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책입니다. 인스타 북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신간인데 도서관에서 바로 빌릴 수 있었기에 기대감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서점에 가보니 이 책이 상당히 홍보가 되고 있어서 뒤늦게 진가가 발휘됐나 생각도 했습니다. 자기계발서라고 하기에도 심리서라고도 하기 애매모호하지만 자아성찰내지 내면 탐구을 위한 방편으로 스님의 길을 선택한 사람의 에세이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될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꾸밈없고 해 맑은 문장에 웃음지어진 순간이 많았습니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은 채 자기 날것의 그대로를 문장으로 옮겨놓은 매력이 상당합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 책의 진가가 저자의 긍정적 해맑음이 그대로 서술된 문장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챕터마다 함께하는 그림도 이 책을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다만 저자가 선택한 수행 내지 고행 길에 대해서는 크게 와닿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인듯 하지만 말입니다. 결국은 개인의 선택에 영역이니 그 한 방편으로 저자를 존중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결국엔 깨닫게 되지요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성공과 행복은 서로 다른 것이니까요
우리는 내면보다는 보이는 외면에 치중하는 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 사람의 내외면을 다 알 수 있는 관계에 놓이다 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현혹되어 시기를 잠시라도 품은 자신이 스스로 작아지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은 알아야지만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 역시 성공의 자리에 올라서고 나서야 성공이 모든 것을 덮을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 가져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비로소의 자유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내고 욕심을 다하게 되는 것은 가져보지 못한 열망이 크게 작용하니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일상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우리 존재의 더 깊은 부분에 자양분과 활력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하루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하지요?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낸 오늘의 하루가 바로 여러분의 과거이고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매일 돌아오는 일상이 여러분의 존재 의미와 존재 가치를 더해주는 것인지 그저 숙제처럼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는건 아닌지 분명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인간 내면의 평화로운 것 고요하고 차분한 것
자꾸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중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와 같은 것들에는 보상이 따른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은 고요함을 이루나요? 고요함의 신비를 이루기 위해서는 폭풍을 지나야만 합니다. 폭풍이 한번 지나간다고 해서 다시 오지 않을 것이 아니며 폭풍은 언제나 예고없이 들이 닥칩니다. 그 폭풍을 잠 재울 수 있는건 폭풍이 그저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에 의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저 폭풍에 순응하는 것 뿐입니다. 폭풍은 순응 할 것이 아닌 폭풍에 대해 인지하고 사고하는 내 마음이 순응해야만 합니다. 그 마음의 순응은 나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생각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무비판적으로 자신과 동일시한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체성과 생각이 불과분의 관계라고 느끼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지만 결코 그것을 의식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은 숨이 막히거나 호흡이 불가할 때 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품고 있는 내면도 그렇습니다. 생각은 끊임없이 마음속에 들끓지만 우리는 그것에 크게 개이치 않습니다. 아주 큰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저 내버려두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면을 내버려두다가 호되게 당하게 되는 경험을 하고서야 그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합니다.
많은 책을 읽고 진주서평을 쓰면서 내린 결론은 딱 한가지입니다. 바로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그 마음의 작용이 사람을 완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바라마지않는 성공이나 부 역시도 원초적인 마음의 다스림이 먼저라는 것도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무언가 대단히 이룬 사람들을 마인드가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마인드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타고난 마인드가 있다기 보다는 그 마인드가 자기 인생에 작용하도록 갈고 닦아졌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아라
자기 생각에 의심을 품으며 조금은 거리를 두거나
우스갯거리 삼아 가볍게 접근한다면
자기답게 살아가기가 무한히 쉬워지는데 말이지요
우리는 각자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작용이 스스로에 의해서 작동하기 보다는 타인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기 일쑤입니다. 흔들리며 가는 것이 인생길이 맞지만 그 흔들림의 근원적 요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 그 흔들림의 중심을 잡는 것 역시 자기 자신임을 자각하고 자기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에 끊이없이 애를 써야만 합니다. 그래야지 저자의 말처럼 자기답게 살 수 있고 자기만의 긍정적 확신내지 유쾌한 가벼움으로 인생의 가지를 덜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은 마치 달콤한 디저트만 먹으면서 사는것과 같다
디저트는 눈에 아름답고 입에 달콤하지요
하지만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요판 자양분을 제공하진 못합니다
요즘 디저트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핫플레이스가 되는 건 비단 사람들이 눈과 입을 즐기기 위함은 아닐겁니다. 내면의 채워지지 못한 허기가 눈과 입을 즐겁게 현혹하는 것들에 마음이 쏠리며 그것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디저트 카페를 즐겨 가고 디저트를 즐겨 먹게 된 연유가 사실은 실생활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의 보상 개념도 없지 않습니다.
인생은 디저트가 아니라 집밥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저트는 눈과 입이 즐겁지만 디저트만 먹고는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디저트없이 집밥만으로 인생을 못살진 않습니다. 집밥이라는 것이 재료와 조리의 결합인 것처럼 인생 역시 내외면의 결합으로 요리되어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삶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물질의 풍요만이 아닙니다. 물질의 풍요는 꾸며줄 수는 있으나 지속시키는 힘은 약합니다. 진짜 빛나는 건 자신이자 자신의 내면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빛나게 가꾸는 사람은 풍요의 꾸밈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 빛남은 결코 빛남으로 먼저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하다 느껴지는 것들로 다가와 비로소 빛을 내게 되어지는 것이죠.
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할 때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는 타인을 비판하면서 또 타인을 닮고싶어 안달입니다. 그 비판의 이면에 시기가 깔린 것이지요. 그 시기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타인으로 인한 저울질에 당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가장 많은 타인을 엿볼 수 있고 그 타인으로 인한 시기의 번민으로 인한 내면의 질척거림이 많은 때를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엿볼 수 있는 타인의 삶이 많을 수록 자신의 삶은 피폐해 진다는 것 아시나요?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타인의 삶에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단하나 자기 내면의 단단함일 뿐입니다. 타인으로 불거진 삶은 타인으로 인해 막을 내릴 뿐입니다. 인생의 자유함이라고는 결코 맞보지 못하며 타인에게 종속된 부자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고쳐나갈 여력이 있다는 것이며 자기것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유연함을 내포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인생은 정답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해답지를 통해 자기만의 정답을 써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어느 누구에게나 속할 여지를 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포기가 아닌 포용이고 내가 틀릴 수도 있는 두려움이 아닌 내가 틀릴 수도 있는 용기를 가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때 지혜가 싹틉니다
통제라는 것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에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저 역시 모든 것을 제 손안에서 통제를 일삼아야 안정이 되는 성향이어서 고달픈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놓아버린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 제 손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통제라는 것이 어쩌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내가 틀리고 남이 맞는 것을 결코 받아드리지 않겠다는 결연의 의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손에 꽉 지고서 으스러져야지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 역시 스님으로서의 수도중 자신의 통제에 대한 고달픔을 자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은 어쩌면 비로소 자신이 손에 쥔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의 포기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내려놓음 당시에는 포기였지만 그것은 포용을 위한 결국이었지만 말입니다.
'신은 당신이 절대 찾지 않을 만한 장소에 가장 귀한 보물을 숨겨두었다 바로 당신의 주머니다' 라는 힌두교 격언이 있습니다. 아직 찾지 못하거나 자기에게 있는 지 모르고 다른 곳에서 헤매이는 분에게 이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추천랍니다. 또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일삼거나 나는 틀린게 아니도 없는거 같다는 자신감으로 포용을 알지 못하는 분께도 추천드립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의 확신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기에 모든 이가 읽은만한 책이기도 합니다. 무겁지 않고 저자의 특유의 유쾌함이 뭍어나는 문장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지만 그 웃음의 진정한 의미는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일 겁니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부분을 가감없이 표현한 저자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낀 책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2022년도 인생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인생책으로도 적극 추천하며 진주서평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