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 사는게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 곧 인생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는 때가 아닐까요?
삼재인가 싶었던 순간에 가장 절실하면서도 가장 애먼 존재는 다름아닌 믿고 있던 신이었습니다. 신의 존재가 갈수록 불명확하고 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은채 나만 불행의 구덩이를 파고 있는 듯 가장 외로운 순간에 사주에 대한 호기심이 올라오더군요.
나이들수록 관심이 가는 것 역시 사주였습니다. 곧 명리학인거죠.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에 대한 첫 회의감이 들었다고 할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언가 의지처를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하필 믿고 있던 신의 존재가 아닌 전혀 새로운 명리학에 눈을 뜬 것이고 말입니다.
호기심에 명리학 관련 서적을 찾아보았지만 한자 투성인 문장을 읽을 자신이 없던 와중에 '담백하게 산다는 것'으로 알고 있던 양창순 작가님이 심리와 명리학을 엮은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심리와 명리학이라니 읽을수록 서로 시너지 효과로써 완전에 가까운 지침서를 전달하는 양 바로 양창순 작가님 진료실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명리학을 통해 자신을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큰 틀,즉 프레임을 아는 것이고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을 아는 것은
그 프레임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작가님의 문장은 결국 인생은 자신의 문제이고 그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자 가장 자기다운 지침서임을 제시하십니다. 결국 생은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심상(내 마음의 흐름과 그 영향을 살피는 것)을
갈고닦고자 노력할 때 운명도 내 편이 되어주는 것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면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자기 삶의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마음같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쩌면 일어난 현실과 환경에 순응하지 못함이기도 합니다. 순응하므로써 자기에게 더 나은 쪽으로 이끄는 노력도 분명 필요할테인데 우리는 눈 앞에 당장 못마땅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마침 위화 '인생'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삶을 통해 지난한 인생사를 읽으며 그 삶을 대처해가는 주인공에 인생태도에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인생이라 여기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로 인해 마음이 번뇌로 가득한 불편의 삶을 살게 되지만 무언가 꼭 쥐려고 하지 않고 혹여 손에 쥔 것에 대한 감사로써 그 인생을 대한다면 삶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마지막 가는길에 손에 무언가를 쥐고 가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도 없으니까요.
인생은 결국 마음의 문제요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명리학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 접어둡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위화 '인생'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