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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11. 2023

진주서평 비교하지 않는 연습




일본 심리학자 가토 다이조를 알게 된 건 저에게 행운과도 같습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라는 책을 통해 그동안 심리서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로 가토 다이조의 책을 즐겨 읽으며 저만의 스승으로 삼게 되기도 했습니다. 가토 다이조의 글은 굉장히 쉬우면서도 핵심을 콕콕 찔러 이야기해 주기에 가끔은 책을 보다 기분이 나빠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만큼 내용이 제 안의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심리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 가토 다이조만의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겪게 되는 것이 비교나 질투가 아닐까요?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 나 아닌 다른 이가 보이는 건 당연하고 또 그로 인해 마음의 번민이 생기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 비교가 자신의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이에 미움을 전가시키기 마련입니다.  '쟤가 미운 이유는 괜한 게 아니야, 쟤는 미운 짓을 한단 말이야.'이라며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질투의 대상에게 탓을 돌려 버립니다. 질투의 대상이 자연스레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니 미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억울한지도 모르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신경 쓰게 되며 관계가 어긋나며 문제를 더 만들어 버립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질투는 자연스레 자신의 굴욕감이 되어버리고 그로 인해 괜한 자존심을 세우거나 굴욕감을 해결하려 엄한 노력을 일삼게 됩니다. 물론 그 노력의 여하에 따라 자신이 진짜 우위에 서는 존재가 되기도 하긴 합니다. 하지만 애초의 출발이 자신의 만족이나 자신의 충족이 아닌 남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고 남을 굴욕시키고자 하는 미운 마음에서 애쓴 노력은 노력의 보상이 있을지언정 결코 만족함은 없습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자신의 우위는 더 높은 타인을 보고 또다시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니깐요.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느라 헛다리 짚는다 할까요? 애초에 문제를 잘못 이해했으니 말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비교하지 않는 연습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타인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결정짓는다 타인의 기준을 삼은 나의 행복이 과연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토 다이조의 대부분의 책에서 보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저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겪는 많은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열등감도 어찌 보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기보다는 남과의 비교를 일삼으며 자신의 부족함이나 혹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자꾸만 찾으려 하는 허공에 손짓을 하며 무언가 잡으려는 안타까운 애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 비교하지 않은 연습에서는 그런 사람은 결코 혼자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을 돌아볼 수 없기에 진정한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진짜 믿을 수 있고 진짜 그 사람을 위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자신으로 살지 못해 스스로 엄한 용을 쓰는 자에게 자꾸만 자신을 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 인연을 혼자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니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자가 그 인연에 대한 귀함을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말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이는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을 크게 바라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이나 롤 모델 삼아 닮고 싶어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지요. 



비교하지 않는 연습


비교나 열등감의 근본은 결국 애정결핍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부모나 가족 그 외 타인에게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애정이 부족했던 것은 성인이 되어 반드시 심리적 문제로 발현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새 생명을 탄생시킨 이도 낳고 기르는 자도 지켜보는 자도 최선으로 삼아야 하는 존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존중받는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는 분명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으니깐요. 존중받고 사랑받는 아이는 스스로 사랑을 갈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신이 사랑스러움을 자신을 사랑스럽게 돌봐주는 이들로 인해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사랑을 얻지 못하는 아이는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 사랑을 갈구하며 그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타인에게 기대고 타인을 만족 삼으며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 애를 쓰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편으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자의 인생이 참 외롭고 쓸쓸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심리서를 읽으며 또 제가 근본적으로 진주서평이나 다른 글에서도 결국 강조하는 바는 자신으로 살아가기입니다. 자신으로 살지 못하면 인생의 낙이 진짜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껍질에 둘러싸여 안의 진짜 알맹이를 도무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인생은 자기 안의 쌓여 있는 진짜 귀한 보물을 발견하는 묘미 아닐까 싶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과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의 삶은 확연히 다르겠죠? 


요즘 초5 둘째에게 자주 하는 말이 '하은이 너 자신을 믿어!'입니다. 기질상 열등감이 있는 편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너무 크게 왜곡시켜 해석하는 태도에 엄마로서 참 속이 상했습니다. 같은 엄마가 키우는데 유독 둘째만 그러니 기질적인 문제인가 여기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형제들에 비해 스스로 못나다 여기는 이유도 있지만 말입니다. 특히 외모적인 부분에서 그렇습니다. 아들들은 외모 자존감이 높은 편인데 반면 딸은 그러지 못해 외모에 대한 왜곡을 일삼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지면서도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럴수록 아이에게 자신만의 존재로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리고 요즘 공부에 부쩍 관심이 많아서 공부 관련 자존은 높아진 상태이긴 한데 반면 더 잘하고 싶고 완벽해지고자 하는 모습도 보여서 노력하는 여부에 대한 칭찬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하면서도 자꾸만 부족하고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보며 '너 자신을 빋어' 라는 이야기 역시 해주고 있습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자신을 믿을 수 있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머뭇거리고 정체를 안전하다 여긴 채 정진을 일삼지 못합니다. 자신을 믿는 힘이 곧 동력인데 그것이 없으니 선착장에 묶여만 있는 배가 되어 버립니다. 아무리 멋진 배도 선착장에만 묶여 있다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믿고 앞으로 밀고 나아갈 때야만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믿는 자만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고 충분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자랑스럽지 못하고 충분하다 여기지 못하는 자신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끼칠 수 있는가자 큰 해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초에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주지 않은 사람을 탓할 순 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 사랑에 목을 매며 그 사랑을 애걸하며 애타하는 삶은 자신의 문제로 가져와 해결해야만 해결이 되는 자신의 문제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자신에 대하여 분명하고 불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견딜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사람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알려고 하는 구실조차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그 사람은 자신으로 살려고 애쓰는 저로서는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람의 모습이나 행동, 말에 대해서 자신을 직시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줄 뿐입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자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을 잘 안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 입니다. 잘 아는 것이 아닌 안다고 해야 자신의 존재 여부가 확실해지기가 그런 사람일수록 고집만 키워집니다. 그런 사람의 고집이 자신을 지켜낸다고 착각하죠. 그 고집을 자신을 한 치 앞도 못 보게 한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자기중심성에는 상호성이 없습니다



사실 가토 다이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같이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머리로의 이해는 많이 해소되었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닌 그 뒤에 스텝을 밟아 나가고 싶은데 그것은 제 몫이 아닌 것이죠.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정체된 삶이 아닌 자신을 진정으로 마주하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 될까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커가며 아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지고 아빠 자아에 대해 읽히다 보니 아이들이 아빠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자극이 되기는 하는 거 같습니다. 같이 사는 이는 상호작용이 거의 되지 않은 정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말이죠. 



자기 안의 생명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자신이 살아 있는 세계에 봉사할 수 없습니다 
그저 짐이 되어 버립니다


자신이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 짐은 가족이나 다른 이의 짐이 되어 버립니다. 그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즐거워할 이는 자신 아니고는 없습니다. 그런 짐을 가족에게 전가하며 여전히 자기중심성에 빠져 산다면 그 가족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짐 진 자는 자연히 자신의 짐보다 짊어진 짐에 무게에 억눌린 삶을 살게 되기 마렵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타인에게 짐 지워 기생하며 사는 이는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비교하지 않는 연습



진짜 나로 사는 것만이 타인에게 기생하지 않는 삶이자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입니다. 나로 산다는 것은 나를 마주하고 나를 직시하는 것이고 나로서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로 살고 계시나요? 오늘보다 더 나은 나로 내일을 마주하시나요?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부족해도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나는 나를 믿으니깐요. 나를 믿으며 산다는 것은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삶 속에 나를 믿고 나를 지지하며 나로 살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진주서평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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