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주서평 04화

달과 6펜스

by 진주



오늘 진주서평으로 함께 할 책은 고전소설 <달과 6펜스>입니다. 성수도서관 성인 북클럽 '자갈자갈'에서 선정한 도서랍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매달 한권씩 읽고 있는데 이번에 고전을 읽어보자는 의견을 주셔서 저도 처음으로 고전소설을 접해보게 되었답니다.


<달과 6펜스>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저자인 서머스 몸은 고갱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제목인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말합니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지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합니다.



<달과 6펜스>를 요약하자면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인물에 대한 묘사가 시대와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간군상은 여전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물 감정선에 대한 부분도 그 인물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양 굉장히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고전을 읽으라고 하는지 알았다고 할까요? 전 덕분에 고전을 한달에 한권 읽기로 계획하고 다음 고전으로 데미안을 선택했답니다. 곧 데미안 이야기도 들려 드릴께요.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인물은 어느하나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정상이라 말하는 범위도 제 기준일테지만 말이지요. 가장 이상하리만치 솔직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를 비롯해 이 소설에서 가장 처절하게 불쌍하다 여겨지는 스트로브,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면 초반에 등장하는 맥앤드루 부인과 대령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모든 인물 저마다 사연은 있고 자신의 기질에 맞게 그 사연에 대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타인으로서는 이해 불가의 삶도 자기로서의 삶은 타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인물이 이해되면서 이해되지 않고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물론 글을 읽는 제3자의 입장으로서 말입니다.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인물 하나하나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 삶에 대해서 큰 의심이나 의혹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타당성을 스스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대한 타당성을 스스로 쥐고 있다면 어느누가 뭐라한들 그것이 대수로울 수 없습니다. 그저 내가 옳다고 여기고 내 삶에 대해 스스로 맞다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인물이 한 사람으로서 읽히고 저마다 매력이 있답니다. 제가 느낀 <달과 6펜스>의 가장 큰 깨달음이라 할 수 있겠네요.


큰 맥락에서는 예술혼에 미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서사이지만 그 안에 함께 거하는 조연들의 삶 역시 개개인의 파란만장을 담고 있으며 자기 삶에 대한 혼이 느껴집니다. 300페이지 정도 한 권의 책속의 다양한 인물의 서사를 담아내는 저자가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화가인만큼 예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재능이 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는지 예술가를 꿈꾸기에 재능을 갖추는 것인지 질문이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술가로서 타고난 감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 감성을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고 그 감성이 다른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면 또 다르게 예술 감각을 나타내는 것 뿐이겠죠. 저 역시 음악을 하기에 예술적인 감성은 타고난 편입니다. 그 감성을 표출하기보다 제 성격적 결함이 더 작용을 한 탓에 역량을 키우는 것도 표출하는 것도 부족하게 살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예술적인 감성을 스스로 허락하는 선에서 나타내며 살고는 있습니다.



성격적 결함으로 악기를 통해 예술혼을 발휘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글로서 간접적인 표현 역시 제 예술적 감각의 한 축입니다. 결국에는 나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술적 감성은 어떤식으로든지 자신의 것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그래야지만 자신안에 꿈틀거리는 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야지만 살 수 있고 그래야지만 나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안정된 직장에 가정적인 아내 그리고 사랑스런 아들딸을 둔 누가봐도 부러워할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납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그려야 해요


이 단 한마디가 그의 예술적 감성을 오롯이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려야지만 살 수 있고 그려야지만 살아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다른 그 무엇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한마디는 나는 살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로 읽힙니다.




전 그이가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람이 나서 떠났다고 만 생각한 그의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행복은 과연 찰스 스트릭랜드의 행복이었을까? 어쩌면 이 말 속에 오만함이 담겨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려야만 한다며 떠난 남편과 그가 행복하다고 알고 있던 아내, 표면적으로 안락하고 안정된 가정은 그저 허물에 불과했던건 아닐까요? 그저 남편은 허물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을까요?






그동안 자신이 갑옷처럼 입고 있던 허물이 자신을 더이상 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이상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 갑옷에서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숨 쉴 수 있고 살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런 그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리지 못하면 죽을거 같은 사람에게 두려움이란 그리지 못하는 것 뿐일겁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를 사야하는 벌이 외 그저 그림만 그릴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자신이 살아야 하는 방식으로 살고 싶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가끔 '역시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하는구나'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연유는 내 삶에 대해 스스로 애매모호하거나 혹은 누군가 내 삶에 대해 떠들어댈때입니다. 엄마이자 아내이고 누군가의 자녀이기도 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가끔은 숨이 막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숨이 막히지 않게 역할에 맞춰 살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나를 숨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때 결국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모든 이들이 생각하는 것에 조금 다를지라도 나는 역시 나이구나, 나일 수밖에 없구나' 여기며 다시 나로 돌아오게 됩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반면에 그것이 자신의 삶과 역행되는 사람도 분명 있다는 것이죠. 그런 사람이 찰스 스트릭랜드였던 거고 자신의 삶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그는 자신의 삶에 순응할 뿐입니다.





허물이 자신인양 살아가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부인은 끝까지 자신의 허물좋은 치장을 할뿐입니다. 이 역시 그녀의 삶을 살아가는 법일 뿐입니다. 그녀에게는 단 한푼없이 집을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남편의 안위보다는 그런 남편을 도와주는 자비로운 전부인라는 허물이 중요할 뿐입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쇼윈도 부부였던 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부부는 스트로브와 그의 아내 블란치입니다. 사랑많고 정 많은 스트로브는 스스로 끌어드린 찰스 스트릭랜드로 인해 아내 블란치를 잃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 중 하나라면 스트로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어떠한 원망과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이 역시 자신이 살아내는 방법에 대해 최선을 다한 그저 결과로서 불행일 뿐입니다. 스스로 삶에 대한 최선이라면 결과가 어찌되어도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한 것보다 최선이란 것만 남을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후회만 있을뿐인 것이 인생이지 결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그저 내 삶에 대해 안일한 태도일 뿐이니깐요.






세상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것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게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설 속 모든 인물은 그저 생겨먹은 대로 자신에 삶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물이 사랑스럽고 모든 인물이 안쓰럽게만 여겨집니다. 그래서 서평을 쓰면서 자꾸 울컥하게 되었나봅니다. 저 역시 생겨먹은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을 뿐인 인물이니깐요. 그래서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 안쓰런 마음에 감정이입되어서 울컥이나 봅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한 예술가의 처절한 인생사일지 모르지만 저는 모든 인물의 처절한 인생사로 읽혀집니다. 그래서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이 위대하게만 보이고 잘 살아내고 있다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삶으로서 달을 선택한 것이고 그 나머지 인물은 그들의 삶으로서 6펜스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선택에 있어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생격먹은 대로 그저 자신에게 타당한 합당한 삶을 살아내면 그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달을 선택하는 인물일거 같습니다. 사실 달을 원하지만 6펜스에 걸쳐있다고 해야할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달과 6펜스 중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십까? 어떠한 선택이든지 자신의 삶으로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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