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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Nov 22. 2022

긴긴밤



작년인가 책 좋아하는 둘째 딸아이에게 이 책을 사주었어요. 그 당시 인기있던 책이어서 그랬는지 책 표지가 눈에 띄어서인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딸아이가 읽고나서 이야기를 해줘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책이구나 했답니다.


그러다 다음달 초에 초등학교 6학년 대상으로 독서토론을 맡게 되었는데 선정된 책이 <긴긴밤>이더라구요. 주변에서 읽고 슬펐다는 평과 둘째에게 듣기로는 동물이 나온다는 것 말고는 정보가 없었는데 사실 그 두가지 정보(?)가 저에게는 썩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이번주에 독서토론 관련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서 썩 내키진 않았지만 일이 되어 버렸으니 안 읽을 순 없으니 작정하고 읽어내려가는데...


마음이 참 먹먹해집니다.


딱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저에게는 정말 먹먹함일거 같아요.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긴긴밤

코뿔소 노든이 맺어가는 관계, 그리고 펭귄 두마리 윔보와 치쿠가 품게된 또 다른 펭귄알과의 관계는 딱 부모자식간에 뗄래야 뗄 수 없는 필연으로 읽혀지면서 먹먹함이라는 표현이 저에게는 가장 크게 와 닿았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긴긴밤의 의미마저도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고 마르고 닳도록 애쓰는 부모의 밤이 생각나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는 끝나지 않을거 같은 세아이육아의 긴긴밤이 연상되며 답답함마저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두렵고 무서운 긴긴밤의 연속이지만 그 긴긴밤이야말로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고 살아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육아라는 긴긴밤마저 그 긴긴밤의 지난한 여정이 결국에는 육아독립 후 자립하게 될 아이의 밑거름의 시초였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긴긴밤의 연속은 견뎌낼 것을 견디므로 비로소 연속된 긴긴밤이 품고 있던 빛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지요.



노든이 지켜낸 긴긴밤은 이름없는 아기펭귄의 앞으로 닥칠 긴긴밤의 연속선상이지만 노든없이도 이름없는 펭귄은 긴긴밤을 견뎌낼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이름없는 아기펭귄은 스스로 빛을 바라게 되는 것이죠. 자신을 비춰준 빛을 품고 말입니다.



결국에 이름없는 아기펭귄은 핑귄대열에 합류하며 펭귄만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수많은 펭귄 사이에 뒤를 돌아보는 이름없는 아기펭귄의 모습이 '참 다행이다, 결국 해냈구나' 안도의 마음으로 미소짓게 되는건 엄마의 마음이자 이름없는 펭귄이 펭귄으로서 살아내는 걸 지켜내고자 아기펭귄알을 끝까지 품고 지켜낸 펭귄 아빠들 치쿠와 윔보, 그들이 지켜낸 긴긴밤의 대한 결과라 읽혀집니다.



자아(정체성)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내 부리를 봐요.


꼭 코뿔같이 생겼잖아요. 그리고 나는 코뿔소가 키웠으니깐."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코뿔소지만 코끼리 사이에서 자란 코뿔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코끼리들 사이에서 코끼리의 면모를 닮아가지요. 결국에 코뿔소로서 살기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데 성공한 코뿔소는 코끼리의 지혜를 닮은 아내와 귀여운 딸을 낳으며 코뿔소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아쉽게도 짧게 끝나버린답니다. 코뿔소 사냥을 하는 인간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게 되는 것이죠. 인간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코뿔소의 결국은 인간에 의해 치료되어지고 인간에 의해 관리되어지는 동물원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코뿔소 앙가부를 통해 또 한번의 자유를 꿈꾸지만 인간들의 의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동물원에 불이 나서야 그곳을 탈출하게 됩니다. 펭귄 아빠 치코, 그리고 아기펭귄알도 함께 말이지요.



<긴긴밤>은 자아로 살아가기 위한 이들의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그들이 겪어내는 긴긴밤은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살아내기 위한 밤들인거죠.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다른이들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여정속에 나를 나로 받아들이고 바라봐줄 이들을 통해 그들로서의 존재감을 찾게 되는 것이죠.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다른 코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든을 코뿔소답게 만들었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긴긴밤>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가 서로답게 살아내게 해준답니다. 동물을 사냥하는 인간의 탐욕이 야멸차게 그려지지만 그런 동물을 치료해 주는 존재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데 동물은 또 다른 역할로써 인간의 면모를 드러내게 하지요.


태어날때부터 동물원에서 키워진 치쿠와 윔보 그리고 앙가부는 그들이 키워진 대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꿈을 잃지 않습니다. 누군가 탈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자신으로서 살아갈 날을 꿈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도 세우게 되지요. 치쿠와 윔보는 버려진 알을 품게 되므로 비로서 자신 그들로서 살아갈이유를 찾게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우리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 여기게 될 거야."



치쿠와 윔보는 버려진 알을 품게 되면서 오만가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펭귄으로 키울 수있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긴긴밤>의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관계 안에 있습니다. 그 관계안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연대를 만들어가며 서로에게 이유가 되어주고 또 구실이 되어줍니다. 홀로 살아가기 위해 코끼리 무리에서 나온 코뿔소 노든은 결국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이 아픔을 겪긴 하지만 동물원에서 만나게 된 이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으며 우리로서 살아가는 것에 참된 의미를 알게 되지요.


치쿠와 윔보 역시 버려진 알을 품게 되면서 그 알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그 둘만의 연대를 만들어가고 치코와 윔보 그리고 버려진 아기 펭귄 알까지 셋이 우리를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지속되기 위해서 윔보는 결국 붙에 탄 동물원에 남겨졌지만 치쿠의 요청으로 노든과 함께 알을 품게 되며 우리의 끈을 놓치 않습니다. 우리의 매개체가 된 버려진 알 마저 결국에는 모든 것이 기적이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이고 아껴진 존재인지 알게 되므로 홀로 남겨진듯 하지만 펭귄 무리에 비로서 우리로서 안착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른 키워드는 긴긴밤, 자아, 우리입니다. 지난한 긴긴밤의 연속은 자아의 성장이고 그 연속선상에 우리가 비롯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에는 긴긴밤의 연속같은 깜깜함이지만 그 깜깜한 가운데 서로를 향해 비춰주는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로서 함께 그 긴긴밤이 더 이상 깜깜하지만은 않다는 것!



오늘 누군가의 긴긴밤에 한줄기 빛처럼 존재할 당신을 응원하며 긴긴밤 서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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