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흔적

by 진주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아?" 20여년전 갓 군대를 제대한 남동생은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왔고 그덕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나의 볼멘소리에 남동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로움을 내뱉었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그 어떤 책임에도 휘둘리고 싶지 않다며 솔로의 삶을 만끽하는 내 남동생이자 아들의 엄마인 내 엄마가 오늘 비로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내가 우리 애들을 너무 외롭게 키웠나 싶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엄마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말이다. 효녀 근처에도 가지 못한 딸인 나는 그저 그 말이 반갑고 통쾌했다. 이제서야 엄마가 어린 시절 오롯이 감수해야 했던 내외로움의 자리를 알아보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외로움을 외로움이라 내뱉지 못한 채 스스로 외로움을 감당하며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낸 삶을 살아가는 첫째인 나와 다르게 남동생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 어린 시절 외로움이 남긴 결국일까? 그것을 그제서야 엄마는 알아보는 걸까?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한 외로움의 자리는 반드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외로움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자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 그 빈자리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채 스스로 짊어질 외로움을 외면한다.


외롭기 보다는 무서웠고 불안했다. 지켜져야 할 자리에 어른은 상주하지 않았다. 어른의 자리는 곧 아이의 불안이자 두려움으로 변색되어 자기를 지켜내는 것 외 다른 어떤 것도 할 힘을 얻지 못했다. 나보다 동생은 부모님과 적어도 한 이불은 더 오래 덮었기에 나으려니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동생에게는 두려움보다는 애정이 고팠던 것일까? 첫째라는 위치때문에 애정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에 벌벌 떨던 그 시절이 자꾸만 떠오른다.


문이 잠기지 않아 어두운 방안에서 두려움에 사무치던 꿈을 꽤 오랫동안 꾸었다. 문을 잠가도 잠자도 자꾸만 열리는 문때문에 어둡고 어둔 밤은 스스로를 지켜내기 가장 힘든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그래서 그토록 오랜 시간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이셋이 되고 그 꿈은 더 이상 꾸지 않는다. 비로소 어른이 될 것일까? 깜깜한 어둠속에서 더 이상 혼자이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엄마의 그 한마디로 그 시절이 사무치게 떠올랐다. 무섭고 두려웠던 그 순간이 오롯이 떠오르기에 엄마의 그 말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켜주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한 시간에 대한 응당한 처사라고 엄마도 그 외로움의 자리에 있어봐야 한다며 말이다. 마흔 중반을 앞둔 딸은 그렇게 그 시절과 조우하며 비로소 안녕하게 된다. 나의 외로움이 드디어 주인을 찾아갔으니 말이다.


어른의 빈 자리는 아이의 고통이 되어 버린다. 너무 일찍 고통의 자리에 떠앉게 되는 아이는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다. 그 자리를 지켜내는 일에 너무 힘을 쏟다보니 스스로 양분을 얻어내는 데 너무도 많이 시간이 걸려 버린다. 부모라는 양분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보다 한참 모자라게 커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고 자랄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린 아이는 그 시절이 자꾸만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외로웠다고 너무 무서웠다고 소리쳐 울고 싶지만 들어줄 어른이 없었다. 그 시절의 아이가 안쓰럽고 불쌍해서 자꾸만 머물게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간다. 자라지 못한 채로 말이다.


자라지 못한 채로 부모의 길을 걷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안의 스스로 키워낸 양분은 적어도 아이들을 외롭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매 순간 내 안의 아이를 다독이며 내 아이들을 키워낸다. 내 어린아이가 받고 싶었던 돌봄의 형태로 말이다. 적어도 내 어린아이만큼 외롭지 않게 할 자신은 있었으니깐.


부족하고 해주지 못한 것만 자꾸 떠오르는 엄마지만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내고 보니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다는 충만함이 스민다. 내 외로움이 키워낸 결과일까? 그 외로움의 자리 덕분에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외로움을 안겨주지는 않았으니깐?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고 나면 지나온 내 부모로서의 자리가 선명해지리라 믿는다.


내 엄마가 딸이 마흔 중반이 되며 자신이 비운 외로움의 자리를 드디어 알아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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