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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Nov 03. 2023

진주서평 아픈 몸을 살다




        

몸에 대한 감각을 언제부터 느끼셨나요? 저는 40대가 되면서 거울 속 제 모습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흔적을 보면서 나이를 실감함과 동시에 그전까지 느끼지 못한 몸의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질병이 있지 않았기에 노화에 따른 자각만 있었지 건강에 대한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치열하게 살아낸 30대를 지나고 40대로 들어가니 몸의 감각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는지 본다 
경계에서 삶을 조망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대단히 큰 질병은 아니지만 셋째 아이를 낳고 아이셋을 키우는 고단함과 자기개발로 인한 여러 애씀이 저의 몸에 흔적으로 조금씩 남기 시작했습니다. 이명과 어지럼증을 시작으로 한때 미라클모닝을 하겠다며 몇 개월 새벽을 불사 지른 덕에 제가 얻은 것이라고는 나는 절대 미라클 모닝을 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된답니다. 잠을 줄여서 해볼 미라클모닝이 되려  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생활 철칙으로 12시 전에 잠드는 것을 루틴으로 잡게 됩니다. 


신경과민인가 싶을 정도로 예민한 구석도 있기에 전 몸뿐 아닌 심인성 질환도 결혼 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고 무리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가끔 아쉽기도 하지요. 내가 도달하고 싶은 그곳에 이르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불사 지르고 싶은 욕망 내지 열정이 한가득인데 체력의 한계는 분명 있다는 것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아이셋을 키우고 일을 하면서 내 욕망에 대한 욕구까지 채우려고 한다는 것은 고속으로만 폭주만 하다 결국 맞이하게 되는 것이 폭발일테니 말입니다.


주변에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계시거나 치유가 된 분, 그리고 저보다 연배가 오래되신 분들은 한결같이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건강을 잃어봤기에 이야기할 수 있고 건강에 대한 자각이 삶의 밸런스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들으신 것이죠. 


젊기만 할거 같았던 저 역시도 세월에 장사 없이 조금씩 몸이 고장 나는 것을 몸소 느끼며 아픈 몸을 살고 있는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도 되고 한편으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삶의 손해나 좌절이 아닌 오히려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소중한 일부가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병은 삶 일부를 앗아가지만 기회 또한 준다 
우리는 그저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사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건강을 잃기 전에는 삶의 큰 변곡점 없이 수평을 그리게 됩니다. 하지만 질병이 생긴 순간 수직 하강하며 내 삶을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당기듯 좌절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아픈 것 전에 우리가 아프게 되므로 반드시 상기하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 삶을 재고하게 되는 것이죠. 후회와 원망, 그리고 몸을 잘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도 지나게 되지만 곧 아픈 몸을 받아들이고 그 아픈 몸에 맞춰 삶을 재정비합니다. 그것은 타협을 위한 정비이지만 결국엔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해석과 방법을 달리 하게 되는 도화선입니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인 아서 프랭크는 실제로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이 글을 쓰게 됩니다. 아프다는 것에 대한 회고이자 아픔에 대한 남다른 서사를 서술한 책이라고 할까요? 아픈 몸을 사는 것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직 아프지 않았지만 살아가는 앞으로 남은 것은 몸이 병드는 것이라는 당면성에 대한 자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갈수록 우리에게 남아 있고 다가올 것은 질병이라는 것이 너무도 정확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의식을 하지 못한 채 질병이 당도해야만 알게 되니 말입니다. 



사전에 알고 당하는 것과 전혀 예상치 못하게 겪게 되는 어려움은 몸의 아픔보다 그 이상 마음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무리를 해서 몸이 아픈 것보다 무리를 하면 몸이 아파져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저를 더 실망시키는 것을 여러번 느꼈답니다. 아픔은 모든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 여기지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린다고는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문제이니 말입니다. 



질병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은 질병에 대한 단순한 정보와 앎만으로 살아내지지 않습니다. 그 질병에 대한 받아들임과 수용 그리고 질병과 함께 살아내기 위한 자신만의 인생 계획을 다시 수정해야만 질병과 무리 없이 생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질병을 겪는 환자뿐 아닌 그 가족과 주변까지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질병은 혼자 겪지만 그것을 이겨나가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에 부치니 말입니다. 



이 책에서 아서 프랭크는 자신의 질병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질병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돌보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돌봄을 받는 사람만큼 돌봄을 주는 사람의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앞으로 사회문제로 간병 문제가 대두될 것인데 그런 면에서 돌봄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 따른 존중이 뒷받침되어야겠다는 것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돌봄의 대상자가 되지만 그 돌봄의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돌봄의 대상자에게만 국한된 시선으로 인해 간과되는 부분이 분명 있으니 말입니다. 돌보는 자로써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황폐함까지 간병을 하다 병이 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겁니다.


직접 경험에 의하면 몸의 부침보다는 마음의 고갈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느낍니다. 친정엄마가 치매인 할머니를 모시면서 점점 우울감을 느끼시는 것도 직접 목도하고 하반신 마비로 다른이의 도움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시어머니를 모시는 가족들의 날선 감정들도 느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돌봄이 어렵고 절망적인 건 그 돌봄의 종료기간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질병을 잘 모르며 돌봄은 더 모른다
아픈 사람의 경험도 부정당하지만 돌보는 사람의 경험은 더 완전히 부정당한다




질병은 곧 고통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몸 어느 한 곳에라도 통증이 생긴다는 것을 느끼는 이상 우리는 그 통증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은 같은 질병을 가지지 않고서는 공유될 수 없는 것이기에  환자는 고스란히 그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내 몸에 일어나는 통증에 대해 발악할 것인지 잠잠히 그 통증에 대해 알아갈 것이니 말입니다. 


통증은 바로 내 몸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신호를 보내는 내 몸이다 
통증은 몸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몸이지 
통증과 씨름하는 일은
몸 바깥에 있는 무언가에 맞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해 통증이 날 괴롭히는 것이 아닌 어쩌면 통증을 유발했을 내 몸에 대한 신호로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픈 몸으로 사는 것이 그리 고통스럽지만은 않을까요? 발가락에 실금이 조금만 가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찾아오고(제가 경험한 통증의 일부)  추운 겨울이 되면 손발이 갈라지면서 틈이 벌어져 그 사이로 통증이 새어 나오는 것도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일 만큼 견디기 힘든데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붙여진 통증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통증은 겪어본 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되고 전달되어 그 통증을 겪는 자신의 몸에 대한 애도를 아픈 사람을 위해 다른이들이 기꺼이 해주어야만 합니다. 








질병은 상실을 불러온다 
이들과 함께 하는 미래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자 죽음이 고통스러웠다 
삶의 이유가 그 순간만큼 분명했던 때가 없었다


아픈 몸을 살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의 위치나 정보가 달라집니다. 가족 내에서도 환자로 구분되는 것은 물론이고 환자라 명명되는 순간 환자는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위치로 전락하게 됩니다. 환자가 겪을 상실은 이뿐 아닌 함께하는 가족과 주변인에 대한 미래를 계획할 수 없게 됩니다. 아픈 몸을 살고 있는 현재에 묶이게 되는 것이죠. 저자의 말처럼 그 순간이 가장 인생에서 선명하고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뼈아픈 현실일 겁니다. 




아픈 몸을 살다에서 가장 치명적이게 다가온 문장입니다. 환자가 있으니 의사가 있고 의사가 있으니 환자가 있는 것일 텐데 두 관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환자가 되는 순간 환자로서의 존중과 환자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바라게 됩니다. 그 질병을 직접적으로 치료하게 되는 의사에게도 자연스레 그 부분이 행해지리라 여기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자로서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마음에 상실까지 떠안게 되니 그 상실감에 대한 공감을 자연스레 의사에게 바라게 되지만 의사는 그저 질병으로서의 환자의 몸만을 볼 뿐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의사로서 당연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의사는 몸의 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니 말입니다. 환자에게 치유는 몸의 질병과 함께 마음의 작용이 질병전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를 포함하지만 의사는 완치란 사실적 결과만이 남게 되니 말입니다. 




아픈 몸을 살게 되는 것은 언젠가 나에게 당도할 분명하고도 선명한 것에 대한 경험이자 출발점입니다. 아픈 몸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삶은 질병 전과 질병 후로 분리될 수밖에 없으니깐요. 질병으로 인해 아픈 몸을 살게 되는 건 그 아픔이 가져다 줄 전혀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이자 그 아픔의 나음으로 인해 맞이할 종료를 기대하게 하는 양면성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은 곧 시작과 끝이 공존한다고 할까요? 



아픔의 길이 열리는 건 아픔의 끝을 향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아픔을 얻게 되므로 절망에 빠지게도 되지만 아픔을 내던지게 될 희망 역시 갖게 되는 것이 질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사고가 열리며 관련 책을 몇 권 더 보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답니다. 


지금은 아프지 않고 돌볼 사람이 없지만 우리는 곧 아프게 되고 돌봄의 대상이나 돌보는 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삶에 있어 정확한 사실입니다. 그 현실에 당도했을 때 그 아픔을 조금 더 지혜롭게 헤쳐 나가기 위한 시금석으로 이 책을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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