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매일 읽고 쓰기 15

전지적 그림책 시점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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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림책 관련 책을 만났습니다. 한 그림책에 대한 세 작가의 시선이 담긴 <전지적 그림책 시점>이랍니다. 전혀 다른 감상평이 굉장히 새로웠습니다. 저 역시 그림책으로 모임을 이끌어 나가는지라 같은 그림책을 보고 각기 다른 감상평에 화들짝 놀랄 때가 종종 생기는지라 충분히 공감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짝 그림책 나눔을 다시 재기해야겠다는 의지도 불타올랐답니다.(요즘은 주로 책모임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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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저자는 세분인데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자이기에 자기분야에 대한 시선으로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림책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게 되었구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더불어 제가 부족한 사회적 배경이나 지식에 대한 부분도 내 역량에서 키워야 할 부분이구나 반성도 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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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이야기는 흰 눈이라는 그림책이야기인데 겨울을 지나고 있는 지금 시점이라 그런지 공감이 되면서 저도 이 그림책이 보고싶어졌습니다. 겨울에만 내리는 흰 눈이지만 흰 눈의 수분기를 가득 머금은 채 봄에 피어나는 매화꽃이 이어서 피어나고 그리고 벚꽃 뒤이어 조팝나무의 흰 눈까지 우리의 흰 눈은 일년 내내 감상할 수 있다는 표현이 새로웠답니다.


유독 겨울이 힘든 엄마인지라 흰 눈의 시작은 곧 방학의 시작이자 엄마의 삼시세끼가 열리는 출발선이라 저는 그다지 달갑지는 않습니다. 길고 긴 겨울내내 흰 눈은 그저 저의 극한 현실과 대비된 미지의 세계마냥 그저 신기롭게 다가올 뿐이죠. 굉장한 현실적 괴리감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흰 눈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지금에서야 이제 피어날 매화의 흰 꽃은 다시금 신비의 세계가 열리는 도화선이 됩니다. 곧 개학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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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그림중에 하나인 빈 센트 반호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역시 흰 꽃을 지닌 나무입니다. 흰꽃과 대비되는 파란색의 배경이 흰 꽃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답니다. 이 책 덕분에 반 고호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도 알게 되어 참 기뻤습니다. 더군다나 그 배경이 조카를 위한 것이었다니 그 그림이 더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건 고호의 조카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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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그림책 <무릎딱지>에 대한 시선입니다. 이 그림책은 큰아이 초등학교 1학년때 만나게 되었어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읽어주다 쏟아지는 눈물에 한참을 머뭇거렸던 그림책이랍니다. 마침 그때쯤 큰아이 친구 아빠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던 지라 이 그림책이 너무도 현실감있게 다가와서 잔상이 꽤나 오래 머물렀답니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의 죽음은 세상이 무너지는 그 이상의 아픔이 아니었을까 감히 상상도 못할 무게감에 섣불리 어떠한 말도 입에 담을 수 없었답니다.


부모와 함께 하던 아이의 세상에 엄마의 빈자리는 곧 아이의 세상이 바뀌는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이는 곧 엄마가 사라진 자리에만 머물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상처난 무릎에 딱지를 통해 엄마를 느낍니다. 엄마 잃은 상실감에 대한 대체였을까요? 하지만 아이의 세계에 엄마만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걸 아빠를 통해 할머니를 통해 다시금 아이의 세상은 배경을 바꿉니다. 가슴에 엄마가 살아숨쉰다는 할머니의 위로 덕분이었죠.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슬픔은 우리를 삼켜버리게 됩니다. 곧 그 슬픔이 자신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 슬픔이 자기의 자리를 키우기 전에 그 슬픔 이전에 나를 감싸고 있던 기쁨 혹은 따스함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야 합니다. 슬픔에 자리는 허락하되 그 슬픔이 머물도록 해서는 안되니깐요. 살아가면서 슬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건 아마도 그 슬픔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기쁨이나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어릴때 많은 기쁨과 즐거움의 씨앗을 많이 심어둬야 하는 건 부모의 몫일 듯 합니다. 그 씨앗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마주한 슬픔이이 거름이 되기 위해서말이지요. 슬픔의 거름은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의 열매를 맺게 될테니 말입니다. 다만 그림책 아이처럼 너무 이르게 상실의 슬픔을 겪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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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라는 그림책을 통해 작가는 자신만의 책에 대한 시선을 담아둡니다. 이 한마디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답니다. 저에게도 책은 자유이자 치유이니 말입니다. 치유를 통해 곧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지 문득 궁금합니다.



한동안 그림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고 싶은 책들에 파뭍혀 그림책에 대한 마음을 고이 접어두고 있었네요. <전지적 그림책 시점>덕분에 그림책이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지고 그림책 나눔을 하고 싶어집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갑자기 그리운것처럼요. 곧 그림책 이야기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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