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진주서평

살아요 온리빙

진주서평 2025/12

by 진주


32493360774.20220527050358.jpg 살아요저자케리 이건출판부키발매2017.06.02.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왜 사는가 싶을 때가 있죠? 마흔 중후반 여기저기 건강의 신호가 오면서 몸으로 인한 활동에 제동이 걸리다 보니 자연스레 우울감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왜 사나 싶고 무엇을 위해 사나 싶을 때 딱 이 책을 만났어요.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먼저 살아간 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인생에 대한 조언보다는 살아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거죠. 살아낸 시간에 대한 흔적을 더듬고 싶었다고 할까요?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의 삶을 형성한 어떠한 사연이 있다. 그들은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번, 두 번, 가끔은 수십 번씩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기도 했다. 그들이 이야기에 부여하는 의미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변화했다.



저자인 캐리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정서적 위안을 주는 채플런으로 근무하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요.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전해 듣는 그들이 살아낸 이야기는 딱 저에게 필요한 이야기였답니다.



가족, 비밀, 몸, 희망, 회색 지대, 상실, 변화, 믿음, 사랑, 고통, 죽음, 삶



8.jpg?type=w773



살면서 겪게 되는 나쁜 일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자주 까먹습니다. 좋을 땐 좋은지 모르다 어려움이 닥쳐야지만 좋았었구나 알게 된다고 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삶의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고 루틴이나 패턴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보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닌 그저 지금에 머묾이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살수록 지금의 머묾은 도태이자 무에 가까운 형태라는 것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서야 알게 됩니다.


변화는 곧 다른 형태의 삶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그 변화를 위한 시발점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로 비롯된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겁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양육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자기만의 성을 고수하고 폐쇄적으로 살았을 제가 문득 또 오르니 지금이 참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모두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방향을 잃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파괴적인 일을 겪을 것이다.



저에게는 몸이 그랬습니다. 내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 무릎 상태가 되면서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듯 제동이 걸립니다. 몸은 단지 그동안의 속도가 아닌 몸의 소리에 맞는 속도로 변화해야 함을 알려준 것인데 정작 몸의 주인은 전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는 것에 화가 난 것이죠. 6개월 이상 무릎으로 고생하다 보니 이제는 몸이 정한 속도에 저를 맞추고 있습니다.


몸속에 존재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곧 몸을 잃게 된다는 현실에 직면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몸으로 매일 삶을 경험하면서도 그 몸에 대한 인식은 그 몸에 문제가 생겨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몸은 그제야 몸에 맞춰 살아가라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네죠. 중년에 나이에 건강에 대한 깨달음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몸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학을 맞은 중학생 딸과 아침마다 운동을 합니다. 거창하게 러닝이 하고 싶지만 러닝이 가능한 무릎이 아니라 한동안 유행한 슬로우조깅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슬로우조깅을 하다 보니 러닝이 가능한 몸이 되어 뛰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막상 해보면 슬로우조깅이 더 어려워요. 뛰는 건 그냥 뛰면 되지만 슬로우 조깅은 의식적으로 속도감을 늦추는 것이기에 해보면 더 어렵습니다. 삶을 느긋하게 늦추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지는 슬로우조깅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의지적 느림은 빠름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속도감을 조절해야 하지만 익숙해진다면 그때는 빠름이 어려워지겠죠?



우리가 몸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영향을 주고, 이는 결국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된다.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 어그적 걷는 어르신과 허리를 붙들고 걸어가는 이들을 이해 못 했습니다. 그저 나이에 따른 그들의 기본값이라 여겼지요. 나이보다 이르게 몸이 고장 나고야 제가 얼마나 몸에 대해 오만했었는지 뼈저리게 늬우칩니다. 그리고 그들을 공감하게 됩니다.


몸이 고장 나기 전에는 그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삶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선택하지 않음으로 인해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까요? 다행히 그 미련은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수백만 가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다른 것을 포기하는 셈이므로 살아가면서 아쉬움이 쌓이기 마련이다.



후회가 앞으로 삶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후회에 대한 기회를 지금 당장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더 이상 후회가 제 인생을 발목 잡지 않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인생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이루지 못한 것이 후회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 이루지 못한 것의 희망을 놓지 않고 소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후회는 창문이다. 그것은 바라지 않았던 기회이며, 불편한 자극이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라는 고통스러운 격려이다. 당신이 받아들인다면 후회는 희망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세상은 흑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에요. 흑백은 없어. 회색뿐이지. 회색 지대에 살아야지, 안 그러면 가슴속에 연민은 없어질 거요. 회색 면을 봐야 해요. 모두가 이걸 알아야 해요.


얼마 전 북클럽에서 <이방인>을 읽고 나누면서 흑과 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흑과 백만이 가능한 세상이 과연 살만한 것일까요? 흑과 백 이외에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연민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 흑과 백을 위함보다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회색 지대를 위한 안전지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억세지셨어요?"
"사느라."



이 책에서 짧지만 가장 강력하게 제 마음을 울린 문장입니다. 살면서 오기가 생길 때마다 친정엄마를 떠올립니다. 그 오기가 힘이 되어 살아가게 되지만 뻣뻣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친정엄마를 보면서 절대 난 뻣뻣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던 순간도 떠오릅니다. 뻣뻣하게 자신을 지탱을 하지만 그 뻣뻣함에 기댈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자녀인 저만의 아쉬움일까요?


새삼스레 집안에서의 제 표정이 자꾸만 뻣뻣해짐을 느껴 스스로 괴로운 순간이 생겨납니다. 왜 집안에만 있으면 이리도 뻣뻣해지는지 말입니다. 아마도 살아내기 위한 꼿꼿함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 집안이어서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인생사에서 무던해지고자 스스로 다짐을 하며 스스로에게 건네보지만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쓸 수 있음에 나의 뻣뻣함이 누그러진다면야 무엇을 더 바랄까요?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약해질 때는 억센 겉껍질을 뒤집어쓰고 겨우 살아내게 된다고, 그리고 무너지지 않고 버티려면 강철 같은 등뼈가 필요하다고. 힘든 세상을 살아 내거나 살면서 겪는 상실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은 바로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쓰거나 강철 같은 등뼈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변치 않는 본질적 영혼이 있는가,아니면 삶에서의 경험이 우리를 끊임없이 변하게 만드는가?정답은 '둘 다 맞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조금씩 변화하여 본질적인 자신이 되어 간다.



마지막 문장이 저에게 해결책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자신을 저버리면서까지 세상사에 맞추려고도 했고 그러므로 인한 한탄에 다시 자기에게로의 회귀를 반복하며 결국에는 자신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정답 같습니다. 줄다리기하듯 이리저리 끌 리 기고하고 이끌기도 하면서 종국에는 가장 안전한 그곳에 도달하게 되겠지요.


'그럴 수 있지, 그러라 그래'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이 기존의 것들과 씨름을 하는 중이지만 이것이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신호임을 받아들이고 자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실격>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