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이사가는데 감정이 어때요?" 라는 열살 막내 아들 물음에 아빠는 심드렁하니 "똑같지, 뭐."한다.
이사를 앞두고 마음이 괜시리 몽글몽글한 나와는 전혀 다른 남편의 태도는 딱 예상대로다.
우리 가족이 제일 오래 산 집이기도 하고 이 집으로 이사 직전에 코로나가 터져서 코로나를 오로지 다 견뎌낸 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족에게 많은 일이 생긴 집이기도 하고 더불어 내 내적 요동함을 고스란치 받아낸 집이기도 하다.
한달전부터 정리하고 버리고 치우면서 언제 이사하나 싶었는데 이제 이사가 코앞이다.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건 왜일까? 이 집을 이사오기전에도 내가 소망하는 바를 담아 집을 직접 구했고 이제 이사갈 집 역시 내 소망을 담아 집을 구하긴 했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우리 가족이 안락하게 지낼 공간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이뤄낼 다짐, 그리고 안정적인 주변 환경이다.
불안도가 워낙 높은 사람이라 지금 집은 단지 아파트 입구에 파출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던 나이다. 이제 이사갈 집은 남편이 좋아하는 마트가 우리가 살 아파트 동으로 연결이 된지라 집을 보자마자 남편이 좋아하겠다 싶었다. 같은 동네인데도 집 위치에 따라 이리도 접근성이 달아진다는 게 살아보니 그렇다. 12년간 한 동네에서만 3번의 이사를 했지만 셋 다 전혀 다른 동네같았으니 말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동네에서 앞으로 4년을 더 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예정이지만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여지는 두고 있다. 특히나 큰아이들이 곧 고등학생이 되는지라 이동하는데 있어서 아이들 학업이 최우선이 될터니 말이다.
매번 이사를 하며 이사하면 그만인 집을 닦고 또 치우는 건 일종의 의식이다. 그간 살아온 내 노력과 열심에 대한 위로이자 잘 살아냈음을 반질반질 윤이나게 티를 내고 싶은 마음이랄까? 물론 들어올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진 않다. 내가 좋았으니 다른이도 좋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중1 딸도 내 마음같은지 갑자기 한달만 더 살고 싶다며 아쉬움을 들어내고 쓸고 닦으며 괜히 감성에 젖는 엄마를 보며 "엄마, 평소같지 않네?"라며 엄마의 감정을 읽어내기도 하는거 보면 우린 이런면에서 마음이 통하나보다.
반려견 여름이가 처음 온 집이기도 하고 여름이의 산책지 역시 5년이 넘도록 배변의 흔적(?)을 남긴 공원도 있으니 헤어짐이 많이 아쉽긴하다. 더군다나 며칠전 경비 아저씨께 이사 날짜를 전달하니 내심 아쉬움을 내비치셔서 아쉬운 내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이사하고 지금까지 같은 경비원 아저씨들이 상주하셔서 내 성격상 친밀하게 정을 주고받진 못했지만 항상 인사해 주시고 이런저런 배려를 해주신 덕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경비 아저씨도 알고 계셨는지 "갑작스럽네요"라며 말끝을 흐리시니 말이다.
주말부부로 주중에는 아이들과만 지내는지라 심적인 안정면에서 주거 환경이 굉장히 영향을 미치는 편이다. 감사하게도 이 동네 첫 집에서는 아랫집 중년부부의 존재가 그랬고 다음집에서는 윗집 목사님 부부가 계셔서 든든했었다. 그리고 지금 집은 파출소와 경비 아저씨들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 셈이다.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그래서 더 아쉽고 미련이 남나보다.
이사덕분에 아이들과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고 이 집에 대한 추억담도 많이 나눴다. 나 혼자 견디느라 애쓴 공간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함께 했던 건 아이들이니 말이다.
이사갈 집에서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까? 아쉬움을 기대감으로 바뀌고 이제 진짜 이 집과 헤어질 시간이다. 우리가 행복했으니 이 집은 계속 행복할거다.
고마워! 덕분에 잘 살았다!