다소 부족한건 맞습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적당함이라는 것도 통계낼 수 없는 영역이지 싶습니다. 개개인이 다르고 개개인의 적당함은 개개인의 몫이기 마련이니깐요. 가족이라는 관계가 무에서 유(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요)를 창조할 수 없지만 유에서 무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작가님 문장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그런 맥락으로 저는 읽혀지네요.


오히려 최첨단 가족



저에게 또 다른 고구마였던 책이 바로 <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김지영이 여자로서 혹은 딸로서 겪은 차별을 저는 겪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최첨단 가족>에서 작가님이 자라온 환경이나 사례 역시 저는 겪어내지 않았기에 이해에 폭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가 꾸린 가정에 속한 가족들과 치열한 내면 충돌을 매일 겪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한 인간이 전혀 독립적이지 않은 혹은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무독립의 아이셋과 아직도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채 애착에 메여있는 독립되지 못한 남편으로 인해 고통스러우니 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독립을 위한 싸움이라면 저는 진정한 독립의 표본으로서 그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이다지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님 역시 어린 시절 원가족과의 치열한 독립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독립해서 창조한 한 가정내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지요. 문득 생각해보니 독립이 된 성인이 가정을 꾸려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올바르게 독립시키기 위해 자신의 독립을 재물삼아 길러내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성공이라면 부모와 자녀가 건강하게 분리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 치열한 가족내 독립전쟁(?)이 선포되는 것이지요. 


문득 작가님의 사례가 이해가 도통 되지 않았는데 독립이라는 명목으로 생각하니 수긍이 가기도 하는군요. 역시나 서평은 꼭 써야하는 거였어요.


오히려 최첨단 가족



어느 시대보다 개인이 우선시 되고 개인이 존중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가족내에서 여전히 개인은 개인으로 존재하기 힘든 것이 우리네 가정 구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자식을 잘 키워내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 자녀의 독립보다는 자녀의 명목을 위한 애씀을 여전히 우리네 부모들은 하고 있으니깐요. 독립을 위해 겉치장에 돈을 들이나 진정한 독립을 위한 마음의 치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인 남편분이 은행에 다니고 계시는데 대학 학자금 이자가 밀려있어 전화를 걸었더니 30대 중반 남성 고객이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이자를 밀렸나보네요.'라고 말입니다. 이런 일이 결코 흔치 않은 것은 아닐겁니다. 작가의 적당함을 빌리지만 이런 경우 전혀 적당하지 않고 한쪽으로 모든것이 쏠린거죠. 바로 부모에게 말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미래의 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실험 자체가 언어가 따라가지 못하는 한 방향이란 뜻이다


작가님 역시 자신의 사례나 작가님의 양육관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목에 최첨단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때문에 책 내용과 사뭇 맞지 않은듯 해서 오히려 괴리감을 느끼긴 하지만요. 문든 최첨단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시대나 유행의 맨 앞'일고 되어 있네요. 그저 제목이 책 내용과 연결이 되지 않는구나 싶은 아쉬움이 듭니다. 



나도 내가 내키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해주려고 
크리스마스를 챙겨준 적이 없다 
더 좋은 내가 될 필요는 없으니깐

나는 양육도 결국에는 부모인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경험의 일부라고 여긴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부모로서의 모습만이 아닌 개인으로사 알지 못한 몸 속 그 어디 깊숙이 숨겨진 것이 발가벗겨지는 것입니다. 그것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고 돌아보는 부모라면 부모이전의 자신을 단장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아이에게만 핑계를 전가시키는 부모는 자신을 아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죠. 


부모로 사는 여러분은 더 좋은 자신이 되셨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더 못난 자신이 되셨습니까? 


저는 결혼이라는 형식은 싫지만 육아는 다시 태어나도 하고 싶어요. 육아는 한 개인의 극한, 저 깊은 개인 내면의 심연을 터치하게 되어 있거든요. 누군가를 낳아 한 개인으로서 장성하게 길러낸다는 것은 그 심연의 바다를 천번만번 찍고 돌아오는 것이니 알지못한 개인의 무수한 면을 마주하게 되니깐 말입니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
오히려 최첨단 가족


오히려 최첨단 가족


세아이를 키우지만 정말 다릅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달라요. 같은 엄마아빠지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섞여서 더 다양한 아이를 만들어 낼수도 있으니깐요. 아니면 엄마,아빠 한쪽으로 몰빵(?)이 되기도 하구요. 큰아이는 저를 좀 더 닮았고 작은 아이는 아빠를 좀 더 닮았고 막내는 엄마아빠 섞여 조화롭게 나왔습니다. 외모가 아닌 성향을 말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엄마를 더 닮고 하고 싶어합니다. 아빠보다는 엄마가 자기소리를 분명하게 내니 그럴 수밖에 없을거 같습니다. 엄마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자기를 더 드러내며 주장하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이는건 어른이나 아이눈이나 같습니다. 남편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소금이 물에 녹으면 본 모습이 아닌 녹은 소금물이 되는 거처럼 가정이라는 물에 자신을 담그며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이 남편입니다. 반면 저는 물에도 안 녹는 소금의 성질을 지녔을 뿐이구요. 



오히려 최첨단 가족


나다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답이 아니라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영원한 갈등이며 움직임이라는 것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기반삼아 나로서 살아낼 독립의 형태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청소년시기 이후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6 아들은 부쩍 자신이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에 부모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아가고 자신의 기준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일치하지 않은 것을 통해 일치하는 자신의 것을 찾는 생각을 하며 진정한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부모로부터 타고난 것에서 뺄건 빼고 더할건 더하는 작업이 이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삶이란 것이 마주하는 모든 것에서 나의 형태를 잡아가는 기술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개인은 다르게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런면에서 이왕이면 자녀들이 보기에 닮고 싶은 부모라면 아이들이 개인을 형성하는 데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있는 것을 흉내내는 것이 오히려 빠른 길이니깐요. 


성공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계속 할 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는 정말 위대한 일이다

이 문장은 기억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아닌 삶으로서 살아가는 개인의 성공으로서 가장 명확한 문장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인으로 독립해서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 스스로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고 그것을 해내는 것, 거기에 보너스처럼 부모의 지원이 주어진다면 그저 땡큐하면 그만이구요. 역으로 부모에게 보너스처럼 주어줄 주머니속의 여유만 된다면야 그 삶을 성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자신이 설정한 성공에 도달해야 한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


엄마노릇은 나를 엄마로 기억하는 자녀가 눈 감을 때 비로써 종료됩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길게는 50~60년을 부모로서 삶을 지탱하면서 자녀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죠. 단숨에 끝날 것이 아니니 작가님의 말씀처럼 긴 호흡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개인으로 자라나고 개인으로 살아갈 자녀를 위한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가족은 공유하는 특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 다름을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의 어린시절 경험이나 환경이 작가님 스스로를 다름으로 만들어내는 작용을 크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정이라는 틀에서 아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중에 그 과정이 불편하고 맞지 않았다면 튕겨나가 제 모양을 내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설사 그 모양이 마음에 안든다고 한들 이미 경로를 이탈한 자녀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도록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스스로 경로를 이탈한 것에 대해 부모를 탓하진 않을테니깐요. 결국 작가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개인의 독립과 그 독립으로 인한 책임을 온전히 지고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평을 쓰다보니 작가님의 목적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다만 독자로서 작가가 주장하는 바가 좀 더 설득력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아쉬움은 남네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몸부리치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애씀을 하시거나 결혼을 통해 꾸리게 된 가정내에서 좀 더 합리적이고 최첨단스러운 가족으로의 탈바꿈을 시도하신다면 이 책을 추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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