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작년 겨울에 엄마네집 앞 계단에서 넘어지신 후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 채 하루도 안되어 뇌경색으로 의식을 잃으신지 4개월만이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신지 딱 10년만이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5년은 혼자서 외롭게 지내시다 치매와 우울증이 같이 오면서 엄마네 집으로 모셔와 딱 5년을 사셨다. 그 5년이라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자신의 민낯이 수시로 들어차는 시기였고 나 역시 외갓집 식구들에 대한 미움을 떠안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 누구하나 미움이나 원망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건 순전히 할머니 인품덕일것이다.
모진 시집살이와 개차반같은 시동생에게 죽어서까지 시달리면서도 일곱 자식을 놓치 않았고 88세 넘어지셨던 그 날까지 예배를 드리시고 기도를 하셨던 분이다.
평생 기도를 통해 자신에 삶을 전지전능하신 그분께 의탁했던 만큼 할머니의 생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었다.
나는 외갓집 첫 손녀이자 첫 손주였고 그만큼 외갓집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 그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고 더불어 할머니의 전 생애를 전해 듣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며 먼저 살다 간 이가 전하고 싶었을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인생 진리를 떠올리게 된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한줌의 재로 남는 마지막 순간에 내 뇌리에 스치는 너무 미워하지도말고 너무 애쓰고 살지도 말자라는 깨달음속에 할머니로 인해 비롯된 스스로에 대한 회한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무에 그리 미워하고 애쓰며 살았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그 울림이 내 눈을 적신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는 자신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신이라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저 주어진 생을 살아내셨기에 그리 고운 모습으로 마지막을 남기신 것일까?
삶의 얼룩은 살아가는 동안 자기에 대한 연민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얼룩진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기는 것이 모진 생이 아닌 그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팔십이 넘도록 살았던 집 앞 바닷가는 할머니를 닮은양 고즈넉하기 이를때 없었고 애잔하지만 그리움으로 기억될 순간이었다.
차디찬 병석에서 4개월을 꼼짝없이 누워만 계셨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은 배웅이라도 하듯이 벚꽃이 흩날렸고 그래서 가족들은 더할나위 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외롭게 혼자 할머니를 10년간 기다렸던 할아버지 유골함이 옮겨지고 비로소 두분이 함께 하시게 되었다. 그 젊은 시절 두분이 수줍게 찍은 사진이 그 기쁨을 말해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였던 내 기억속에 그 사진은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였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이야기하게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삶이 겹쳐지는 순간에 인생은 비로소 인생으로서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의 인생이 나에게 오듯이 하나의 인생이 나에게서 멀어지며 이렇게 삶을 전해준다.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세요. 잘 살다 가셨듯이 저 역시 잘 살다 제 때에 곁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