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무릎이 아프다.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지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불편함이 꽤 오래가길래 왠만해서 병원을 잘 가지 않지만 마침 자주 가는 정형외과를 지나는 길에 그냥 가본다. 마음이라도 편하려고 말이다.
엑스레이를 찍고 한참을 들여다보시더니 계단을 많이 오르느냐? 물어보신다.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지라 계단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고 운동을 좀 했다고 하니 단번에 스쿼트는 30대나 하는거라고 볼멘소리를 하신다.
스쿼트 운동했다고 이야기 하지도 않았는데 새해부터 스쿼트 운동하고 있는걸 어찌 아시지? 순간 어머나 어찌 아셨어요? 할뻔 했다. 점쟁이도 아닌 의사선생님 앞에서 말이다. 그리고의사선생님은스쿼트는 30대나 가능한 운동이라며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40대 중후반이 된 나 들으란듯이?
아픈쪽 무릎이 연골이 이미 닳았다는 말씀도 하신다. 연골은 재생이 안되니 무릎 윗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간단한 운동을 알려주시고 진료 끝!
씁쓸함이 한껏 몰려왔다. 작년이가 재작년에 어깨가 난데없이 아파서 같은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받은 후 노화의 시작이라는 진단명에 내 몸이 늙고 있구나를 처음 느꼈다면 오늘의 진료는 내 나이를 확인사살하게 한다고 할까? 너 이제 빼박 40대후반이야!
진료 이후 별다른 조치없이 그저 의사샘이 알려주신 운동처방을 하며 여전히 절뚝인다. 새삼 무릎이 아파서 힘들어했던 지인도 생각나고 무릎이 아파 수술을 고민하다 좀 더 참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견디고 있고 친정엄마도 생각났다. 그렇게 내 아픔이 다른이의 아픔으로 연결이 되나보다. 절뚝이는 내 무릎에 그들의 아픔이 새겨진다.내가 아프고보니 말이다.
그렇게 한창 나이를 실감하며 괜시리 서글픈 마음에 방학내내 아이들 밥 해주는 일에 고단함을 느끼며 그래도 이제 곧 개학이다 하는 마음으로 힘을 내어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데 큰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다쳤다며 손가락이 부러진거 같다고 한다.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가 온다. 나 다쳤다고 소리를 지른다. 평소와 다른 텐션이다. 뭐지? 근처 약국으로 가서 약사에게 자신이 진짜 다친 것을 확인 받은 사실까지 강조하며 다시 전화가 온다. 집으로 와야지 같이 병원을 가던지 하지.
집에 오자마자 자신이 화가 났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큰 아이. 뭐지? 손가락 한번 보자 하고 아이 기분을 살펴본다. 아이 손가락도 말이다. 부은거 보니 병원에 가야 할 거 같다. 막내들 밥을 마저 차려주고 옷을 입고 택시를 부른다.
왜 화가 났어? 물어보니 엄마가 걱정도 안해줬다며 살짝 울먹인다. 큰아이가 평소 오버가 심한 편이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 엄마다. 물론 눈으로 본다고 해도 크게 별다를 바 없이 바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지만 말이다.
공감보다는 사태에 따른 해결책이 먼저인 사람이다. 아이는 엄마가 T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자신이 다친 상태에서 이성적 태도를 보인 것이 못내 서운했나보다. 진료 후에 하는 말이 내 친구가 엄마 진짜 극 T래라며 서운함에 엄마 탓을 더한다.
크게 아파하지 않고 외관상 보기에도 붓기말고는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24시간 정형외과에서 새끼 손가락이 부러졌다며 잘못 붙으며 기형이 된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우면서 신뢰가 가지 않는 의사샘 말에 머리 회전이 빠르게 돌아간다. 그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도 나도 못내 의심쩍어 우선 간단하게 처치만 하고 다시 내원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의 카톡이 불이나기 시작하며 진료를 받은 병원 정보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병원 정보까지 난리가 났다. 남자 아이들이라 한번씩은 뼈가 부러져 정형외과를 다녀왔던지 자기들의 무용담도 마구 오간다.
나도 내 아픔을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하면서 내심 나이 먹는 일에 대한 한탄을 했던지라 아이의 카톡이 불이나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다.
택시를 기다리며 서운했던 부분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안그래도 요즘 동생들과 대화에서 자꾸만 중딩 특유의 말투가 거슬려 곱지 않은 시선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고그 눈길을 느낀 아이는 엄마 날 왜 그렇게 쳐다봐? 하는 말이 자주 했던지라 아마도 엄마의 관심이 필요했던 차에 손가락이 뚝 하고 부러졌나 싶다. 관심받고 싶었구나. 엄마도 몸 아프고 나이 먹는거 관심받고 싶은데 우리 아들도 그랬구나.
너는 크느라 아프고 엄마는 늙으라 아프다. 이미 지난 엄마의 사춘기때는 기억도 나지 않아서 아들의 사춘기는 갱년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엄마에게 사소한 취급을 받게 되나보다. 꽤 유감스런 관계다. 사춘기와 갱년기는 말이다.
사춘기가 잠잠해지나 싶었던 차에 여전히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여전한 아이였구나. 서서히 노화가 시작되는 40대 후반의 엄마는 여전히 젊고 싶고 어리고 싶어서 절뚝이는 무릎이 창피하다는 걸 사춘기는 알까?
사춘기 앞에서 더 절뚝여 볼까 유치한 생각을 한 갱년기 엄마도 관심받고 싶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