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새해 첫 소설은 북클럽 선정도서인 <시선으로부터>입니다. 시선이 사람 이름이라는 건 몰랐답니다. 전혀 사전 정보없이 읽게 된 소설이라 더 흥미가 있었던 거 같아요. 책을 펴자마자 보이는 심시선 가계도에 뭐지? 했는데 가계도를 올린 이유가 있었습니다. 등장 인물이 엄청 많습니다. 가계도에 있는 인물이 다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땐 바로 앞장을 넘겨 가계도를 확인하며 인물 관계를 이해하며 책을 읽었답니다.
주인공이지만 이미 죽고 없는 심시선은 사진 신부의 마지막이라고 책에 짧게 나옵니다. 사진 신부 관련해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었던터러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사진 신부의 그 시설 당시 이야기라면 시선으로부터는 주인공 심시선의 새로운 출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시선이라는 인물로 인해 파생된 가계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내용입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사진 신부에 관한 유튜브를 보게 되면서 사진 신부가 할머니였던 손자가 할머니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가계도를 만들게 되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시선으로부터가 그 맥락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계도를 통해 심시선으로부터 이루어진 가족들의 심시선이라는 주인공의 추억 기행이라고 할까요? 회고록이 더 맞을거 같습니다.
시선으로부터가 신선했던 이유는 우리가 잊고 지내게 되는 것에 대한 부분을 일깨워줬다는 것입니다. 바로 뿌리죠. 나로써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나로만 존재하는듯 살아가지만 나라는 뿌리가 파생된 것은 줄기와 뿌리가 반드시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돌이켜보니 뿌리에 대한 예의와 차려할 제사상에 아마도 뿌리에 대한 진짜 의미는 퇴색이 된 채 살아가는 문화가 된 듯합니다. 이미 그걸 알고 심시선은 자신의 제사를 절대 지내지 못하게 했던 걸까요?
모던 걸, 우리의 모던 걸.
내 모든 것의 뿌리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그녀의 자손들은 심시선이 자기 뿌리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습니다. 그만큼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한 서사에 그 자손들이 깊이 관여하기에 심시선을 더욱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이 소설을 읽고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에 대한 어떤 기억을 품고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리고 더 나아가 나중에 저를 할머니로 기억할 멋훗날 내 자손에게 어떤 할머니가 될까 소망을 품게도 되었답니다.
우리가 가진 조각들이 다르네
할머니가 나눠준 조각들이 다른가보네
심시선과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되는 자손들은 심시선에 대한 추억을 조금씩 다르게 기억합니다. 심시선은 인물마다 그 인물에 맞게 말과 행동을 살핀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심시선의 피만이 아닌 아빠쪽 유전자도 서로 다르니 분명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해석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화수라는 인물이 어쩌면 심시선 할머니의 내면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부분은 소설을 읽어야지만 이해가 되시거 같습니다. 독자로써 화수라는 인물 서사가 절대적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심시선의 시선으로보자면 충분히 심시선이 품었을 인물 같았습니다. 아마도 화수는 할머니의 위로가 가장 필요했고 화소를 가장 마음 깊게 공감했을 인물이 할머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거야
그걸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까지
화수는 심시선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할 언어를 찾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수에게 심시선의 책이 들려있던 건 분명한 반증일테니깐요. 그리고 그 언어를 심시선을 통해 발견하게 될 것을 화수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었지만 그만큼 심시선의 유전자를 뿌리 깊게 내릴 인물이기에 아픔의 서사에 갇혀 있는 인물로 지정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괴로운 방식으로 강렬했지만
가지 못할 세계에 가게 되었으니까
심시선은 마티아스 마우어라는 인물을 통해 사진 신부로 출발한 하와이에서 다른 인생을 꿈꾸게 됩니다. 마티아스 마우러라는 인물이 심시선에게는 파괴적인 존재였지만 그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인물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잠자던 예술적 기질을 끄집어내게도 됩니다. 고통은 고통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고통 끝에 분명 터져내어지는 시금석은 분명 존재합니다.
생에 어떤 인물을 만나게 되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건 맞지만 그 인물에 따라 내 캐릭터가 분명해진다면 그거야말로 나로써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욱 자기가 선명해지거나 흐려져 중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시선은 마티아스 마우러를 통해 자기로써 더 선명한 자아를 갖게 됩니다. 선명한 자아로 살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만큼 자기로써 몸부림을 치는 자만이 자기만의 분명한 색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시선은 개인적으로 저에게 굉장히 동경할만한 인물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싸움을 했어.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기지 못했을지 몰라도
어찌됐던 사람은 시대가 보여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으니까
지금 시대의 언어로 보자면 심시선은 마티어스 마우어라는 나르시시스트 인물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그루밍을 당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심시선은 자아가 분명하고 자기애가 있던 인물이기에 그 상황에서 먹히지 않고 자기만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자아탈바꿈을 이루어냅니다. 그렇기에 심시선은 정신적으로 승리한 인물이자 자기애로 인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심시선이 남자에 대한 시선이 편견처럼 느껴지만 결코 편견만이 아닌 남자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자기 확신인 것입니다. 자기 아들마저도 남자로써 해석하는 심시선의 시선은 절대 공감입니다.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 봐요.
대화는 친구들이랑 합니다.
이해도 친구들이랑 합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다른 시선의 심시선을 이해시킬 남자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런 남자라는 존재에게 구하지 못할 것을 얻지 못함으로 심시선은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네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심시선 주변에서 충분히 넘치게 얻을 수 있으니깐요.
성숙하지 않는 남자라는 거,
되게 징그러운 거다
렌즈가 하나 빠져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이해되지 못할 것에 대해 이해시키느라 애쓴 시간을 생각하면 저 역시 이제는 마음결이 맞는 친구나 지인과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고 배려하고 존중 받습니다. 그 존재가 꼭 남편이어야 한다는 건 더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 존재의 안위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우리 환경이나 문화가 그랬던 건지 결혼이라는 제도에 굴레에 빠지게 되면 결혼뿐 아닌 남편이라는 족쇄를 걸게 됩니다. 그 족쇄에 걸려 있는 것이 안락함이라 말하고 그것이 안전지대라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아갈수록 그것이 가부장주의의 폐단일 뿐이라는 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많은 인물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결혼은 그저 또 다른 가족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 뿐이고 자아로써 자기로써의 세상에 갇히는 제도로 이제는 살아가지 못할 세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겁니다. 저처럼 말이죠.
심시선이 에술가이고 저 역시 음악을 하는지라 예술에 대한 이야기에 무척 공감이 되었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예술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기안에서 꿈틀대는 그 무엇이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까지 할 수 있고 질리지 않고 해도해도 완성에 다닿지 못한 욕구에 미련이 붙쫓지 못하는 것이 예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년씩 비슷한듯 다른 각도로 접근 하는 것.
저에게 음악은 영원한 짝사랑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는 존재라고 할까요? 손 끝에 닿을듯 말듯한 음악은 더 가까이 하게 만들고 더 애타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7살에 피아노를 시작해서 46살인 지금까지 말입니다. 타고난 재능을 부러워하며 내 재능없음을 탓한 순간이 길었지만 그렇기에 아직도 함께이지 않나 싶습니다. 꾸준함이 곧 재능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동안 해보니 질린다면그 일은 당장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거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기억하지 않고 나아가는 공동체는 본 적이 없다
이 문장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기억되지 못한 채 잊혀진다면 더 이상 공동체로써의 위력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시선의 자손들이 심시선을 기억하며 심시선을 추모하기 위해 떠난 하와이 여정에서 분명 심시선으로 비롯된 뿌리가 더 깊게 박히게 되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제 뿌리에 대한 자양분을 더해주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 뿌리의 근간을 파봐야겠지요?
시선으로부터의 시작이 저에게도 시작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