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해리엇과 함께 그 집의 연장이자 확대판인 또 다른 집을 창조하고 싶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자신들의 행복을 단언하고 자신들의 행복의 크기를 대변할 대저택을 구입하는 데이비드와 해리엇. 자신들의 행복에 값을 얹어줄 부모들을 등에 업고 말이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가족이라도 가정을 갖는 일이 여러면에서
얼마나 돈이 드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자녀로 속했던 가정이라는 안온함이 거저 주어진다고 생각했던 철없는 데이비드와 해리엇, 그 안온함이 자기들에게도 거저 주워질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에 사랑의 결과물만을 낳았을 뿐이다.
가장이라는 무게를 지게 된 데이비드는 결국엔 자신이 한때 결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며 가장의 무게를 결국 지게 된다. 다섯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부모의 도움이 있다고 한들 결코 부모의 몫으로만 남길수는 없으니 말이다.
너희 둘은 마치 모든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그것을 놓쳐버릴 거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구나
사랑의 불이 타오르기 때문이었을까? 행복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을까?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이 마치 행복의 날개인양 그 날개를 타고 쉼없이 날아오는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연속으로 네아이를 출산하고 잠시 날개짓을 멈추자 다짐하기도 전에 다섯때 아이를 잉태하고야 만다.
그녀는 자신 안에 있는 이 야만적인 것에 대해 이제 그렇게 생각했다
쉼이 필요한 순간에 다섯째를 잉태하게 되고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끼며 자기 뱃속에서의 존재감을 표하는 거친 공격성을 잠재우기 위해 진정제를 투여하며 어긋난 모성의 시작, 그리고 그 모성으로 인해 명명되는 다섯째 아이 정체성의 출발.
그 애는 성나고 난폭한 작은 괴물 같았다
비난과 비파관 혐오
벤은 이런 감정들을 야기했고
사람들 안에 이런 감정들을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내었다
벤이 그들에게서 그렇게 많은 것을
빼앗아가 버렸다는 점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모성이 말하는 자녀의 정체성, 과연 그것은 자녀로써 온전한 자녀를 말하는 것인가? 모성에 대한 판단일 뿐인가? 그 판단이 자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는 것을 모성인 해리엇을 알지 못했단 말인가? 벤이 죽음이 예고된 요양원으로 가게 되고 모성은 죄책감에 죽을걸 아는 그곳에 차마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행복이 붕괴되고 있음을 알고 그 파괴자가 벤이라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명백한 현실이지만 한때 자신의 뱃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여과없이 표시내던 그 작은 괴물을 죽음으로 내몰아내는 것은 모성에 반하는 최후의 가장 날 것이니 말이다. 자신의 몸을 관통해서 세상에 나온 아이가 괴물일지언정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롯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다.
다시 해리엇은 왜 자기가 항상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벤이 태어난 이후 항상 그랬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모두들 말없이 자신을 비난해 온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모성의 역설. 아이는 모성을 관통하지만 잉태되는것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낳아 키우는 것 역시 모성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성을 관통했기에 아이와 관련한 모든 것이 모성의 탓으로 연결이 되고야 만다. 벤을 책임지고 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 애초부터 행복이라고 명명하던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모두 함께 이행해야 할 몫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모성만이 작은괴물을 감당한다. 그리고 비난을 받는다.
이 소설은 어쩌면 한 여자의 모성으로 인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해체가 아닌가 싶다. 배우자인 데이비드와 다르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해리엇을 적어도 자신의 민낯을 통한 자기해체의 과정으로 자아가 조금씩 일깨워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모성이라는 것이 자녀를 향한 정체성의 부여이자 자신을 향한 정체성의 재정비라는 것.
그 애는 놀림을 당하고 거칠게 다루어져도 자기가 받아들여지는
존과 그 일행들과 함께 안전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벤은 과연 진짜 괴물이었을까? 괴물로 만든 이들에게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거친 무리들속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벤과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꿈꾸는 아이들이 가득한 행복의 표식인 거대한 대저택에서 벤은 왜 안전하지 못했던걸까? 자신들이 꿈꾸는 행복의 구도를 벗어나는 벤은 과연 그들의 행복을 뺐은 것인가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뺐긴 것일까?
"우린 벌받는 거야. 그뿐이야"
"무엇때문에?"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그들이 그토록 행복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행복의 과시를 통해 그들이 과연 바랬던 것은 무엇일까? 자신들이 말하는 행복에 모가 나게 만든 벤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무엇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걸까?
대저택이 마치 현대판 인스타인양 우리는 행복을 왜 보여줘야만 하고 그 행복에 대한 찬사를 그토록 원하는 것일까? 진짜 행복은 남이 보내는 찬사가 감탄이 아닌 행복을 느끼는 자의 가슴속 풍요라는 것. 진짜 행복은 공유될 수 없기에 과시할 필요조차 없다.
벤이라는 파괴물이 도리어 행복이라는 틀을 깨부수고 진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줄 천사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천사를 괴물로만 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천사도 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여러가지면에서 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