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
송길영님의 저서는 두번째입니다. 송길영님 팬이신 모나리자 스키님 추천으로 '그냥 하지 말라'를 이후 모나리자 북클럽 4월 선정 도서로 역시나 스키님이 추천해주셔서 시대예보까지 읽게 되었답니다.(스키님 고마워요)
시대를 앞서가시고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니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한 길잡이가 되시는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시대를 앞서고 시대에 따라 순행하는 삶을 원하는 자에 한해서 말입니다. 설령 역행하는 삶을 사는 이라고 할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혜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 같습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깐요.
시대가 변하는 만큼 문화가 달라지고 그 문화에 따라 언어의 변화도 있으니 그 변화의 시점을 읽어나가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익혀할 기능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대가 따라 하는 말이 달라지고 하는 행동의 변화도 분명 있으니 말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나가는 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도움과 배려는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할까요?
요즘 시대에 딱 필요하고 생각해 볼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키오스크를 들 수 있습니다. 아직 젊은 축에 드는 저 역시 키오스크가 익숙치 않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매장은 괜찮지만 대부분 매장마다 키오스크 기계도 다르고 주문 방법도 상이하기에 키오스크를 한번 경험했다고 해서 사용이 용이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간혹 주문하는 어려움 때문에 아예 주문을 포기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거절이라도 당한 기억이 있다면 키오스크는 이용하는 이에게 곧 불친절한 기계로서 인식되기 십상입니다.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키오스크 옆에 도우미를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다른 손님의 배려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정도는 배워라 하는 야유의 소리 역시 곱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시대는 변화하고 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가장 필요한 때가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노력이 하필이면 어리고 젊은층보다는 윗세대에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말입니다. 그런면에서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 누구는 편리해지는 반면 누구는 불편함을 겪다는 것 역시 과연 순기능일까 한번쯤은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해 충동을 조정해서 더 나은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다양성 사회의 창의성입니다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다양함을 즐기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인식에 대한 상호이해와 존중 내지 배려입니다. 앞으로 존중과 배려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모든이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사회적 규범입니다. 개인주의와 그 어느때보다 개인의 역량이 날개를 치는 이 시대에 개인에 상승만큼 그 개인에게 요구되고 선행되어야 할 것이 분명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서사가 그 어느때보다 잘 팔리는 시대입니다.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삶이 증명되어지고 그 증명됨이 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세상 구조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이뤄낸 것들이 팔리는 시대란 말이지요.
개인의 삶에 충실할수록 다양한 개인들이 창조될 것이고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시대는 꽤 매력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개인에 대한 개입에 대해서도 조심할 때이긴 합니다. 개인의 서사는 공유가 먼저가 아닌 공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서사에 대한 공감이 먼저 이뤄져야지 그 서사에 흠집이 생기지 않습니다.
나이와 성별 불문하고 다양성이 존중되고 다양성이 입증되어도 안전한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경계에 대한 경계는 분절을 야기할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이기를 조장하게 됩니다.
'이해 충동을 조정해서 더 나은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다양성 사회의 창의성입니다.'라고 저자가 명시한 것처럼 개인의 서사을 위한 창의성 뿐 아닌 다양함이 공존하고 다양함에 안전지대를 위해 충돌에 대한 이해와 해결책은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 제시된 것은 사회적 규범으로 개개인을 지킬 수 있는 장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고라는 상댓값이 아니라, 가장 앞에 선 자가 맛보는 '최선'이라는 절대값에 대한 비유가 와닿습니다. 개인의 서사에 충실한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이자 최선의 태도이지 그 서사가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도구화 된 개인의 서사는 또 다른 도구의 장치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활개치는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것에 가장 기본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하는 것처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의 서사가 이기가 되거나 시기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가장 만족할 만큼의 위치를 선점하고 그 위치에 따른 인격이 갖춰진다면 닮고 싶은 개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올라온 위치에서의 선망이 아닌 그 위치까지 오르기 위한 그 의 서사가 읽혀져야만 롤모델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꼭대기에 선점해 있는 개인의 모습만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한탄으로 매일밤을 지새울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늘어난 생애주기만큼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것은 당연한 삶에 태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핵개인에 대한 역량을 이야기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대에 따른 시대 맞춤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 보다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하거나 쥐어준 늘어난 생애에 대한 대비를 개인이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편으로 개인뿐 아닌 사회적으로도 반드시 시대에 따른 장치를 대비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개인의 서사가 존중되기 위해 각 개인이 존중과 포용을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임을 말씀드리며 진주 서평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