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이를 키우며 나름 육아에 대한 자부심은 있는 편이다. 물론 흔히 말하는 엄마의 정보력과는 거리가 있는 자부심이다. 아이를 키우는 양육관에 있어서 교육보다는 아이들 정서적 돌봄을 최우선으로 하고 아이들 기질에 따른 양육관을 추구하는 편이다. 교육관련해서는 최소한의 정도만 시키는 편이고 (물론 최소한의 기준이 집마다 다르겠지만 우리집은 진짜 최소한이다.) 아이 기질에 따라 과목, 학원을 보내는 시기,학원 규모를 중점으로 선택한다.
아이관련 책들을 보면 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표면적인 방식을 추구하기 보다 근본적인 아이 뇌에 대해서 공부한다면 아이 뇌 발달에 긍정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마땅하다. 교육에 있어서는 특히나 개인차에 따른 접근이 필요한데 현 교육 실정을 보면 큰 맥락에 모든 아이들을 끼워 맞추는 식이고 또 그것이 맞는 양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별말없이 따른다. 공교육 스타일이 학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식이다. 아이가 알아서 잘하면 다행인거고 돈 드려 학원을 보냈는데 효과가 없으면 애먼 아이만 잡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에 아이는 학습에 대한 의욕도 없이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이 책에서 육아의 목표를 인내하기와 성공하기로 표현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 무엇이고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어떤 자질을 일깨워줘야 할지 질문을 던지다. 모든 부모들이 받아야 할 질문이고 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아이들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그런 질문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 당장 어떤 학원이 좋은지 어떤 학원이 우수생을 많이 배출했는지가 중요할 뿐이고 그 학원을 우리 아이가 다니게 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뇌를 형성하는 것은 경험이라고 한다. 그 경험치 역시 집마다 다를 것이고 부모가 경험한 세계 한도 내에서 아이들의 경험치도 결정이 된다고 본다. 경험이라는 것이 비단 비싼돈을 들여 여행을 가거나 체험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등이 모든 경험이 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책 한권 없고 책 한권 사준적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집에 책이라고는 성경책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성경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책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당연히 책 한 권 읽은 적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책만 보는 친구를 보며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물론 교과서가 아닌 소설책이었다. 공부할 시기에 교과서가 아닌 책을 그 친구는 하루 종일 보았고 하필 공부하는 모습이 아닌 책 보는 모습이 멋져 보인 나는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을 집 밖 학교를 통해서 자극을 받은 셈이다. 그 뒤로 나는 우리나라 소설책 작가를 시작으로 온갖 소설을 섭렵했고 소설이 시시해진 뒤로 인문서적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나의 책인생은 그때를 필두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우리 집은 곳곳에 책이 많다. 물론 거의 내 책이다. 아이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히고 도서관에 없는 책만 구입한다. 책이 많지만 전집은 없다. 집을 꾸며주거나 위안 삼을 전집이 아닌 읽을 책, 읽고 싶은 책을 두기 때문에 전집을 사지 않는다. 식탁이나 테이블, 아이들 책상 곳곳에 책이 나뒹굴고 언제든 책을 집어서 볼 수 있는 환경이다. 책을 좋아하는 11살 둘째 딸은 제법 엄마 책에도 관심을 보이고 책 제목을 보며 놀리기도 한다. (얼마 전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라는 책을 보더니 "엄마, 아빠 버리려고?"라는 깜찍한 말을 했다.)
어떠한 환경이 되었던 부모가 경험하는 세계만큼 아이도 경험하게 되어 있다. 아이의 세계 확장을 위한 부모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 노력이라는 것도 아이 일정 나이가 되면 의미 없어질 때가 오기 때문에 지금 한창 머릿속을 채울 수 있을 때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연습을 자주 시켜야 한다
우리 집은 각자 개성을 존중한다. 가장 큰 존중의 영역은 먹는 것이다. 엄마인 내가 먼저 먹는 것에 의미를 크게 두는 편이라 아이들도 존중해주는 편이다. 식성이 가지각색인 세 아이라 맞추기 쉬운 편은 아니지만 다행히 그 정도의 에너지는 갖추고 있는 엄마인지라 아이들 각자 식성에 맞춰 식사를 차려준다. 그리고 외출을 할 경우에도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선택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되는 거 같다.
아이가 따뜻한 교감을 통해 자기를 보호해주는 인간관계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친구들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의 구성원 나중에는 배우자와 그 사이에서 낳은 자녀에 이르기까지 앞으로의 인간관계의 모형이 된다.
아이와 얼마나 자주 정서적인 공감과 지지가 이뤄지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아이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11살 둘째 같은 경우는 사회성이 부족하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없지 않다. 그 어려움이라는 것 역시 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문제인 거지 정작 부모인 나나 아이는 전혀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친구가 없는 것에 대해 실망을 하거나 필요에 대한 갈망이 크다면 문제로 여겨지겠지만 집에서 가족과 충만한 정서적 교감을 통해 충족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학교 친구들과 적절하게 어울리고 관계에 따른 반응이 가능하기에 그 정도는 아이 스스로 해결할 힘은 있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아이 기질을 아는 것이 포커스다. 기질을 안다면 아이를 도와줄 방법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클수록 그 연령에 맞는 고민과 생각이 깊어지는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그 고민과 생각을 내 아이를 이해하고 내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아이의 뇌는 꾸준히 자랄 수 있을 거다. 이미 머리가 굳어버린 어른도 지속적인 여러 자극을 통해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 뇌는 새하얀 스케치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스케치북을 꾸밀 수 있도록 색연필과 물감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어른인 부모의 몫인 것이다.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에 대한 이해도와 그 세계에 대한 스토리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더없이 멋진 부모가 될 것이고 아이 역시 멋진 한 개인으로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