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서평 2025/11
엄마들이 모인 북클럽이라면 꼭 한 번쯤 같이 읽고 토론할 만한 책 한 권 소개해 드려요. 저 역시 북클럽에서 읽게 된 책인데 선정해 주신 민조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시작합니다.
제목에서부터 엄마들은 이미 느껴지는 게 있으시죠? 저 역시 제목만 보고 뻔한 엄마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며 좋은 엄마 프레임을 덧쓰우려는 책이 아닌가 싶었는데 절대 아니었기에 굉장히 센세이션하게 읽고 나눴답니다. 물론 아주 짧은 단편으로 엮인 책이라 구성이 탄탄하거나 문학적이진 않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저자인 살럿 퍼킨스 길먼은 '누런 벽지'라는 단편으로 이름 알려진 작가라고 합니다. 엄마 실격에도 누런 벽지가 나오긴 하지만 전문이 있지는 않는 거 같아요. 관심 있으시면 '누런 벽지'만 읽어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페미니스트 문학의 가능성을 연 작가로서 총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엄마 실격>은 여성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멸종된 천사'가 가장 기억에 남고 '벌들처럼'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읽어보시면서 가장 좋은 점과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엄마 실격>은 북클럽 내에서 평점이 대부분 4점 이상으로 높았고 내용면에서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읽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지라 하루를 날 잡아 토론해도 모자랄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굉장히 많았답니다.
1860년에 태어난 길먼 작가의 비상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의 내용과 서사는 여성의 삶이 그 시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요? 여전히 여성문제로 잔재함일까요? 비교적 여성이 살기 편한 구조와 환경이 되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여성으로써 짊어지게 되는 짐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깨달음을 얻게 된 사실은 여성은 결국 연대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성 관련 소설을 읽게 되면 개인적으로 결말이 항상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할까요? 이 부분은 모나리자 북클럽 가장 큰언니인 해파리님 덕분에 얻게 된 인사이트입니다.
여성은 관계 중심이기 때문에 연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소설 내에서도 여성이 독자적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같이 동참하며 해결해 주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처음 읽을 땐 그저 작가가 바라는 결론으로써 해결사를 제시했나 싶었지만 결국에 연대를 강조하는 작가의 소설적 장치라는 것을 북클럽을 통해 배웠고 그로 인해 여성은 연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됩니다. 이 부분은 여성이 가지는 여성만의 특성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남성을 아예 배제시키거나 가해자로 만들거나 또는 남여의 특성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평등을 외치는 다소 편파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데 이 소설에서는 남성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을 위한 세계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벌들처럼'에서 여성을 위한 세계를 계획하지만 결국 공동체로써 남자를 등장시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면서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산 가치를 높이며 건강화 평화와 번영을 확고히 하고 인간의 행복을 한없이 증대할 수 있다는 이념이었다.
작가는 여성의 해방이 여성만으로서의 자유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유하되 방조하지 않고 함께 자유 할수있는 환경을 제시합니다. 그 시절 여성으로써 굉장히 사고가 열려있는 신여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대를 앞선 사람이기에 살아가는 내내 자기가 가진 사고와 환경의 충돌로 인해 큰 번뇌의 씨름을 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길먼은 출산 후 전통적인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염증을 느껴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산후우울증이라 명명하지만 그 시절에는 단순히 아이를 낳고 적응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육체와 정신적 연약을 여자만의 문제로 여기고 혹여나 지식을 접하는 여자였다면 그 지식을 문제 삼아 아예 지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치료법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누런 벽지에 나옵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자아를 가진 한 인격체로써 한 아이가 자기 몸을 통해 잉태되는 순간 자아의 상실감을 경험할 수 있고 그 상실감으로 인해 자아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우리는 엄마로서의 역할과 도리만 제시합니다.
저 역시 엄마가 되는 순간 자아 상실감으로 인해 큰아이 낳고 방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전까지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지만 출산부터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나서 자신에 대한 효능감이 매우 떨어졌다고 할까요?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자아 효능에 대한 실패를 느낀 것이 출산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 실패감은 하염없이 걷는 것으로 치유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계셨기에 가능했고 혼자 아이를 보는 상황이었다면 저 역시 더 깊은 산후우울증에 빠졌을듯합니다.
엄마들은 모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 말은 정상적인 엄마라면 그렇다는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처럼 보이지 않는 여자들도 있죠.
심지어 아이가 있는데도 말이에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곧 엄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성이 아이를 출산한다고 해서 출산과 동시에 모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모성을 강요받습니다. 강요된 모성일수록 충돌로써 오히려 모성을 거부하게도 됩니다. 그것이 절대 여자인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알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을 저격하는 것이 다른 모성이라는 것입니다. 모임 내에서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다양한 엄마들을 만나며 이 부분은 절대적으로 공감입니다. 그것이 결코 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모성으로서 그렇게 자기를 과신하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모성의 본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초에 모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마리아 아멜리아, 난 네가 부끄럽구나!
넌 결혼도 못 했고 엄마도 아니잖아.
엄마의 도리는 자기 아이를 지키는 거야!
그 여자는 남의 집 애들을 지키려고 자기 애는 내팽개쳤어.
주님이 그 여자한테 돌보라고 주신 건
남의 집 애들이 아니야!
제가 아이셋을 키우며 느끼는 모성은 계속 반복되므로 학습되는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책임으로 모성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 매번 주어진 모성의 시험을 통과하는 시험처럼 말입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매일 삼시 세끼를 챙기며 모성으로써 완전함과 나로서의 편리성 사이에서의 싸움은 매일 지속됩니다. 결코 모성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들이 모성으로 인해 치열한 내적 분열을 매일 경험하고 겪어낸다는 것을 누가 알까요?
이 천사들의 일은 달래주고, 위로해 주고, 위안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소유인의 격한 감정이 아무리 통제되기 어렵다 해도 심지어 때로는 그가 합법적인 한도 내에서
'엄지손가락 굴기만 한 막대로'로 때리는 일이 있다 해도, 천사는 좌우지간 울화통을 터뜨려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울화통이 터져도 자기희생으로 대신해야 했다. 사실 자기희생이라는 말이 천사와 하나가되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천사 같은 엄마의 프레임은 누가 덧씌우는 것일까요? 때로는 스스로 천사로써 가장하기도 합니다. 저처럼요. 하지만 과감하게 천사의 굴레를 벗어나 온전한 나라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몫으로만 천사의 일을 감당하기로 작정합니다.
천사가 아니라 엄마는 사람이라는 걸 아니깐요. 엄마 노릇은 내가 눈 감았지만 내 자식이 눈 감아야지만 끝나는 질기고 질긴 여정입니다. 그 여정을 오래 감당하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마로서만이 아닌 내 몫의 것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내 몫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엄마 연차로 16년 차에 깨달은 진실입니다. 물론 16년 차 이전부터 실천 중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천사가 찾아와 자기희생을 강요하고 강요당하긴 하지만 내 엄마로서의 신념은 내가 엄마로서 감당하는 것에 대한 회한을 가지지 말자입니다. 그 회한이 아쉬움이나 서러움이 될 것이고 그것들이 뒤늦게 저를 잠식시키게 두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나로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 대해 내가 질 수 있는 정도로만 내가 후회하거나 억울하지 않을 정도만 책임을 지자입니다. 그래야지만 아이들에게 자기 인생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할 수 있다는 큰 그림이기도 합니다.
엄마니깐
엄마라서
엄마인데
당연한 게 아닙니다.
엄마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고
엄마이기에 알 수 있는
엄마만의 영역은
엄마가 된 자의 특권이자 굴레입니다
그 특권과 굴레안에서 자유할 수 있는 엄마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매일 모성과의 투쟁처럼 매일 자신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자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