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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Feb 20. 2023

진주서평 데미안



        


오랜만에 진주서평으로 인사드립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난해한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데미안을 이해하기에 아직 내면의 힘이 부족했던걸까요? 고차원적인 문장이 이해보다는 불이해에 가까웠고 몇 안되는 등장인물에 대한 개연성도 개인적으로는 수긍이 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유튜브로 정여울 작가님이 <데미안>에 대한 해석를 하시는 것을 보고 비로소 데미안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를 간접적으로 알게 됩니다. 가장 데미안에 대한 적절하고도 정확한 분석에 가까운 해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문장은 알듯 하면서도 알기 어려운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이들이 수긍하지만 또 수긍하지 못함은 이 문장에 대한 삶을 살아보거나 살아내지 않았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저 역시 어렴풋하게 알듯 하면서도 알지 못함은 과연 내 속에서 나오려고 하는 그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살고자 함이 왜 그토록 어려울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대입해 보자면 이상을 따른 삶을 고자 하지만 처해진 현실이 척박하니 그 이상을 따름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고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 고민할때가 많습니다. 현실을 살아내면서 이상을 따른다는 것은 그저 현실을 따르며 사는 사람보다 몇배의 고통이 따릅니다. 물론 그 고통의 진원은 스스로의 마음이고 말입니다.






아직 40여년을 살고 있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나로 비롯된 나의 해석으로 인함이기에 사람이 진짜 무엇인지 주관적 해석에 가깝지만 모든 사람이 같지만 같지 않은거 같습니다. 생긴대로 산다고 할까요? 생긴대로 살기에 그 삶에 대해서 주저리 떠드는 것은 그저 다른 삶에 대한 불이해로 빚어진 불협화음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불협화음이 내는 소리에 괴로운 건 애석하게도 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그 삶을 보고듣는 자의 몫이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불협화음을 다른 이의 삶에 전가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다른이의 불행을 보면서 자기의 행복을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스스로 생존할 여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살려고 아둥바둥하는 한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수용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살면서도 내가 사는거 같지 않을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가끔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살기보다는 환경에 의해서  내 삶이 진행되어질 때 부쩍 그런거 같습니다. 아마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 있을 때 가장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에 여정중 가장 애가 달고 속이 터지는 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안에 속해 있을 때이니 말입니다. 가장 부자연스러운 시기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 아이가 자랄 때까지 인듯 합니다. 저 역시 지금 그 시기를 건너고 있기에 자연스럽고 싶지만 부자연스런 내 삶에 모양에 치기가 한번씩 차오릅니다.








싱클레어가 바른세계라 여긴 가정속 부모님이야말로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가장 부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싱클레어가 그 길을 따르길 원했으나 자신은 그러지 못함을 알았고 사실 싱클레어가 그 길에 이르는 길이 멀었다 표현한 것은 자신이 그 길이 바른 길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던 것입니다.



진리는 진리를 따르는 삶의 완성이 아닌 진리에 따르는 그 길 한가운데에서 애통하고 좌절하며 그 진리와 씨름할 때 비로서 얻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싱클레어의 부모님은 진리를 따르긴 하지만 그 진리의 내밀한 비밀은 알지 못한 채 흉내만 낸 꼴이라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텅빈 진리인 것이죠.





이 문장이 진리에 대한 가장 명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것을 따를 것인가 저것을 따를 것인가에 있는 것이 아닌 그 사이에서 고뇌하며 씨름하는 중에 비로서 얻어진 자기결정과 자기 확신인 것입니다. 자기결정과 자기확신이 생길 때 비로소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은 끊임없이 자기 내면에 생채기를 내는 작업이 지속됩니다. 싱클레어는 자기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과 그 거짓말로 비롯된 악과 손잡게 되면서 자기 내면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해치고 망치는 것이라 여겼지만 결국엔 그 생채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이 단단해진다는 건 그 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진리에 가까워질 때 말입니다.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은 결코 하나의 길로 모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모든 이들이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지도 않습니다. 이 문장처럼 다른이가 가던 길을 우리는 그저 모나지 않게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 길을 벗어날 위험만 넘어서면 대부분의 이들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그 길에 다닿게 됩니다.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 아닌 모두가 안전하다 여기는 그길 그곳으로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Myriams-Fotos, 출처 Pixabay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죠? 저도 이 구절만 생각하고 데미안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제 기대와 많이 달라서 책을 읽는 내내 어리둥절이었지만 우리가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기 위한 투쟁이 난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지어지면 싱클레어가 선에서 첫 악으로 이동하며 풀어내는 이야기가 싱클레어 자신에게는 투쟁과도 같았겠구나 싶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보호되며 선에 감싸인 어린 아이는 자기 스스로 저지른 혹은 보고 듣게 되는 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선이라 여긴 것들에 첫 시련을 맞보게 됩니다. 그 시련의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최고의 선이라 여긴 부모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내비칠 수 없었지만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만나며 그 악이 선을 위한 악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질문을 떠안은 싱클레어는 운이 좋게도 그 길을 따르며 사는 자들을 만나며 자신의 길을 구축해 나갑니다. 악의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 그리고 그 악의 길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이들까지 말입니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에 선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원자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로 이르는 삶을 향해 투쟁하는 자에게는 구원자의 손길이 닿기 마련인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의 흐름과도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이니 말입니다.



이 소설이 청소년 필독서라 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읽고나니 싱클레어가 건강하게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가능했던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과오를 결국 선이라 여긴 부모에게 해결하도록 떠넘겼다면 싱클레어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꼭두각시마냥 선인척 살아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저지른 첫 악에 대해서 고통당하고 그 고뇌의 때에 인생의 선배같은 존재인 데미안을 만나게 되면서 자기 안에 떠오르는 많은 질문에 답을 찾게 되며 건강한 자아상을 만들어 냅니다.



자기에게로 향하는 첫 길을 깨닫게 되는 시작이 청소년기에 내면의 가장 큰 지진과도 같은 일이지만 그 지진은 필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세계가 더 이상 전부가 아닌 전무일 수도 있음을 깨닫고 비로소 자신의 세계로 입성하는 계기가 되니 말입니다.




나와 엄마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의 세상에 들어와 나의 현재의 만족을 깨기 시작해야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꿈꿀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렇게 '현재의 나와 간극을 가진 나'를 전망할 때에야 비로소 시간이 앞을 향해 미래를 향해 흐르게 됩니다/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싱클레어에게 악마와도 같던 크로머는 싱클레어 자신의 세계로의 첫 문을 열어준 은인과도 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게 생기는 괴로운 일은 자신이 겪어야 하는 당연한 과제의 제시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자기의 세계가 열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아직 자신에게로 이르지 못하거나 이르는 길 가운데 당도한 괴로운 현실로 말미암아 고뇌한다면 데미안의 문장을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상 진주서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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