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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진주서평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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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를 맞아 읽기 좋은 책 한권 소개합니다. 이미 유명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랍니다. 이미 읽으신분도 있고 읽으려고 목록에 올려두신 분도 있을거 같습니다. 저 역시 읽어보고 싶어 도서관에서 대출이 되기만을 기다리다 마침 가까운 분에게 책을 빌릴 수 있어서 감사하게 읽게 되었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 청년이 동경해마지 않던 형의 죽음을 겪게 되고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자리를 얻으며 그곳에서 마주한 그림을 통해 애도의 과정을 거친 후 비로서 자신의 삶으로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청년 자아성찰기라고 할까요?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미술관이 배경인 만큼 주인공이 묘사하는 그림에 대한 정보도 작은 책자로 제공되어 큐알코드로 바로 그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미술알못이지만 좋아하는 그림도 생기게 되었답니다. 바로 모네의 베테유 풍경에 대한 그림이랍니다. 고흐의 아몬드 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그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었답니다.


저자 브링리가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건 부모님의 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미술관의 추억이 그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이끈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술관 경험이 중요하겠구나 싶었답니다.


문화 생활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 영유하지 않고서 성인이 되고 관심이 있지 않은 한 발걸음을 하게 되지 않는 거 같아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특히 미술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기에 미술관을 찾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는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요.


이 책을 읽고난 후 가장 큰 동기는 미술관에 한번 가보자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오전에 미술관에 하라더군요. 한가한 평일 오전 미술관의 풍경과 내음이 어떨지 꼭 경험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에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하는 내내 재능이 없음에 재능 있는 아이들과의 끊임없는 비교가 제 스스로 하는 음악에 대한 만족감을 주지 못했는데 저는 재능 대신 즐거움에서 비롯된 부지런함으로 피아노를 거의 40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순간만큼은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해서 하는 모든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좋아서하는 일을 평생하는건 행복이지 아닐까요?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 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저자 브링리는 미술관에서 인생을 보듯이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또 그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알아갑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과 귀로 더 진하게 인생과 사람이 브링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은 브링리의 자아성찰 기록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비록 형을 잃은 상실감에 미술관으로 도망치듯이 숨어버린 브링리이지만 미술관에서 진짜 인생과 사람을 알아가게 됩니다. 상실이 충만함으로 채워진 것이죠. 삶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삶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하고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우리를 자극합니다. 마치 경주마같다고 할까요? 옆길로 새지도 못하게 눈 옆을 막고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결코 세상이 우리에게 허락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위해 지어진 곳이니 말입니다. 분주한 가운데 잠시 고개만 들어도 파란 하늘은 그곳에 항상 있는데 말입니다.



산책하며 지나가는 강아지마저 세상의 귀여움을 감당하고 날 선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길고양이마저도 아름다움의 자태를 뽑냅니다. 그것들을 보기위해서는 우리 멈춰야 하고 시선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브링리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 앞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었으니 행운아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그는 꿈꾸듯이 그림 앞에 서서 꿈꾸듯이 사람들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브링리는 인생을 보듯 그림을 보는 거 같았습니다. 그림을 보듯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자신의 삶에서 한걸음 떨어져 관조하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리 재단하듯 단정짓듯이 사는 삶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 책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유용한 설명법도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그림을 보는 다양한 사람들을 묘사해줍니다. 저는 그림을 보기전에 좋아하는 색감인지 아닌지에 따라 벌써 판단을 해버립니다. 실제적 묘사보다는 색감에 제 마음이 더 머무는 거 같습니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제가 경험하고 제가 해석하는 예술은 결국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인생을 남다르게 포착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자신만 아는 것을 표현을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자 예술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예술은 어렵지만 결국에는 예술에서 우리는 인생을 보게 되고 사람을 알게 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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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문장은 꼭 낭독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북클럽에서 이 책을 하게 된다면요. 여러분도 소리내어 낭독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쩌면 삶이 주는 상실에 미술관에 숨어버렸다면 그 미술관에서 마주한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삶이 주는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그 삶을 살아갈 동기를 강하게 얻게 되므로 브링리는 삶 앞에 당도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말입니다. 삶은 상실이지만 그 상실을 통해 분명 채워지는 그 무엇도 있습니다.




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 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 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의 아픔은 외로이 그림 앞에 서 있던 고독한 시간들로 말미암아 애도의 물결을 이루고 애도의 끝에선 비로소 삶을 발견한다. 형이 죽고나서 형의 동생이 아닌 온전한 자아로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독립을 이뤄낸 어른성장소설 같기도 한 이 책은 마지막 순간 독자에게 애도의 뭉클함을 선사한다. 그의 애도 행적은 우리 삶에 대한 애도이자 용기이고 예술적 승화로써 우리 삶을 빛나게 한다.
<진주전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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