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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진주서평

혼자있고 싶은 남자

2025/3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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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 건 선안남 상담사님 블로그를 통해서입니다. 제목이 딱 눈에 들어와서 바로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봅니다.



사실 남편이라는 남자에 대한 고민은 결혼생활 내내 지속되는 문제이기에 결혼 17년차인 이제는 내려놓음을 가장한 내버려둠이 되었지만 갈수록 남자 특성이 보이는 예비 중3 아들은 또 다른 남자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답니다.



더 이상 엄마의 고운 눈길이 아닌 자꾸만 날 선 눈빛으로 아들을 보게 되는 저를 느끼면서 말이지요.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으니 책이 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 있었을듯 합니다.



남자라는 종에 대한 고민은 아버지로부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를 통해 답습하게 된 아버지는 아버지로서가 아닌 엄마 남편으로써 각인된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아빠와 애착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아빠와 가장 친밀한 엄마를 통해 아빠를 경험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남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중 여러부분이 엄마가 아빠에게 가진 불만이나 어려움에 대한 처사였다고 할까요? 술담배를 평생하고 술로 인해 주로 부부싸움을 했던 제 어린 시절 기억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남자를 우선시 했고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엄마에게 평생 숙제같던 아빠를 전도하는 일에 고단함을 보고 자랐기에 남편감으로 제일 우선시 한 것은 신앙이었답니다. 그리고 화를 내지 않고 무섭지 않은 남자!



이전에 읽었던 여성 화에 대한 책이 혼자 있고 싶은 남자를 통해 남자 화와 분노로 연결이 되면서 표면적으로는 화를 내지 않는 남편이지만 마음속에 항상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혼자 있고 싶은 남자'를 통해서 남편의 화와 본노에 대한 자세한 서사를 도출하게 됩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나의 경계선이 침범당했다는 신호다



남편은 성향이 순하고 화가 없는 편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서너번정도 참았던 화를 분풀이한 분노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자신의 욕구가 완전히 묵살된 것(첫째 임신막달에 차를 바꾸고 싶다고 하는 걸 이제 아이도 태어나니 참아라) 유일하게 남편이 욕심내는 것이 자동차입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뿐 아니라 자동차 장난감까지도 말입니다.



두번째는 친정과 합가를 하고 살면서 부부사이가 틀어졌고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입니다. 이로 인해 먼저 합가를 제안하던 남편이 분가를 말하고 분가 후 부부사이가 전환을 맞았습니다. 아마도 합가후 알게모르게 쌓인 스트레스를 감지하지 못하다 자신의 욕구를 분노로 발산하고야 느끼게 된 듯 합니다.



세번째는 사춘기에 접어들던 큰아이와의 마찰입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어른에 대한 고민을 하던 큰아이는 어른스럽지 못한 아빠의 모습이 내심 못마땅하던 차에 남편이 시기적으로 회사에서 스트레스와 어머니 병간호로 인한 시댁의 압박에 시달리던 중에 엉뚱하게 큰아이와 붙게 된 것이죠.



이 일로 인해 큰아이와 아빠의 관계 노선은 분명해져서 서로는 편하게 되었으나 아빠의 분노를 눈 앞에서 목격하고 말리는 입장이 되어버린 둘째와 셋째는 아빠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지게 됩니다. 남편이 유독 큰아이와 애착이 큰 것도 있고 둘째 셋째때부터는 주말부부를 했기에 상대적으로 아빠에게는 애착이 덜 하기도 한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로 분노에 대한 부분과 아이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서 남편은 순순히 응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분노를 절대 안되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평소 운전하면서도 욕 한번 안하고 화를 내는 모습도 보기 힘들 정도인 남편이지만 한번 분노할때 묵힌 것을 다 풀어내기에 본인 스스로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건강하게 화를 풀어낼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할 거 같습니다.





모든 현상은 소년이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남성성의 압력과 상처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유약한 편이었던 남편은 아버지에게 남자답지 못하다는 푸념을 자주 들어왔고 그런 아들이 안타까운 어머니는 아들을 그저 끼고만 돌았답니다.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부재로 인한 자리는 주로 어머니가 채웠고 아버지가 외도를 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상처는 아마도 자식에게 전가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별 다를바 없는 아버지 형제들로 인해 어머니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분노도 품게 됩니다. 마흔이후에도 차를 바꾸는데 아버지의 의견이 다르면 고민하는 남편이었을정도이니 말입니다.


결혼 전에는 원 가족에게 무심했던 남편이 결혼 을 한 뒤에 효자가 되는 이유는
남자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을 뿐 그가 아직 독립을 하지 못했고
해결하지 못한 마음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결혼내내 남편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을 내내 떠안고 살았습니다. 그저 남편이나 시누이가 착하고 효자효녀라서 그러나정도만 생각을 했지요.



그러다 어머니가 투병을 하시면서 완전 시댁으로 돌아선 남편때문에 불화는 다시 시작되었고 내심 남편의 빈자리가 익숙하고 편했던 저는 그저 내려둠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남편의 빈자리를 아이셋을 보면서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피로감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커졌고 시댁에서는 되려 어머니 투병에 어떠한 일조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이간질하며 남편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일까지 만들어 버리십니다.



이미 시댁쪽으로 완전 돌아선 남편은 저의 상황이나 이해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시댁에서 하는 말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시댁과의 절연을 선언합니다.



남편이라는 역할을 새로 부여받게 된 남자들이 그 새로운 정체성 대신
'장남' 혹은 '아들'이라는 익숙한 각본에 따라 움직일 때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하게 흘러간다


남편은 단 한번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정체성에 고민없이 그저 시댁에 종속된 자녀로서만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했습니다. 어머니 투병이 길어지는 중에 주변에서 효자 효녀 소리 듣는 것에 뿌듯함을 드러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아이가 셋인데도 불구하고 원가족에게서 분리되지 못하고 갈구하던 애착에 대한 부분을 효자라는 인정을 받기위해 애쓰며 본인이 세운 가정이 붕괴되는 지도 모르고 남편은 시댁쪽으로 완전 함몰되어 있던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어쩌면 저희 가정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까요?



그 이후로도 시댁에 관련해서 기함할 일이 있었지만 남편은 그로 인해 아버지와의 분리가 되려는 신호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내버려둠이 우리 가정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가족안으로 품기 위해 저 또한 애쓰기도 했답니다.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받으려고만 하고
자신의 욕구에 맞춰서만 상황을 판단 할 뿐
사랑을 주고 포용하는 성숙한 면모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딱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의 성향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만 판단하고 왜곡하므로 말미암아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하나 성숙한 면 없이 서로 갈구고 서로 할퀴며 그러면서도 서로 인정만을 바라는 형국이었다고 할까요?



결혼생활내내 이해할 수 없고 흔히 평범하다 여기는 가족의 형태와 맞물리지 않은 시댁은 저에게 항상 물음표였습니다. 그러니 남편에 대한 물음표는 점점 더해질 뿐이구요.



유독 시댁 이야기에는 발끈하며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내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고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못마땅하기만 했지만 남편이 가장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저 남편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스스로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행히 어머니 돌아가신 후 저희 가정은 서서히 다시 쌓아올려지는 과정중입니다. 물론 여전히 잠재한 물음표들은 가득이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남편을 객관화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남녀가 함께 사는 재미를 회복하고 소년에서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남자들이 접어두어야 했던 자기만의 진짜 마음을
펼쳐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다


이 문장에서 울컥했답니다. 작가님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 제가 남편과 남은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기도 합니다. 17년을 부부로 살면서도 함께가 아닌 각자도생하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타이밍이었으니 말입니다.



좋은 관계란 경험을 통해 편견을 바꾸어 나가며
경계심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 절망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읽기 뿐이다


얼마전 읽은 소설 추천사에 김연수 작가님의 이 문장이 저에게 마침표처럼 찍혔답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보다는 그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상처받기 않기 위해 애쓴 지난날들이 남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다는 제 마음의 확신은 이 문장으로써 결론을 내립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 할 수 없던 남편을 진짜 사랑할 수 있는 건 그를 다시 읽기라는 것을 말입니다.






선안남 작가님이 둘째 임신중에 이 책을 쓰셨다고 하더라구요.

선안남 작가님 책은 세 권째인데 곧 출간하시는 책도 기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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