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
효용:보람 있게 쓰거나 쓰임, 또는 그런 보람이나 쓸모
새학기가 다가오니 자녀 교육을 오롯이 담당하는 엄마들은 기존의 것을 고수할 것인지, 갈아탈 것인지, 아예 중단할 것인지에 고민이 따른다.
아이셋을 키우는 나 역시 둘째 학원문제로 인해 고수할 것이냐 갈아탈 것이냐의 기로에 서서 여러 대책을 세우는 와중에 다니고 있는 학원 원장과 둘째의 대면 상담을 끝으로 고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더불어 내가 선생으로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 어머니들의 상담도 어느때보다 잦다. 한 어머니는 어디까지 피아노를 배워야 학교에서 음학 학습하는데 무리가 없을지 물으시며 취미로 방과후에서 배우는 트럼펫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자기 의문에 내 답을 요구하신다.
결론은 효율의 가치냐 경험의 가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피아노든 트럼펫이든 결과값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느냐와 다양한 악기를 경험하는 경험의 효용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머니가 선택하시면 된다고 말이다. 더불어 음악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결과값보다는 효용 가치에 대한 방향성을 중요시한다고도 말씀 드렸다.
하루 전날 50대 중후반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시는 성인 학생도 그런 의문을 선생인 나에게 던졌다. "선생님, 과연 제가 이렇게 한다고 달라질까요?"라고 말이다.
피아노의 도 자리와 더듬더듬 손으로 읽어 내려야 하는 시력과 빠릿빠릿 돌아가지 않은 두뇌 회전은 피아노 앞, 50대 중후반의 여성을 나약하게만 만들었고 하고자 하는 의지로 무조건 고!를 외쳤지만 막상 피아노 앞에서 작아지기만 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을터다.
보란듯이 50분 레슨 이후 처음과 분명 다름을 보여 드렸다. 선생으로써 능력치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에 대한 효용가치를 스스로 느끼게 하고자 하는 선생의 나름 전략이었다.
아이 레슨과 달리 성인은 피아노 앞에서 효율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자신이 애초에 설정한 결과값이 예상도와 다를 경우 특히나 말이다. 결과값을 설정한 후 효율성을 입증하기 위한 자기 노력은 애초에 결과값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용을 들였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는 비용을 직접 지불하지 않고 대신 부모가 지불하기에 결과값에 대한 효율성을 부모가 고민하게 한다. 아이는 그저 가르침을 받을 뿐이고 비용에 대한 결과값으로 아이가 잘치느냐 못치느냐 바이엘에서 체르니로 넘어가느냐 마느냐가 아이의 효율성 가치 입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가르치는 자의 자질을 문제 삼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말이다. 이럴 경우 학원이나 선생을 바꾸며 부모들은 효율성을 높이려 애를 써보지만 열에 반 이상은 아이 자체가 흥미가 없는 경우다. 없는 흥미를 그나마 가르치는 선생에 대한 친밀도가 있는 아이는 피아노를 지속하는 경우가 내게는 종종 있다. 이럴 경우는 음악이 본질이 아닌 사람이 본질이 되어 버리긴 하지만 효율이 아닌 효용성에 대한 가치로써 가치가 있다 주장하는 바이다.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피아노를 배우는 것에 그치고 말지만 효용의 가치로 본다면 피아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음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나라는 악기를 교육의 일환으로 접근을 했기에 즐기기보다는 배워야 하는 것에 국한되다 보니 흥미가 없으면 그만두기 일쑤다. 음악을 즐기기도 전에 음악에 대한 싹을 자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체를 아우르기도 전에 부분만 알다 말게 되는 것이다.
비용을 지불하는 부모의 목표나 가치에 따라서 효율이나 효용은 달라지고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배우는 성인 역시 자신이 애초에 배우기로 했던 목표에 따라 지속성이 달라진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치는 효용성에 두되 효율에 대한 결과값도 무시할 수 없다. 상담을 통해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아이들 레슨 스타일이 달아지기는 하되 피아노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성인과 달리 피아노 앞에서 잘 할 수 있네? 나 좀 잘하는 걸? 이라는 자신감이 비용을 지불하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지속할 수 있는 힘이라걸 아니깐 말이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앞에서 쪼그라드는 자신을 공기를 불어넣어 조금이라도 펼 수 있게 만드는 경험을 하다보면 직접 지불하는 비용에 대한 충분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효율성에 대한 부분은 선생의 가치로 부모가 인정하지만 성인의 경우 자신의 효율성에 입증을 자신의 것으로 돌린다는 것! 아마도 동기나 비용에 대해 철절히 자기 선택이기 때문일까 생각해 본다.
변화를 유도를 하는 건 선생이지만 그 변화에 반응하는 것은 배움을 받는 입장일 것이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변화에 대한 긍정적 경험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감을 키워줄 것이라 믿는다. 들인 비용과 시간에 대한 효욜성만이 결과값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