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하필 목돈 들어갈 일이 생긴 때와 맞물려버리니 속 없이 친정엄마에게 푸념을 늘어 놓는다. 어쩌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 슬쩍 기댄것일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괜히 죄스러워, 아니 솔직하게는 죄스런 마음보다는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다. 내가 왜 이런 싫은 소리를 듣고 하기 싫은 말을 해야하는지 그 화살이 남편에게 쏟아질 참이라 핑계삼아 막내들만 데리고 외출해 버렸다. 어차피 일요일 저녁이면 남편이 지방 현장으로 출근하러 내려가니 얼굴 안 보는게 서로에게 이로울상 싶으니 말이다.
엄마가 외출한지 모르는 큰아이는 문자로 집에 가고 있다며 넌지시 저녁 메뉴를 묻는다. 아들놈은 밥 때와 돈 없을 때만 엄마에게 연락하는 존재인가? 그래도 입금해주면 '고마워'라고도 문자를 보내는 아들이 고맙게 여겨야지 뭐 별수 있나. 새삼 이런게 부모자식 관계인가 싶다. 돈 빌려주는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려나?
어디다 하소연 하고 싶은데 친구는 마침 전활 받지 않고 괜히리 밖으로 뱉어내야 할 말이 안에서 쌓이고 쌓이니 막내들과 외출중에 별게 다 짜증이 난다. 예전과 다르다면 그 짜증을 속으로 삼키지 않고 애들에게 내뱉는다는 것. 그거마저 참으면 내 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고 물론 어디로 튀어서 누군가 데이게 만들 성격은 아니지만 쌓인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신호는 분명 올 것이니 그냥 뱉어내어 버린다.
"짜증나!" 그리고 침묵...
그래서인지 요즘 유독 아이들이 내 눈치를 살피는 참이다. 예전같으면 그것마저도 화가 나서 속이 더 부글거렸을텐데, 그냥 둬버린다. 배알없는 에미라 그랬다가도 어느순간 내 새끼 이뻐죽어 쓰담쓰담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매만진다. 이게 과연 엄마로써 올바른 태도인가의 물음표가 떠오르긴 하지만 나를 옥죄는 완벽함에서 덜어내고자 밀어내 버린다. 그 질문을 말이다.
갈수록 사는게 내 마음 같지 않고 남편은 도움이 안되고 자식들이라도 내 마음같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아서 못마땅하지만 엄마 마음같게 굴면 그게 또 자식놈인가 싶다. 우리 엄마도 요즘같은 때 딸이 못마땅해죽을게 눈에 훤한 마당에 내 자식이라고 별 수 있으려나.
엄마는 엄마 마음에 안쓰러워 준다고 해놓고 막상 줘야할 때가 되니 괜히 딸 처지에 정작 한푼도 도움을 안주는 사돈댁이 얄미울 참이지만 딸 아니고는 타박을 할 성정이 되지 못하니 그렇게라도 내뱉으시는게 차라리 낫다 싶으면서도 괜히 딸인 내 마음엔 여러 감정이 교차해 버린다. 딸이면서 엄마인 나 역시 괜히 아이들에게 단 한마디로 그 감정을 퉁쳐버리고 말이다.
그래, 갱년기라 그래. 갱년기니깐 이정도는 양호하지. 먹고 사느라 바빠 갱년기인지도 모르고 지난 친정엄마는 때늦은 갱년기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시느라 그런거야. 성에 차지 않는 자기 삶에 그나마 벌어서 모으는 낙으로 사셨을 엄마인데 그 돈을 홀랑 딸에게 줘 버리니.(내 입장에서 최소한의 변론을 하자면 먼저 달란 적도 없고 달달이 갚아나가기도 한다. 그걸 모아서 다시 주시지만 말이다)
큰아이 왈 엄마는 부유하게 자랐구나 이야길 여러번 하는데 사실 돈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현금 장사를 하신 덕분에 현금으로 항상 부모 노릇을 하셨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부모 노릇을 돈으로 하게 되시는 건가... 내가 자란 시절만큼 아이들에게 한없이 부어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품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서적으로 엄마가 대 채워주잖아' 라고 말해주는 둘째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적어도 반쪽은 채워줬으니 말이다. 새삼 우리 아이들이 내 아이가 되면 정서적으로만 채워줘도 되나 싶다.
아직 사는 게 뭔지 뭘 위해 사는지 모르겠지만 단 하나의 이유, 자식! 자식이 참 살게 만들고 살게 하고 버티게 하나 싶다. 그러면서도 하루 빨리 자식에게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도 싶는 치열한 40대 중후반의 삶인데 칠십 넘은 삶에도 여전히 자식 걱정하는 우리 엄마를 보니... 할말이 없어지네.
사는게 바빠서 갱년기도 없이 지난 우리 엄마보다 일찌감치 갱년기 핑계삼는 나는 나은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